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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용인, 도로 때문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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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양재 고속도로, "사업 반대" vs "조기 착공" 팽팽히 맞서

"환경영향평가도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교통예측량 산출부터 잘못됐다고 감사원에서 지적받은 사업이다. 이대로는 절대로 공사할 수 없다. 소송도 불사하겠다."(영덕~양재고속도로 반대 수도권공동대책위원회)

"늦어도 건교부가 공언한 5월까지 착공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대응하겠다. 건교부 장관을 비롯해 관계자 전원의 파면도 주장할 것이다."(영덕~양재간 고속도로 조기개통 범시민추진연합회)

[사회]성남-용인, 도로 때문에 또...

경기도 용인시 영덕리와 서울 양재동을 연결하는 영덕~양재고속도로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공사 착공과 관련해 한쪽에서는 이대로는 한 삽도 뜰 수 없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최대한 빨리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 때문이다. 공사를 막아야 한다는 쪽은 주로 성남시 주민들, 서둘러 길을 놓아야 한다는 쪽은 용인시 주민들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영덕~양재 고속도로는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에서 양재동까지 이르는 길이 23.7㎞, 왕복 4~6차선의 도로로 용인지역의 교통난을 해소하고 판교신도시의 서울 진출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계획됐다. 정부는 그동안 2006년 말까지 완공하겠다고 장담해 왔지만 일부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발로 착공이 늦어진 탓에 일러야 2008년쯤 완성될 전망이다.

"마을이 완전 두 동강 난다"

문제는 이 고속도로를 둘러싸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이해가 얼기설기 얽혀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우선 용인시민들을 중심으로 뭉친 '영덕~양재간 고속도로 조기개통 범시민추진연합회'(범추연)에서는 이 도로가 하루빨리 개통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판교신도시 분양이 다가오는 등 입주계획이 가속되고 있어 공사가 지연되면 이 일대의 교통대란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범추연의 신태호 회장은 "수도권 남부가 급격한 팽창으로 인해 난개발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라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계획된 사업이니만큼 이를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건교부에서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서 차질없이 진행했어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공사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반대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메아리치는 곳은 도로 대부분 구간이 걸쳐 있는 성남.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주민들은 기존안대로 확정된다면 오래 정붙이고 살던 마을이 완전히 두동강나게 된다며 사업을 시행하더라도 현재 25~40m로 계획된 고속도로의 높이를 5m 정도로 조정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대장동 주민 김봉숙씨(48-주부)는 "건교부 안에 따르면 마을 한 가운데를 40m짜리 흙벽이 가로지르게 된다"면서 "이처럼 황당한 설계안을 해당 지역주민과 단 한차례 협의도 없이 확정하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며 고개를 내저었다.

성남시 수정구 심곡-고등동 주민들 역시 기존 노선은 마을을 단절시킨다며 노선 수정을, 금토동 주민들은 청계산을 보호해야 한다며 노선 우회를 주장하고 있다. 영덕~양재 고속도로 사업에 반대하는 것은 성남시뿐만이 아니다. 수원시 역시 이 도로가 원천유원지와 인근 광교산을 잇는 녹지를 파괴할 것이라며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건교부 계획대로라면 원천유원지가 반으로 잘려 유원지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이유다.

성남과 수원 지역 시민-환경단체가 주축이 된 '영덕~양재 고속도로 반대 수도권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아예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대위 지운근 사무국장은 "이 도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는 지난해 12월 이미 환경부에서 반려됐을 뿐만 아니라 교통량 예측도 잘못됐다고 지적받은 바 있다"면서 "주민과 협의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한 탓에 도로가 관통하는 지역의 주민 대다수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25일 사회간접자본 민간투자제도 운용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덕~양재 고속도로의 예측 교통량이 하루 11만3000대인데, 이 가운데 5만5000대는 산출근거가 없다"며 검토의견을 낸 바 있다.

사태악화 우려 상대방 비난 자제

이 고속도로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성남과 용인 지역 주민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탓이지만 아직까지는 어느 쪽도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있다. 두 지역 주민들 사이에 쌓인 '감정의 앙금'이 어떤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지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남과 용인의 '도로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두 지역 주민은 이미 지난해 중순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 용인시 죽전지구를 연결하는 '분당~죽전 도시계획도로' 개통을 둘러싸고 한 차례 맞붙은 경험이 있다.

당시 성남시에서는 이 도로가 뚫리면 분당 전체의 교통대란이 우려된다며 구미동 주민과 함께 공사를 저지했고, 반대로 용인시 죽전지구 입주예정자들은 죽전지구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망이 부족해 교통체증을 빚고 있다며 공사 강행을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죽전지구의 시행사인 한국토지공사는 지난해 6월 죽전동과 구미동을 잇는 도로공사를 강행했다. 죽전지구 입주를 코앞에 두고 더 이상 도로공사를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성남시는 구미동 주민들과 함께 공사를 저지했고 결국 싸움은 성남과 용인, 두 지역 주민들간 충돌로 비화하고 말았다. 당시 두 지역 주민들이 '지역 이기주의에 사로잡혔다'며 싸잡아 비난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에 '공사 강행'(범추연)과 '공사 반대'(공대위)라는 양보할 수 없는 주장을 사이에 두고 반목하면서도 화살은 모두 건교부쪽으로 돌리고 있다. 범추연에서는 건교부의 우유부단함을 질책하며 "건교부가 더이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대국민사기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흥분하고 있다. 공대위에서는 또 "난개발의 책임을 져야 할 건교부가 용인주민을 볼모로 싸움을 붙이고 있다"며 공사중지가처분신청과 사업심의 무효화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교부는 영덕~양재 고속도로를 오는 5월 착공해 2007년까지는 완공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건교부의 발표가 그대로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범추연이나 공대위 어느 쪽에도 없다. 건교부의 선택이 주목된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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