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후 한 달, 왜 재난은 끝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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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정뱅이마을 주민들 대피소 생활…지자체 소극적 재난 행정에 고통

지난 8월 12일 대전 서구 정뱅이마을에 있는 비닐하우스가 꺼진 채 방치돼 있다. 지난 7월 10일 온 마을이 침수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구 작업은 더디고,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효상 기자

지난 8월 12일 대전 서구 정뱅이마을에 있는 비닐하우스가 꺼진 채 방치돼 있다. 지난 7월 10일 온 마을이 침수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구 작업은 더디고,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효상 기자

“여기만 오면 머리가 아파요. 저걸 보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요. 살길이 막막하고 답답해요.”

대전 서구 정뱅이마을에 사는 이호열씨의 올해 농사는 사실상 끝났다. 지난 7월 10일 내린 큰비로 마을 앞 제방이 터졌고, 온 마을이 물에 잠겼다. 그가 남편과 함께 오이를 키우던 비닐하우스 8동 중 6동이 무너졌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수확철이라 “신나게 오이를 땄는데” 그날 새벽 집중호우에 겨우 몸만 빠져나와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모습을 손 놓고 봐야 했다. 한 달이 지났지만 그때의 막막함은 그대로다. 지난 8월 12일 찾은 그의 비닐하우스는 여전히 무너진 상태였고, 그와 남편이 살던 농막에는 토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재민 대피소에서 지내면서 매일 마을로 와 조금씩 치우고 있지만, 무더운 날씨에 찜통이 된 비닐하우스는 손도 못 대고 있다.

다른 주민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마을 곳곳에는 쓰레기 더미가 여러 군데 있었다. 비닐하우스는 지붕이 꺼졌고, 벼가 있어야 논을 흙이 뒤덮었다. 어떤 논은 한복판에 집 한 채는 족히 들어설 너른 공터가 생겼다. 복구 속도가 제일 빠르다는 주택도 아직 사람이 살 수 없다. 벽지와 장판 없이 시멘트벽과 바닥이 드러나 있었고, 창문도 아직 제대로 달리지 않았다. 마을을 찾은 8월 12일에 이 지역 낮 최고기온은 35.6도까지 올랐는데, 몇몇 집 연통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직도 물기가 가시지 않은 벽과 바닥을 말리기 위해 보일러를 종일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주민들은 복구 작업을 이어가야 했다. 수해 후 한 달, 마을 주민들의 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여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확인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기본법)의 기본이념(제2조)은 국가의 책무를 이렇게 정의한다. 이 법조문은 정뱅이마을 주민들이 회고하는 지난 한 달과는 간극이 크다. 주민들은 “의지할 데가 없다”, “구걸하는 것 같다”, “세금 낸 게 아깝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다”고 했다. 정뱅이마을이 보여주는 재난 행정의 현주소다.

“이재민이 된 우리의 잘못인가요”

지난 7월 10일 내린 폭우로 정뱅이마을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온 마을이 물에 잠겼다. 벼가 빼곡했던 논이 토사에 매몰돼 황량한 공터가 됐다. 이효상 기자

지난 7월 10일 내린 폭우로 정뱅이마을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온 마을이 물에 잠겼다. 벼가 빼곡했던 논이 토사에 매몰돼 황량한 공터가 됐다. 이효상 기자

“빨래 문제가 컸어요. 남자들은 안 하니까 몰라요.”

마을 주민 정유경씨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낀 계기 중 하나는 빨래였다. 수해 지역에서 빨래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집이 잠겨 옷이 몇 벌 안 남았는데 세탁기도 침수됐다. 한여름 복구 작업에 옷은 땀에 흠뻑 젖기 일쑤고 자주 갈아입지 않을 재간이 없다. 한동안은 민간단체가 주민들의 임시 거주지(쉘터)로 특수 세탁차량을 보내주기도 했지만 8월 초 중단됐다. 지원 중단이 하루 전에야 고지돼 대책을 마련할 시간도 없었다. 직후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세탁기 2대를 대여해 마을회관에 뒀다. 쉘터로 이용 중인 기성종합복지관 측의 양해를 얻어 그곳의 세탁기 1대도 사용 중이다. 세탁기는 적은 데 집마다 빨랫감은 많아서 복지관 세탁기는 새벽에도 돌아가는 일이 잦다.

정씨는 이 문제와 관련해 주무기관인 대전 서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는 민원에서 “빨래가 매일 순환되지 않으면 당장 다음날 입을 옷도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쉘터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난의 피해자인 우리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지켜주세요”라며 “피해 상황 게시판에 달랑 한 줄 써놓는 일방적인 (지원 중단) 통보는 사후 조치를 더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라고 했다.

지난 7월 10일 물난리로 지붕이 꺼진 비닐하우스 내부 / 이효상 기자

지난 7월 10일 물난리로 지붕이 꺼진 비닐하우스 내부 / 이효상 기자

주민들은 재난을 대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태도가 소극적이거나 방어적이라고 본다. 재난 피해자를 규정하는 방식부터 그렇다. 정뱅이마을에서 실거주하며 수해를 입은 가구는 35~36가구로 추산된다. 주민등록을 하지 않고 비닐하우스 옆 농막에 거주한 가구, 세입자 등은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호열씨와 남편 김환수씨가 대표적이다. 비닐하우스 농업은 손이 많이 가기에 하우스 옆 농막에서 수년간 실거주했지만, 서구청은 이들의 주민등록이 다른 곳에 있다는 이유로 쉘터에서 퇴거하라고 요구했다. 수해를 입은 것이 맞고, 주소지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지만 서구청은 법상 기준만 강조했다.

쉘터를 떠나면 식사나 세탁기 사용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역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농막에 거주하던 이순자씨는 물난리 후 보름 만에 쉘터를 나왔다. 이씨는 “물난리 난 건 동네 사람이나 하우스 사는 사람이나 같은데 내 이름은 (구청의) 명단에서 빠졌다. 공무원들이 아침저녁으로 명단을 가지고 다니면서 밥 먹는 사람을 체크하더라. 쫓겨나다시피 나왔는데 지금은 집에서 빨래도 하고 알아서 밥도 해야 한다”고 했다.

행정 지원 이뤄질 때마다 만족도 떨어져

정뱅이마을 노인회 사무장 채홍종씨의 침수된 한옥. 지난 8월 12일 대전 서구 정뱅이마을에서 만난 채씨는 “흙으로 지어진 한옥이라 건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복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채씨 부부가 지내는 조립식 주택과 채씨의 노모가 지내는 한옥이 모두 침수됐지만, 정부의 지원 기준으로 인해 한 채에 대해서만 구호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효상 기자

정뱅이마을 노인회 사무장 채홍종씨의 침수된 한옥. 지난 8월 12일 대전 서구 정뱅이마을에서 만난 채씨는 “흙으로 지어진 한옥이라 건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복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채씨 부부가 지내는 조립식 주택과 채씨의 노모가 지내는 한옥이 모두 침수됐지만, 정부의 지원 기준으로 인해 한 채에 대해서만 구호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효상 기자

행정학자인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정뱅이마을의 이재민으로 이번 수해와 그 수습 과정을 경험했다. 권 교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행정이 개입하면 할수록 오히려 주민들의 만족도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지자체가 협소한 기준을 정하고 그에 근거해 지원을 하다 보니, 지원이 될 때마다 오히려 마을의 분열과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다는 얘기다.

권 교수는 “자치행정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기준을 얼마든지 설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재난안전기본법은 각 지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재난에 대응하게 하려고 구체적인 내용을 지자체의 조례에 위임하고 있다.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조례 개정을 통해 지원 기준을 새로 설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장마 때 여러 마을이 수해를 입은 충청남도는 정부의 지원 기준에 더해 완전히 파손된 집은 한 채 수준의 추가 지원을 한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대전 서구 역시 ‘화재피해주택 복구비 지원에 관한 조례’에서는 세입자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 지원금액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권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기준만 따른다면 중앙정부의 행정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지, 자치 행정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번 수해의 원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언제고 유사한 재난이 또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물난리는 제방이 터져서 발생했다. 최소한 지자체에 제방 관리 부실 책임이 있고, 더 들어가면 마을 앞 하천의 관리 부실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본다. 벌써 여러 해 준설(하천 바닥을 파헤쳐 수심을 더 깊게 만드는 일)을 거르면서 하천 바닥이 마을 자리보다 높아졌다. 이번에 마을의 피해가 컸던 이유이기도 하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서 1㎞가량 떨어진 거리에 산을 깎고 논을 매워 만들어진 평촌일반산업단지가 수해의 직·간접적 원인이 됐을 것이라 본다. 물을 머금을 수 있는 산과 논이 없어지면서, 마을보다 지대가 높은 산단에 내린 비가 급격히 마을 쪽으로 쏟아져 내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자체는 이번 물난리를 자연재해로 보고, 제방 개보수로 재발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에 2명뿐인 재난사회복지사로서 정뱅이마을에서 민간구호활동을 하는 김동훈 더프라미스 상임이사는 “원인 규명은 중요한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몇 년 사이 산단이 들어서 수압과 수량이 증가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주민들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재해 원인을 객관적으로 조사할 독립적인 기관도 한국에는 없다”며 “항상 발생하는 문제인데 재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과 지원은 잦아들고 고통이 개인화된다. 지자체가 가진 재량과 권한을 더 발휘하려는 적극 행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전 서구청 관계자는 “현재 폭염경보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서 비닐하우스와 매몰된 논 복구에 인력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기온이 수그러들어 여건이 되면 복구 작업을 재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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