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유독 큰 소리로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마치 C에게 들으라는 듯했습니다. A와 C 그리고 B과장 단 3명으로 구성된 ‘콥’(팀의 하부조직)이었고, C는 A의 상급자였습니다.
C가 사무실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옆자리의 A와 B과장이 대화하는 듯한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C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무언가 C를 배제한 대화를 하는 듯 보였습니다. C는 모니터를 보며 일을 시작했지만, 울리는 키보드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알고 보니, A는 근무시간 중 같은 팀의 B과장과 사내 메신저에서 C를 대상으로 “미친년”, “개또라이”, “개노답”, “극혐” 등의 표현을 수차례 사용하면서 C를 따돌렸습니다. “오른손으로 턱을 괴어. 누나(B과장)도 하자.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해. 고개도 돌려야 해. 본인의 정수리가 상대방(C)을 향해야 각도가 완성됨. 한숨도 푹푹 쉬어주고”라며 C의 정신적인 압박을 유발할 만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C가 업무상 질문을 해도 A는 대답 없이 B과장과 서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젓고, B과장도 C의 건의를 무시하고 A와 상의해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법원은 하급자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습니다. “A 본인은 피해자(C)보다 직위가 낮지만, 가장 선임자인 B과장과 합세하는 수법을 사용해 피해자를 상대로 지위 및 관계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이러한 우위를 바탕으로 피해자를 괴롭힌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라면서, “노골적으로 C에게 소외감을 유발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 사내 메신저를 통해 C에 관한 욕설을 주고받은 것도 자신들끼리 유대감을 구축하는 동시에 C를 직장 관계에서 배제하려는 일련의 행위 중 하나라 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0구합74627). 다른 징계사유도 더해져 A의 해고가 확정됐습니다.
좀더 집단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그룹원 19명이 조직적으로 그룹장 1명을 대상으로 ‘1)사임 요구 피케팅 2)현수막 거치 3)홍보물 배포 4)연판장 작성’을 한 행위가 문제된 사건입니다. 중노위는 다수 하급자의 행위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아 괴롭힘을 인정했습니다(중앙 2022부해1388: 2개월 정직).
나이도 어린 게…
한 서비스센터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센터장은 센터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이고, D는 운영 보조업무를 담당하는 반장이었습니다. D는 센터장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급자로 있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곤 했습니다.
센터장은 직원들의 근무 일정을 파악하는 것이 자신의 업무 중 하나였고, 실제로 D에게 여러 번 이를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D는 센터장을 배제하고, 센터장이 포함되지 않은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만 근무 일정을 공유했습니다. 심지어 D는 다른 직원들에게 센터장이 포함된 방에는 교대 완료 메시지를 남기지 않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다른 직원이 센터장에게 직접 업무 보고를 하자 “그걸 왜 센터장이 알게 했냐”고 화를 내며 센터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습니다. 법원은 상급자에 대한 ‘공공연한 불만 표출’과 ‘의도적 배제’ 행위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울산지방법원 2021가합14843 판결: 해고 확정).
다른 공공기관의 청원경찰 조장과 조원의 사례도 유사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조원이 조장에게 1)손괴된 무전기 안테나 덮개에 대한 조치를 하도록 e메일로 지시했습니다. 2)내부방침 변경에 대해 비꼬는 말투로 시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3)조장이 e메일 말고 직접 대면해 이야기하자고 요구하자 본인이 여섯 살 더 많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저는 조장님 얼굴, 목소리 들으면 스트레스고 미칠 지경이에요”라고 했습니다.
법원은 “이와 같이 하급자인 조원이 조장의 지도 및 감독 권한을 무시하고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조장에게 부당한 업무지시를 한 것은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0구합84143 판결: 해임 확정).
동의하든 말든 녹음할 겁니다
소장 직무대리(E): (업무 지시를 하며) 이 부분은 이렇게 처리해 주세요.
직원(F): (녹음기를 꺼내며) 녹음할 겁니다. 알고 계세요.
E: 저는 녹음에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F: 동의하든 말든 저는 녹음할 거예요.
E: (당황하며) 그래도 녹음은 하지 말아주세요.
F: (녹음을 계속하며) 과거에 녹음했던 내용인데, 확인서에 서명해 주세요.
E: (난감한 표정으로) 제가 왜 서명을 해야 하죠?
F: (확인서를 내밀며) 근데 이게 사실 아닌가요?
E: 서명하지 않겠어요.
F: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제가 기록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예.
이 사례도 하급자의 괴롭힘이 인정됐습니다. 법원은 “E는 F의 상급자이나, F는 E를 자신의 상급자로 대우하지 않고, 오히려 E를 무시하는 언동을 보였으며, E의 거부에도 대화를 계속 녹음하고, 확인서 작성을 거듭 요구하는 등 과도하고 집착적인 행동을 했다. 또한 위와 같은 F의 행동은 E의 업무지시 중에 이루어졌고, 당시 어떠한 불법행위나 그에 대한 채증의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E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1구합87118). 역시 F의 괴롭힘이 인정돼 다른 징계 사유들에 더해져 정직이 확정됐습니다.
을질 방지 규정?
원래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은 ①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 ③신체적·정신적인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입니다. 그런데 ‘관계의 우위’는 ‘지위상 우위’와 달리 직급뿐만 아니라 나이, 학벌, 성별, 근속 기간, 전문지식 등을 종합해 사실상 우위 여부를 판단합니다. 따라서 부하 직원이라고 해도 상사보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상사를 괴롭히는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상급자와 하급자가 쌍방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급자라는 지위만 믿고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아니라고 만연히 행동하다가는 징계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을질 방지 규정’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실제로 2024년, 충남교육청이 ‘갑질·을질·직장 내 괴롭힘 근절계획’을 조례로 제정하려고 했습니다. ‘을질’이란 상급자의 정당한 업무 지시나 요구를 거부하거나, 정당한 지시를 갑질로 부당하게 주장하는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급자의 행위를 ‘을질’로 원칙적으로 규정하면 ‘갑질의 면책 조항’, ‘입틀막’(입을 틀어막음)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허위 신고와 신고 남발로 불이익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고 정당한 갑질 신고마저 가로막힐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결국, 충남교육청의 ‘을질’ 조례안은 전면 삭제됐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대표변호사 lawyer_h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