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일부 희망근로상품권 지급으로 혼란만 가중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라는 것은 각오했다. 하지만 첫 급여일이 다가오고 보니 이런 저런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지난 7월 초 서울특별시 웹 사이트 민원상담 코너에 오른 글이다. 글을 올린 이는 노원구청에서 일하는 31살의 희망근로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큰 불만대상은 ‘희망근로상품권’. 이 근로자는 “재래시장과 소규모 점포의 매출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취지는 알고 있다”면서도 “할인마트에서 1만원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과 소규모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상품이 동일한가”라고 되물었다. 실제 현금이 1만원 있을 때에 비해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는 “취지는 좋지만 단순한 탁상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실패한 기획”이라고 단언했다.
3월 12일 청와대 ‘벙커회의’에서 입안
7월 15일 기자는 프레스센터 5층에 마련된 서울시 일자리플러스센터를 방문했다. 희망근로프로젝트 담당 부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상품권을 취급하는 가맹점 확보가 발등의 불이다. 담당자는 ‘상인협회’ 등 요처에 전화를 해 협조를 당부하고 있었다. 서울시 일자리정책과 희망근로 담당자는 “7월 초만 하더라도 전체 가맹점 수가 1만5천곳이 안되었는데, 그래도 동분서주한 결과 1~2주만에 4만곳이 넘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가맹점 수가 8만~9만 곳은 돼야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예측한다. 절반 정도 확보한 셈이다. 서울시의 전체 자영업 점포는 19만 곳으로 추정된다. 이 담당자는 “그래도 두 집 건너 한 곳 정도는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희망근로프로젝트는 행정안전부가 지난 4월 입안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최초 논의는 3월 12일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뤄진다. 이날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민생안정 긴급지원대책을 추경 예산에 반영토록 조치했다. 안은 기획재정부가 낸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가 지난 5월 발표한 ‘사업계획’을 보면 4월 중 사업추진 태스크포스 구성·사업비 예산을 확정하고, 5월 초에 지침시달·예산 배정하며, 5월 중 세부사업선정 및 홍보·상품권 제작·참여자 신청공고 및 모집·선정을 하기로 되어 있다. 사업시행은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올해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사업을 ‘분석’하여 내년 3월부터 8월까지 정산·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거의 1~2개월 사이에 입안 및 팀구성, 예산확정에서 모집까지 다 하도록 되어 있다.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17조70억원. 이중 ‘재료비’로 들어가는 4620억원을 빼면 약 12조450억원이 11월까지 전국에 풀리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슈퍼추경’으로 급하게 만든 사업이다 보니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있다. 행안부, 자치단체 모두 인정한다. 입안을 담당한 행정안전부 지역경제과 최영호 서기관은 “일반적으로는 올해 계획해서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인데, 사업 자체가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처방이 아니었느냐”며 “정상적인 정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터진 글로벌 경제위기에 맞서기 위한 ‘단기부양책’이기 때문에 허점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희망상품권 문제가 들어오면서 논란은 커졌다.
희망근로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일급은 3만3000원. 월 평균 근무일수 20여일을 꼬박 채우게 되었을 때 약 83만원의 돈을 손에 쥐게 된다. 그러나 이 돈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별로 30~50%를 상품권의 형태로 지급하게 되어 있다. 이 상품권은 전통 상권에서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단기적이지만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의도다.
일자리·지역경제 활성화 둘다 가능?
희망근로 당사자 뿐 아니라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이 일었다. 유가 증권 등으로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 상 임금조항(43조)의 취지를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행안부는 고용정책 기본법 시행령을 수정, 논란의 소지를 없앴다. 이정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마치 6,70년대 시계를 만드는 여공에게 시계로 상여금을 대체하거나 계열사 백화점 상품권을 지급하던 악습과 뭐가 다르냐”며 “행안부의 조치는 노동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품권 도입의 취지는 대형마트나 유흥주점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거리가 먼 쪽으로 풀린 돈이 흘러들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것. 또 전액 현금으로 지급될 경우 시장으로 풀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30% 가량은 즉각적인 소비효과를 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지급된 상품권은 3개월 내에 쓰도록 되어있다. 어느 정도 진작효과가 있었을까.
Weekly경향은 서울시의 추천을 받아 실제 상품권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지역의 한 마트를 방문했다. 서울 도봉구 창동의 ㄹ할인마트다. ㄹ 할인마트의 김효철 이사(43)는 “7월 초부터 간간이 희망상품권을 들고 와 지급하는 손님이 있었다”고 말했다. 피크는 희망근로프로젝트 참여자의 첫 월급날인 7월 6일. “하루 평균 100만원 가량이 희망근로상품권으로 지급이 되었는데 실제 매출 증가는 어림잡아 20만원 정도였다”고 밝혔다. 소비유형은 대부분 비슷하다. 일단 쌀 한 포대와 화장지를 사고 거기에 개인 기호품이 덧붙여지는 형태다. 평균 지출금액은 11만원 정도. 김 이사는 “희망근로상품권을 들고 오는 사람들은 아무튼 빨리 써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희망근로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정도 돈을 쓰는 것은 아니다. 자치단체도 이 점을 알고 있다. 서울시 희망근로 담당자는 “희망근로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65세 이상 노인인데, 이들은 희망근로를 하기 전부터 ‘3만, 4만원으로 한 달 나기’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현금은 그렇다 치고 쓰고 남은 상품권은? 서울시의 경우 고육지책으로 직원들을 중심으로 되사주기 운동을 기획했다. 하지만 이 또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서울시 공무원노조는 “졸속·전시행정으로 나타난 문제를 직원에게 책임전가하려 한다”며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임승룡 위원장은 “결국 정책취지는 재래시장 활성화와 약자보호인데, 유통이 안되는 상품권을 공무원이 되사주기를 한다면 애초 취지가 뭐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말 유통이 안될 것이라면 서울시 직원 뿐 아니라 일반시민도 사줄 수 있는데 편의적인 정책만 앞세우는 것에 대해 이의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정 서울시 의원(민주노동당) 은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가 각 부서에 보낸 문서를 분석해보면 시 소속 전체 공무원 1만5866명이 6억7392만원 어치 상품권을 구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공무원 1인당 5만~6만원씩 구매해야 하는 액수다. 이 의원은 “문건은 7월 10일까지 상품권 구매 및 실국 배부, 실적 등을 제출하라고 되어 있어 사실상 실적평가를 통해 강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되사주기 운동을 기획한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 담당자는 “경제위기로 서민들이 당하는 고통보다 우리가 사주면서 감수해야 할 고통이 덜하다”며 ‘캠페인’ 철회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노점단속이 희망근로?
우왕좌왕하다보니 해괴한 일도 벌어진다. 서울 송파구는 관할 구역 노점단속에 희망근로 참가자들을 배치했다. ‘취약계층 생계 지원’을 위해 취약계층을 내모는 일을 벌인 것이다. 실제 희망근로 가맹점이 부족하다보니 희망근로에 나온 인력을 다시 가맹점 모집 교육을 이수시켜 가맹점 모집 업무에 투입시키고 있다. 견강부회다. 가맹점을 무리하게 확장하다보니 취지와 전혀 안 맞는 골프용품점이 가맹점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7월 17일 현재 서울에선 13개 골프용품·의류상점이 희망근로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부지역에는 성인용품점도 가맹점으로 등록되어 있다. 해당 자치단체 담당자는 “어차피 희망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만18세 이상이 아니냐”며 문제없다고 강변했다. (르포기사 참조) 상품권 ‘깡’도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월급의 일부를 희망근로상품권으로’라는 아이디어는 성공할 수 있을까. 최예륜 빈곤철폐를위한 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상품권을 강제유통시켜 일시적인 경기부양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이게 일자리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며 “근본적인 의문은 정말 경기부양책이라면 실제 가진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게 해야지, 왜 가난한 사람 호주머니에서 돈이 빠져 나가도록 하느냐는 것이다”고 말했다.
‘88만원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한국사회가 상류층과 하류층이 단절된 ‘8자형사회’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고 예견한 바 있다. 희망근로사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결국 8자형 사회의 상·하류층 단절만 강화시킬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이정호 국장은 “산업체계의 근본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국장에 따르면 한국사회계급구성의 13%를 차지하는 자영업자 비율은 비정상적이다. 그는 “IMF시절부터 실업률 통계를 조작하기 위해 교육생도 취업된 것으로 처리하는 등 기영적인 자영업 육성정책이 진행되어왔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희망근로프로젝트로) 쏟아부은 만큼 단기적인 내수 진작은 어느 정도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일자리도 아닐뿐더러 참가자를 고용시장에 오랫동안 잡아놓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며 “올해 연말이 되기 전에 장기적인 산업체제 개편 모델을 정부와 노동계·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시방편이라는 것은 행안부·지자체 담당자도 인정한다. 서울시 희망근로프로젝트 담당자는 “아무래도 1~2개월, 8월까지는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며 “9월 정도 되면 어느정도 안착되지 않겠느냐”고 희망을 피력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전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며 “노동시장 정책 차원에서는 전반적인 사회적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보다 근원적 처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형마트의 입점 자체는 제재하지 않으면서 상품권만 푼다고 재래시장이 살아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라며 “임기응변식 땜질처방이 과연 실효성 있는 지역경제 살리기 대책인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희망근로상품권, 실제로 써보니… 지역 상인들의 기대는 컸다. 서울 도봉구 창5동 ㄹ 할인마트는 입구에 손글씨로 “희망근로상품권 취급합니다”라는 손 글씨를 내붙였다. 김효철 이사(43)는 “할인마트 홍보전단지에도 크게 박아놓을까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풍물시장에선 아예 상인연합회 명의의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 내걸었다. Weekly경향은 서울시를 통해 희망상품권을 구입했다. 직접 써보기 위해서다. 희망프로젝트 근로자들의 ‘불만’처럼 희망상품권을 내밀었을 때 주인들은 어떤 얼굴을 할까. 거스름돈은 불편없이 돌려받을 수 있을까. ㄹ 할인마트에서 3만3400원 어치 물품을 샀다. 현금 대신 희망근로상품권을 내겠다고 하자 담당직원은 순순히 상품권을 받았다. 취재 목적을 밝히자 김 이사가 나와 기자들을 상대했다. ㄹ할인마트 인근에는 주공 임대아파트가 있다. 가까운 곳에 경쟁업체가 없다는 것도 유리한 입지조건이다. 김 이사는 말한다. “오히려 우리 쪽에서 더 적극적이었다. 희망근로상품권이 발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먼저 서류를 찾아 읽고 구청, 주민센터에 문의했지만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받기 시작한 상품권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었다. 주민센터에서는 가맹점 등록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환전을 위해 간 은행 쪽에서는 고유코드가 발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권은 10여일간 쌓였고, ‘사채라도 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행히 서울시에 낸 민원이 즉효를 냈다. 현재는 비교적 순조롭다. 다른 곳은 어떨까. 기자는 동대문구 신설동 풍물시장을 방문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동대문구는 관련 태스크포스 인원도 다른 구의 두 배에 이를 뿐 아니라 가맹점 수도 월등히 많다. 동대문구의 전체 가맹점 수는 2000여개. 그중에서도 300여 가맹점이 이곳 풍물시장에 집중되어 있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은 오후 5시 무렵. 오가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상점주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희망근로상품권에 대해 물었다. 하나같이 “아직 받은 적 없다”면서도 “그래도 조금만 더 지나면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성인용품점 가맹 “문제없다” 풍물시장 앞 청계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전모씨(57세)는 희망근로상품권과 관련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술 취한 40대 남성이 찾아와 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꺼냈다. 그는 “어느 정도 떼어줄 테니 돈으로 바꿔 달라”고 ‘상품권 깡’을 요구했다. 이에 전씨가 “1만, 2만 원도 아니고 뭘 믿고 20만원 어치나 바꿔 주겠나”라며 거절하자 그는 욕설을 뱉으며 사라졌다. 가끔씩 상품권을 받을 때면 “이게 진짜인지 모르겠다”며 “조만간 가짜가 판치는 것 아니냐”며 걱정스레 덧붙였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있는 가맹점 정보에서 ‘성인용품’을 넣고 검색하면 7군데 점포 정보가 뜬다. 그 중 6개는 동대문구, 이곳 풍물시장에 집중되어 있다. 골프용품처럼 성인자위 기구 등을 파는 점포는 가맹점 취지에 맞지 않다. 풍물시장 점포들의 가맹점 가입은 상인연합회를 통해 한 것이다. 설혹 성인용품점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구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맞다. 동대문구 입장은 어떨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양숙 희망근로프로젝트 태스크포스 팀장은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알아보고 연락주겠다”고 말했다. 2시간 후 문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희망근로 참가자들은 모두 성인이므로 문제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나는) 과장의 말을 전할 뿐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골프용품점이나 성인용품점은 설혹 우연히 섞였더라도 가맹점 정보에서 차단시켰는데 못한 모양”이라며 “즉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