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에 사는 최모씨(50-사업)는 아침에 출근하다 이웃으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 1시쯤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데 누군가 최씨의 승용차 밑에서 기어나왔다는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차 바닥 부분을 살펴본 최씨는 깜짝 놀랐다. 작은 검은색 상자가 연료통 아래에 부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폭탄물처럼 보였다. '누군가 날 죽이려고 폭탄을 설치한 것인가?'라고 의심한 최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살펴본 결과, 폭탄물로 의심됐던 검은 상자는 휴대전화가 들어 있는 자석상자로 밝혀졌다. 누가 왜 한밤중에 휴대전화를 차 연료통 아래에 붙여놓고 사라졌을까.
![[사회]'친구찾기'는 범행 대상 찾기](https://img.khan.co.kr/nm/ContentsObject/8/8277_1_c7_1.jpg)
이들을 조사하던 경찰은 최첨단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미아방지 등을 목적으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를 장착한 휴대전화를 승용차에 부착해놓고, 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해 위치를 파악한 다음, '목표'의 사생활을 조사했다. GPS를 장착한 휴대전화라고 해도 정확한 위치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오차범위는 반경 50m 내외라고 한다. 하지만 신호 등의 긴급상황 때문에 목표를 놓치는 경우, GPS가 장착된 휴대전화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목표'의 사생활 조사
최근 휴대전화를 통해 위치를 추적한 뒤 이를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도 위치추적을 기반으로 하는 범죄는 발생했는데, 이는 위치추적이 가능한 GPS를 사용한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6월 20일 아침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이모씨(38)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1주일 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고급 승용차가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주변 목격자에 따르면 범인들은 자신의 차인양 경보기를 끄고 시동을 걸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범인들은 9월 16일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유모씨(26) 등 2명은 지난 6월 초 인터넷을 통해 도난차량인 고급 승용차 한 대를 구입한 뒤, 위조된 자동차등록증과 번호판을 준비하고 트렁크 윗부분에 GPS를 설치했다. 열쇠와 리모컨을 미리 복제한 이들은 인터넷에 차를 판다는 광고를 냈다. 이씨에게 차를 판매한 이들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1주일이 지난 뒤 범행에 착수했고, 훔친 차의 번호판과 등록증을 또다시 위조해 서울 양천구에 사는 최모씨(45)에게 판매했다. 이들은 GPS를 통해 차량의 위치를 확인한 뒤, 근처로 이동, 또다른 장비를 이용해 구체적인 위치를 찾아내는 치밀한 수법을 사용했다.
이런 수법이 최근에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치추적이 가능한 GPS가 비싸고, 구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는 일반 GPS는 위치추적이 되지 않는다. 위치를 추적하는 GPS는 50만원~70만원대로 가격이 비싸다. 게다가 실명으로 가입해야 한다. 물론 이런 절차를 생략해 사용자를 추적할 수 없도록 한 장비가 있기는 하다. 판매상은 배터리가 오래 가고 거의 오차가 없다고 선전하긴 하지만 가격이 4~5배 이상 비싸다. 게다가 구입방법도 복잡하다. 이에 반해 GPS를 장착한 휴대전화는 최근 여러 종 출시됐다. 가격 또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런 까닭에 휴대전화를 이용한 위치추적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휴대전화의 친구찾기 서비스다. 최모씨(23) 등 2명은 9월 3일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중형차를 경기 부천에 사는 윤모씨(38)에게 싼 가격에 판매한 뒤, 배터리가 나가기 전인 다음날 오전 윤씨의 집앞에 찾아가 미리 복제한 열쇠로 차량을 훔쳤다. 이들은 훔친 차량을 또다시 부산에 사는 김모씨(39)에게 팔았다가 다시 훔쳤으며, 세번째로 같은 수법으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다가 손님으로 위장한 경찰에 붙잡혔다.
구입 쉽고 저렴해 '인기'
이들이 사용한 수법은 휴대전화 '친구찾기'였다. 최씨는 자신의 여자친구(16)에게 "며칠만 쓰겠다"며 휴대전화를 빌린 뒤, 친구찾기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들은 전화기를 뒷좌석 시트 속에 넣은 뒤 차를 팔았다. GPS가 아니라 기지국을 통해 위치를 찾는 서비스였던 탓에 오차가 GPS보다 큰 반경 500m 내외였다. 이에 이들은 4~5시간에 걸쳐 반경 500m 내외를 샅샅이 뒤져 차를 찾아냈다고 한다. 중학교 동창인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궁리하다가 이같은 방법을 떠올렸다고 한다.
과거에도 휴대전화의 '친구찾기' 서비스를 악용한 사례는 있었다. 올해 1월 검찰에 붙잡힌 일당은 휴대전화 복제를 통해 특정인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복제전화기로 친구찾기 서비스를 가입할 수 있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업계가 친구찾기 서비스 가입시 복제전화기인지 여부, 본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후에도 수차례 서비스 가입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 상황이 변하면서 범죄자의 수법도 달라졌다.
본인 혹은 친구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이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면 사실상 막을 방법은 없다. 한 이동통신업체 관계자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부엌칼이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위치추적 서비스도 악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보안업체 한국통신보안의 안교승 대표는 "자신 혹은 아는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를 통해 위치추적을 하는 경우 확인 장비가 없는 개인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유괴나 미아, 조난 등의 상황에서 한 사람의 목숨까지 구할 수 있는 위치추적 서비스가 범죄자의 손에 악용되면서 양날의 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