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혐오시설 설치 물어보고 해!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서울 구로구, 경기 부천시 화장장 건설 제동… 사전협의 없이 추진 문제삼아

[사회]혐오시설 설치 물어보고 해!

“남의 집 마당에 화장터가 될 말입니까”
4월 19일 서울 구로구청의 감사담당관실. 직원들은 부천시 화장장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부천시의 화장장이 들어설 예정지인 부천시 춘의동 일대는 구로구에서 불과 200여m 거리에 있다. 게다가 구로구 온수동 일대는 수십년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가 곧 해제, 이제부터 개발될 예정이다.

그린벨트로 지정된 지 수십년이 지나 이제서야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주민들이 화장장을 반대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주민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구로구의회는 3월 21일 ‘화장장 건립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고, 구로구청은 이런 주민과 의회의 움직임을 측면지원할 방침이다.

구로구측은 화장장이 건설되면 인접한 주거지역에 분진이 날아드는 등 피해가 있으며, 인접 지역에 기피시설인 화장장을 건설하면서 부천시가 구로구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삼고 있다.

구로구 주민 움직임 지원방침

그렇다고 화장장 건설을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시설이라면 좀더 멀리 떨어진 곳에 건립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화장장 관련법률인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화장장 설치 제한거리에 대한 내용이 사라졌지만, 2001년까지만 해도 민가로부터 1㎞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런 구로구측의 지적에 대해 부천시는 “지자체의 장이 결정한 사안을 놓고 다른 지자체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주장이다. 부천시는 구로구의 의견을 반박했다. 구로구와 사전에 협의할 의무는 없으며 화장장 건립과 관련한 공청회를 개최했을 때, 어떠한 이의도 없었다는 것이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환경친화적으로 지을 예정이기 때문에 인근 지역 주민에게 전혀 피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부천시는 화장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인근 지역과 공동 이용하는 것도 검토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번에 3개 후보지 중 춘의동 일대를 부천시장이 비밀리에 결정한 것도 주민들의 갈등 때문에 사업이 실패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지인 고강동 일대의 경우 ‘인근 주민의 집단적 반발 우려’ 때문에, 범박동 일대의 경우 ‘주민 이주대책이 필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불가 판정이 났다. 춘의동 일대에는 식당 7개와 농가 1가구밖에 없다. 결국 민원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을 선택한 셈이다. 부천시 한 관계자는 “요새는 장례식장을 하나 지으려고 해도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다”며 “환경친화적이라는 점을 홍보해도 심리적인 거부감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부천시의 생각일 뿐, 구로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낮은 산 하나만 넘으면 반경 500m 안에 1418세대 총 8600여명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인지 현장을 실사한 경기도 지역정책과는 부천시에 ‘민원이 우려된다.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부천시는 ‘환경친화적인 시설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부천시는 관련 계획이 경기도를 거쳐 건설교통부의 승인이 나면 부지 매입 등의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설 계획이다.
구로구는 일단 부천시의 대응에 따라 주민들의 실력행사를 측면지원하거나 법률적인 대응을 고려하는 등 저지대책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부천시측은 “구로구민의 반대는 고려하지 않으며 그쪽 주민에 대한 인센티브 계획도 없다”며 협상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양 지자체의 대립은 지자체 수준에서는 풀리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중앙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장치는 있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행정자치부는 양 당사자의 신청이 있거나 긴급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개입할 수 있다. 조정결과를 당사자들이 따르지 않는 경우, 필요한 행정·재정상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감사를 벌이거나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말한다.

하지만 이런 조치를 요구하는 지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 2000년 4월 설치된 중앙분쟁조정위는 지금까지 6건을 접수해 4건을 조정했을 뿐이다. 게다가 직권으로 개입한 경우는 한번도 없다. 이렇게 활동이 저조한 것은 조정결과를 강제하는 수단이 약하기 때문이다. 주민 등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지자체가 행정·재정상의 불이익을 감수해가며 중앙정부의 조정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행정자치부는 지자체 사이에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며 눈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지자체가 기대는 것은 법정이다. 법정에서 내려진 판단은 강제력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개입 필요 얘기나와

[사회]혐오시설 설치 물어보고 해!

2003년 12월 쓰레기소각장을 둘러싸고 인접한 강원도 양양군과 갈등을 빚던 속초시도 지난 3월 오염물질 배출 농도관리를 강화하라는 조정안이 나왔으나 인접 양양군의 협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인접 당사자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후환’을 없앤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은 확실한 강제력을 지니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대법원의 판결까지 나야 당사자들이 승복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시설의 완공이 늦어지는 한편, 행정력도 낭비된다. 구로구의 경우 감사담당관실을 중심으로 관련부서가 화장장 건립 저지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부천시도 “화장장 짓기 전에 여성복지과 직원 관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파악하고 있는 지자체간의 분쟁은 총 21건이다. 기피시설 등의 이유로 벌어지는 지자체간의 분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각 지자체가 타 지자체의 관내 기피시설 이용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결국 이는 지자체 자체시설 설치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만 해도 지난해 광역장사시설 후보지를 공모했지만, 후보지가 나오지 않아 ‘1시군 1장사시설’ 원칙을 천명한 상태다. 화장장과 같은 기피시설의 경우, 외곽지역이 선호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마당’일 수 있다. 분쟁이 발생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민선시대의 단점”이라며 “중앙정부가 효과적으로 개입해서 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용기자 jjy@kyunghyang.com>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