전주 폭발 사고 20대 “몸 곳곳에 흉터…앞으로 어떻게 사나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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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로 5명 사상

“본래 업무 아닌 일 시켜, 안전관리자 못 봤다” 증언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로 피해를 입은 A씨(26)가 지난 8월 4일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로 피해를 입은 A씨(26)가 지난 8월 4일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산재 사고는 순간이지만 노동자의 피해는 오랫동안 지속한다. A씨(26)의 경우가 그렇다. A씨는 지난 5월 2일 오후 6시42분 전북 전주시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인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메탄가스 폭발 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있었다. 사고로 A씨를 포함해 4명의 노동자가 다쳤고, 1명이 사망했다. 이곳은 ‘지하 처리장’이다. 폭발 사고가 난 곳도 지하 1층이었다.

지난 8월 4일 오후 대전시의 한 병원에서 기자와 만난 A씨는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A씨는 실험실 업무를 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음식물 파쇄, 유기물 분해, 건조 등의 과정을 거친다. A씨는 소화조에서 시료를 가져와 질소와 인 등이 얼마나 함유돼있는지를 측정해 공정이 잘 되고 있는지, 음식물 투입량이 적절한지를 확인하는 업무 담당이었다.

A씨는 올해 들어 빈번하게 다른 업무에 동원됐다고 말했다. 회사는 A씨가 실험실 업무를 하고 있으면 불러 나무 자르기나 청소, 다른 노동자 보조를 시켰다. A씨가 ‘하던 일을 끝내고 가겠다’며 싫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나이가 어린 축인 A씨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엔 일주일의 절반을 실험실 업무, 절반은 다른 업무를 할 정도였다.

사고 당일에도 팀장으로부터 ‘작업을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갑작스럽게 지하 1층으로 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인지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이 작업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안전을 위해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도 예상치 못했다. A씨는 “폭발이 나고 본능적으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다리에서부터 얼굴까지 불이 붙었다”고 했다. A씨는 얼굴, 팔, 등, 배, 다리 등 몸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지난 6월 26일 전주시청 앞에서 전주리싸이클링타운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6일 전주시청 앞에서 전주리싸이클링타운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 지원 다 해준다던 회사, 이젠 연락 없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발생하는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폭발로 이어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음폐수의 과도한 투입, 환기시설 미비 등 회사가 안전을 확보하지 않아 발생한 산재 사고라고 본다. 이들은 또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시설이 전주시 소유이고 시설 운영의 주요 결정사항이 전주시 허가를 통해 이뤄졌을 것이라며 운영사인 성우건설 외에 전주시장도 형사책임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사업주뿐 아니라 원청기업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A씨는 지난 3개월간 매일 레이저 치료와 소독을 반복하면서 “너무 아파서 죽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얼굴을 포함해 몸 곳곳에 흉터가 남았고 햇볕도 제대로 쬘 수 없다. 언제까지 치료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다. A씨는 사고 때 생각을 안 하려고 하다가도 불쑥불쑥 생각이 나고, 트라우마 때문에 나중에 가스레인지를 켤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나아도 나은 것 같지가 않다. 앞으로 살날이 많은데 막막하고 힘들다”고 했다. A씨에게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은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첫 직장이었다.

성우건설 측은 사고 직후 “본인들이 애사심이라든지, 사명감 때문에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A씨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회사가 피해에 대해 다 지원해 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전주시든, 회사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피해자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완치될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했다. 기자는 성우건설에 여러 차례 전화 등으로 연락했지만 책임있는 관계자와 통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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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