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퀴어 퍼레이드는 매년 장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정을 타국에서 듣는 건 꽤 오묘한 감정이었다. 지난 10월 퀴어 퍼레이드 취재로 2박3일 대만 타이베이에 다녀왔다.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 당일인 10월 28일 양선우 서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이 타이베이 시청 앞 광장에서 연대 발언에 나섰다. 대만어로 통역된 그의 말이 대중에 전달될 때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외국인들 틈에 끼어 그의 말을 들으니 한국의 현실이 꽤 ‘객관적’으로 다가왔다.
서울 퀴어 퍼레이드는 올해 서울광장을 사용하지 못했다. 2015년 이래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처음이다. 결국 을지로 일대를 행진했다. 대구에선 홍준표 시장이 ‘혐오’ 딱지를 붙여 “축제는 안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만 타이베이 퀴어 퍼레이드에서 가장 놀란 건 대규모 참여 인원인데, 더 놀라운 건 시청 앞 광장이 온전히 성소수자들을 위한 ‘장소’로 기능했다는 점이었다. 장소를 찾았다는 건 ‘말할 권리’가 보장된다는 걸 의미한다. 아마 그 때문에 수많은 외국인이 10월 마지막 주,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대만 타이베이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대만 현장을 취재하면서 더 궁금해졌다. “성소수자들에게 광장의 의미는 뭐예요?”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게 좋아요. 여기선 우리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국적을 가리지 않고 물어봤는데 동일한 대답이 돌아왔다. 대만 타이베이 퀴어 퍼레이드에서 만난 한 한국인은 “부럽다”고 했다. 그의 말을 옮긴다.
“(타이베이) 시청 건물 위에 깃발 보이시죠? 저는 저런 게 부러워요. 다 같이 ‘응원’해주는 것 같잖아요. 설령 단 하루라도요.”
인류학자 정헌목은 “우리가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그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공간은 ‘장소’가 된다”고 설명한다. <도시인류학>의 저자 리브커 야퍼와 아나욱 더코닝은 “장소 만들기 과정은 언제나 물리적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쉽게 모이기 쉽고 유동인구가 많아 이목을 끌기 좋은 ‘광장’은 때론 만남·연대의 장소가 되고, 추모의 장소가 되며, 집회의 장소가 된다.
개개인의 의미가 담긴 광장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끼어들 때 장소의 의미는 자주 훼손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기억의 공간’은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맞춰 완공하기로 한 희생자 추모공원은 착공조차 못 할 우려가 나온다. 서울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불안전하게 버티는 중이다. 서울시가 “자진 철거”하라면서 계속 압박하고 있어서다. 이태원 참사로 한명도 책임지지 않은 정부의 얼굴이다.
지난해 광화문광장이 재개장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늘었다. ‘누구나 편안한 광장’이라는 보편화한 언어 속에서 정작 개개인의 경험이 설 자리가 없다. 추모의 공간이 자꾸 지워지고,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광장 밖으로 내몰린다. 누구에게 편안한 광장이 된 건가? ‘장소 찾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가.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