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 미끼로 동의 얻고 폐기물매립장으로 변경…농촌 곳곳 복마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 “기업이 돈 벌고 떠나면 지자체가 세금으로 사후관리”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3월 20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3월 20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한국에서 농촌은 식민지와 다름없는 처지다. 주민 절대다수의 반대에도 자본과 권력을 쥔 기업의 개발 앞에 속수무책이다. 산을 깎아 돌과 모래를 건설자재로 팔고, 그 땅 위에 산업단지나 폐기물 처리시설을 짓는다. 산업단지 분양이 어려워지면 통째 산업폐기물 매립시설로 변경하는 곳도 있다. 지역소멸을 막자고 하면서 아무도 오지 않을, 있는 이마저 떠나게 만드는 농촌을 만들고 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각지의 농촌 주민들이 지난해부터 이 문제에 공동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구심점 역할을 한 곳은 비영리 공익법률센터 ‘농본’이다. 검찰 특활비 공개 소송으로 잘 알려진 하승수 변호사가 충남 홍성에 귀촌해 꾸린 단체로, 마을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농촌 주민에게 법률 정보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연대한다. 하승수 농본 대표는 지난 3월 20일 주간경향과 만나 농촌에서 벌어지는 폐기물 매립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발생지 책임 원칙과 공공성 강화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하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검찰 특활비 공개 소송 중이던 2021년 3월 농본이 문을 열었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잘 해결되지 않고 누적된다. 그래서 하는 일의 가짓수가 많아지고 있다. 도시에 살 땐 생활폐기물만 신경 썼는데 농촌에 귀촌해 살다 보니 산업폐기물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기업이 농촌을 앞으로 살아야 할 공간이라기보다 투기하고, 이윤을 뽑아낼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를 정부는 방조한다. 지금 농촌은 산업폐기물만이 아니라 온갖 난개발과 환경오염 문제를 겪고 있다. 기후위기를 말하면서도 진짜 중요한 농업과 농촌은 별로 이야기가 안 된다. 지금 문명 전환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 바탕은 농촌과 농업이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집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산업단지 개발을 위해 농지와 마을이 수용되고, 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서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충북 진천의 관지미마을이 대표적이다. 주민 절대다수가 반대해도 마을을 없애고, 농지를 수용해 산단을 조성하던 태영건설이 지금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전국에 산단 자체가 모자라지 않고, 산단에 실입주해 실제 가동하는 곳이 많지 않은데 또 산단을 만들면서 농지와 임야를 대거 수용해 훼손하는 건 환경적으로도 문제지만 경제적으로도 타당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요즘 산단과 폐기물매립장을 패키지로 같이 추진하는 경우가 유행처럼 늘고 있다. 산단에서 손해를 봐도 매립장에서 이익을 얻으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단 개발이 아니라 매립장 건설이 본래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산단을 가동하면 폐기물이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매립장이 들어오는 논리여야 하는데 지금은 본말이 전도됐다.”

“산업단지를 통째로 폐기물 처리 단지로 바꾸면 수천억원대 특혜라 정경유착 의심될 정도…. 특히 위험한 산업폐기물은 발생지 책임 원칙을 적용해야 감량도, 관리도 가능하고 과도한 산단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

-SK·태영 같은 대기업이 산업폐기물 처리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산단에 (폐기물매립장을) 끼워서 편법으로라도 인허가를 받으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천의 대진산업단지의 경우 SK에코플랜트가 시공사였는데 지금은 전면에 나서서 사업 시행자가 됐다. 처음 주민들은 우주항공 관련 제조업이 들어온다고 해서 찬성했지만 지금 분양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이곳에 이차전지 리사이클링 복합단지를 만들려고 한다. 계획변경허가를 받아 산업폐기물단지로 바꾸려고 한다. 산업단지를 통째로 폐기물 처리 단지로 바꾸면 수천억원대의 특혜를 받는 셈인데 주민으로선 황당할 뿐이다. 농촌 곳곳이 복마전이 됐다.”

-충남 당진 고대부곡매립장이나 경기 화성 주곡리 매립장의 경우 업체 부도로 지자체가 사후관리 부담을 떠안고 있다. 수익성이 높다는데 부도가 날 수 있나.

“매립을 할 땐 돈이 되는데 매립이 끝난 후 30년간 사후관리할 때는 비용만 든다. 그러니까 업체가 나쁘게 마음먹으면 돈 벌 때만 벌고 사후관리할 땐 껍데기 예산만 남기고 부도를 낼 수 있다. 당진의 경우 매립으로 돈을 번 업체가 저축은행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리고 부도가 났다. 매립장으론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엉뚱한 데 투자했다가 날리고 나자빠졌다.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가 그래서 중요하다. 생활폐기물은 지자체가 책임지는데 더 위험한 산업폐기물은 민간기업에 떠넘기고 있다. 폐기물관리법이나 국토계획법은 행정관청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한다. 그러면 환경영향이나 폐기물 처리시설의 적합성, 주민에게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판단해야 하는데 지자체도, 환경부도 그렇게 안 한다. 행정의 부실이 아니라 정경유착이 의심될 정도다. 주민들은 이미 절차가 진행되고, 건축되는 중에 관련 사실을 아는 경우가 많다.”

-불법 폐기물 문제도 심각하다.

“산업폐기물은 유해성이 강할수록 처리단가가 높은데 불법 폐기물로 유통돼서 매립하면 비용이 안 드니 굉장히 수익성이 높은 환경범죄 사업이 된다. 종량제나 음식물 쓰레기는 다 관리 범위 안에 있어서 불법 폐기물은 사실상 산업폐기물이다. 돈 벌기 딱 좋은 사업이라 조폭과 연결돼 있다는 말이 있다. 불법 폐기물 문제도 따라가다 보면 폐기물 처리를 민간에 맡긴 게 가장 큰 이유다. 환경부는 사회적 문제가 되면 단속할 뿐 이후엔 흐지부지된다. 구조적으로 산업폐기물 전반을 공공이 관리하지 않으면 불법 폐기물이 대량 발생할 수 있다.”

-발생지 책임 원칙이 중요한 이유는.

“환경부는 폐기물 처리업체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영업 구역을 없앴다고 하는데, 폐기물은 눈에 안 보이는 순간 자기 문제가 아닌 게 된다. 발생지 책임 원칙을 적용해 산업폐기물이 우리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면 그걸 다 우리 지역에서 떠안아야 한다. 산단도 없는 엉뚱한 농촌 지역에 가져와 매립·소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발생지 책임 원칙을 적용해야 감량도, 관리도 가능하고 과도한 산단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 환경 정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환경부에서 공공폐자원시설법을 마련해 공공매립장·소각장을 시범적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지원금을 준대도 신청한 곳이 없다. 발생지 책임 원칙을 먼저 세우면 각 광역지자체가 처리 부담을 지니 논의에 참여할 텐데 전국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으니 아무도 신청 안 했고, 결국 법이 사문화됐다.”

-정부는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환경범죄는 장기간 사회적 피해를 주고 결국 국민 세금으로 복구하거나 사후처리해야 한다. 다른 범죄보다 무겁게 처벌해야 하는데 오히려 굉장히 약하다. 불법 폐기물도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피해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수사해야 하는 주체도 모호하고 서로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규제를 약화하려고 한다. 지금 있는 환경영향평가도 주민들은 왜 하냐고 말할 정도로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업체는 온갖 꼼수를 부려 인허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하루 100t 이상 소각하면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업체는 하루 99t만 소각하기로 한 후 인허가를 받는다. 일단 인허가받으면 증설은 쉽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는 규제도 회피하는 상황에서 그걸 강화하지 않고 규제라는 이름으로 완화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평가 과정 중 주민 정보 공유도 안 된다. 환경영향평가 초안은 공개하면서 정작 중요한 본안은 협의가 끝날 때까지 공개가 안 된다. 주민들이 환경부·환경청을 불신하는 이유다.”

-향후 계획은.

“검찰 특활비 소송은 작년 4월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검찰이 일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2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폐기물 문제는 총선 후 22대 국회에서 법 개정 운동을 벌일 텐데 국가적 법 개선만 기대할 수 없어 각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자구적 노력을 병행하려 한다. 대도시에는 대부분 환경영향평가 조례가 있지만 정작 필요한 도 단위에는 없는 곳이 많다. 있어도 내용이 미흡한 곳이 많아 하반기에는 환경이나 농촌 난개발 관련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조례를 제·개정하는 운동을 벌이려고 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