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극지에서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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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꽃이 시들어가는 이유·‘불타는 얼음’ 채취 등 연구 성과 많아

남극 해빙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 해빙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과 북극 등 극지는 기후변화의 최전선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인류 생존의 열쇠를 품은 공간이다. 극지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 경쟁도 치열하다. 극지의 기후변화와 자원 및 생태계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국은 1986년 남극의 평화적 목적 사용 등을 골자로 한 남극조약 가입을 시작으로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건설, 2002년 북극 다산과학기지 건립, 2004년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설립, 2014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건설 등 극지 영토 확장을 위한 기반 조성과 연구 활동에 매진해왔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얻은 연구 성과도 무수히 많다.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 한반도가 더워지는 원리, 북극 이상고온 현상 원인, 남극의 꽃이 병들어가는 이유 등을 규명하고 북극에서 차세대 에너지 저장 매체를 발견했다.

빙하가 녹으면 한반도가 더워지는 원리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남극 기온이 오르면 빙하(남극 대륙에 눈이 쌓여 만들어진 얼음층)가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차가운 물은 남극 바다 표면의 수온을 낮추고 바다 얼음(해빙)의 형성을 도와 일정 기간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 해빙은 극지 바다를 덮고 있는 거대한 얼음판으로,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얼음이 녹아내리면 전 지구적으로 해수면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해수면 높이가 올라간다. 극지연구소가 1992년 이후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남극과 그린란드 빙하량 변화를 분석하고 해수면 변화를 예측한 결과를 보면, 2050년 지구의 평균 해수면이 약 3.6㎝ 오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 수치는 극지방의 빙하 손실만을 고려해 예측한 최소한의 해수면 상승치다. 탄소중립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실제 심각한 해수면 상승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남극과 그린란드에는 지구의 해수면을 65m 높일 만큼의 빙하가 쌓여 있는데, 최근 빙하의 손실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빙하가 녹아내리면 엘니뇨(적도 부근 해수온 상승)와 라니냐(적도 부근 해수온 저하) 등과 같은 기후재해가 반복해서 일어난다. 지구 전체 해양의 순환과 해양 생태계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극지와 멀리 떨어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도 이런 영향을 비껴갈 수 없는 셈이다.

국내 연구팀은 ‘빙하가 녹을 때 한반도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를 규명해냈다. 2020년 극지연구소 등이 진행한 해당 연구 결과를 보면, 남극 빙하에서 녹은 물이 1만7000㎞ 이상 떨어진 동아시아 온도를 0.2도 이상 끌어올리는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팀이 규명한 원리는 이렇다. 남극 빙하가 녹아 바다에 유입된 차가운 물이 적도에 있는 열대수렴대를 북쪽으로 밀어 올리면 북태평양 서쪽의 고기압이 강해진다. 이 영향으로 동아시아로 따뜻한 공기가 흘러 들어가면서 온도가 올라간다. 온도 상승효과는 빙하가 녹은 물이 유입되고 22∼71년이 지나야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반면 이 기간 0.2도 오르는 동아시아와 달리 지구의 평균온도는 0.2도 넘게 하락한다.

당시 연구에 참여한 진경 극지연구소 정책협력부장은 “남극의 현재 모습을 반영한 시나리오와 수치모델 기법을 활용한 결과, 빙하가 녹은 물이 지구 해양의 순환 등을 거쳐 최대 71년 후에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됐다”고 말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 세종과학기지 /극지연구소 제공

연구는 해양수산부 연구과제인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 돌발붕괴의 기작규명 및 해수면 상승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는 얼음 바닥이 해수면보다 낮아 따뜻한 바닷물의 유입이 쉬운 곳으로, 최근 몇 년간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빙하가 녹아내리는 곳이다.

진경 부장은 연구 착수 후 분석 결과를 내놓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극지의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이번 연구는 남극이 녹아내리면서 나타날 한반도의 미래 모습을 처음으로 규명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향후 기후변화 대응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그해(2020년) 11월 미국 학술지 지구물리학연구회보에 게재됐다.

극지연구소는 또 외부에서 오는 따뜻한 바닷물을 막아 남극 빙하가 녹는 것을 늦추는 빙붕의 역할도 2020년 3월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바다에 떠 있는 빙붕은 남극대륙을 감싸고 있는 수백m 두께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다. 빙붕은 대륙 위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북극의 경우도 북그린란드 빙붕이 북극 빙하가 바다로 녹아내리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다만 해양 온난화로 인해 빙붕 바닥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북극 빙붕 전체 면적이 1978년 5386.6㎢에서 2013~2022년 3305.8㎢로 38.6%가 줄었다.

극지연구소는 스웨덴 국제공동연구팀과 공동으로 서남극 아문센해 겟츠 빙붕에서 바다에 잠겨 있는 두께 300~400m의 빙붕이 외부의 바닷물을 차단하는 현상을 관측했다. 연구팀은 빙붕이 줄어들면 남극 빙하 하부로 따뜻한 물의 유입이 늘어나고, 이로 인한 해수면 상승도 가속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최초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활용해 겟츠 빙붕 주변 바다에서 2016년부터 2년에 걸쳐 수심에 따른 유속과 염분 변화 등을 측정한 결과, 빙붕에 가까워질수록 남극대륙으로 흐르는 따뜻한 바닷물의 속도가 감소했고, 해수 중 약 30%만 빙붕 너머 빙하 하부를 녹이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남극개미자리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개미자리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의 꽃이 병들어간 이유

극지방 기후가 따뜻해지면 생태계 변화가 불가피하다. 남극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2020년 5월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에서 남극 현화식물인 ‘남극개미자리’가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점차 하얗게 말라 죽는 원인을 세계 최초로 확인한 것도 국내 연구진이었다.

현화식물은 생식기관인 꽃이 있고 열매를 맺으며 씨로 번식하는 고등식물을 말한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뉜다. 남극에서는 남극좀새풀과 남극개미자리 2종만 자란다. 남극개미자리의 경우 위도 60도 이상의 남극에서 이끼류가 병원균에 감염된 사례는 보고된 바 있으나, 자연 상태에서 병든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남극이 20도를 넘는 등 이상고온을 보이자 식물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곰팡이(내생균)가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병원균)로 활성화했다. 2020년 2월 9일 당시 남극 대륙의 북쪽에 있는 시모어섬의 관측 기온은 20.75도로, 사상 처음으로 20도를 넘어섰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서남극도 지난 50년간(1959~2009) 기온이 연평균 대비 3도 이상 상승하면서 생태계에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실제 세종과학기지 기상관측 자료에 따르면 2014∼2021년 평균기온은 영하 2.4도에서 영하 0.3도로 높아졌다. 극지연구소는 빙하가 녹고 드러난 땅을 식물들이 빠르게 덮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도 함께 세력을 확장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해당 곰팡이 유전체 분석 결과는 지난해 4월 세계적인 학술지인 ‘플랜트 디지즈’에 실렸다.

극지연구소는 또 지난해 11월 남극에서 극초미세먼지가 구름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실시간 관측하기도 했다. 극초미세먼지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직경 1μ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미만 크기의 먼지다. 극초미세먼지의 기원은 주로 바다와 바다얼음에서 배출된 전구물질이다. 전구물질은 디메틸황이나 요오드처럼 특정 조건에 반응하는 가스 형태의 물질을 말한다. 이 극초미세먼지가 서로 뭉쳐 수분을 흡수하면 구름 응결핵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극초미세먼지가 구름 생성 과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추정해왔으나, 극지방에서도 극초미세먼지가 구름 생성 과정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확인된 적이 없었다. 펭귄의 배설물이 극초미세먼지 생성에 기여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바람이 세종기지 인근의 펭귄마을을 지나갈 때 펭귄의 배설물 등에서 배출되는 전구물질이 극초미세먼지의 생성을 많이 증가시킨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극지연구소 제공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극지연구소 제공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채취한 ‘불타는 얼음’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한 것도 최초 사례다. 가스하이드레이트는 물 분자 내에 메탄 등 가스 분자가 들어가 만들어진 얼음 형태의 물질이다. 불을 붙이면 메탄이 타면서 강한 불꽃을 만들어 ‘불타는 얼음’으로 불린다. 액화 및 압축 천연가스 기술보다 상온·저압 조건에서 천연가스를 저장할 수 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 매체로 주목받는다. 다만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녹으면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 발생하게 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아라온호는 2016년 8월 북극 동시베리아해 대륙붕 탐사 도중 수심 500m에 있는 해저언덕 구조에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채취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된 지역은 많지만, 북극 동시베리아해에서 채취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북극에는 전 세계 가스하이드레이트 총매장량의 약 20%가 분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아라온호를 타고 연구팀을 총괄한 진영근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북극 알래스카에서 아라온호를 타고 출발해 약 한 달 동안 북극 동시베리아해 일대를 탐사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이 일대 탐사에 나선 것이었다.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매장돼 있을 만한 곳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스하이드레이트는 상용화 여부가 중요한 과제다. 진영근 책임연구원은 “가스하이드레이트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북극 영구 동토층에 자연 상태로 방치된 가스하이드레이트는 대기권에 메탄을 대량 발생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 반대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채취해 상용화할 경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청정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용화 기술 개발이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상업화로 이어지기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북극 해저 자원 환경 조사 및 해저 메탄 방출 현상 연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탐사 기간 해저 광물자원인 망간단괴를 채취하고 바닷물 속 메탄의 농도가 전 세계 해양의 평균값보다 약 40배나 높은 해역을 발견하기도 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극지연구소 제공

북극의 이상고온 현상도 국내 연구진이 처음 밝혀냈다. 북극의 평년기온은 영하 20~25인데, 2016년엔 20도 이상 치솟으며 0도에서 최대 영상 5도를 기록한 바 있다. 북극의 이러한 이상고온 현상이 중위도의 인구 밀집 지역인 동아시아와 북미·유럽 지역의 한파, 폭설, 폭염 등의 기후재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극지연구소는 2017년 1월 북극의 이상고온 현상이 열과 수증기로 꽉 찬 ‘태풍급 저기압’의 북극 유입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2015년 말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중심기압 930hPa의 태풍급 저기압이 북극으로 유입된 것인데, 이 영향으로 많은 양의 수증기와 열이 공급되면서 극단적인 고온 현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당시 2015년 12월 28일 북대서양에서 생성된 저기압이 31일 북극으로 유입된 후 소멸했고, 다음 날인 1월 1일부터 이상고온 현상이 시작됐다. 북극의 기온 상승이 북극해 얼음 감소 등 북극 내부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는 많지만, 외부 요인이 이상고온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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