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생태교육조례를 왜 없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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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폐지 추진…학생인권 이어 생태교육까지 역주행

서울시교육청의 ‘농촌유학’에 참여한 서울 학생들과 지역 학생들이 함께 텃밭 가꾸기를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전남 오산초등학교 제공

서울시교육청의 ‘농촌유학’에 참여한 서울 학생들과 지역 학생들이 함께 텃밭 가꾸기를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전남 오산초등학교 제공

지난해 유럽을 덮친 이상고온과 올해 인도에서만 벌써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폭염, 그리고 캐나다에서 잇달아 발생 중인 초대형 산불. 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원인은 ‘기후변화’다. 영국 엑시터대학은 최근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기후정책이 변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22%인 20억명가량이 극단적인 기후(폭염)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반도 역시 수년째 가뭄과 폭염, 기습폭우 등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지만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기후위기 교육을 목적으로 제정된 서울시의 ‘생태전환교육조례’ 폐지를 추진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생태전환교육 차원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전남·전북교육청 등과 공동 진행하던 ‘농촌유학’ 사업도 좌초 위기에 놓였다. 국민의힘은 “폐지 후 새 학교환경교육 조례(안)로 통합 대체되므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교육·환경단체들은 “구시대적 역행이자 다수당의 횡포”라며 반발하는 중이다.

‘기후위기 교육’ 중요도 축소한 국민의힘 ‘생태전환교육’은 교육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제22조2를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이 기후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생태전환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실시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이 같은 의무에 따라 2021년 서울시의 생태전환교육조례가 마련됐다. 조례 제정 과정에는 여러 청소년단체도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조례가 제정 1년여 만에 위기를 맞았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의 다수당이 됐다. 국민의힘은 곧장 생태전환교육을 문제삼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2023년도 서울시 예산안 심의에서 국민의힘이 주도한 서울시의회는 생태전환교육 및 먹거리생태전환교육예산, 생태전환기금을 전액 삭감했다. 당시 시민단체 등은 “예산에서 ‘생태’를 지웠다”며 반발했다. 논란 끝에 올해 서울시 추경에서 생태전환교육 예산 등이 일부 회복됐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지난 6월 8일 생태전환교육의 근거가 되는 조례를 아예 폐지하는 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의원 76명 중 54명이 폐지안에 찬성했다. 이들은 폐지 사유로 “현 조례가 ‘환경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금운용 적절성 문제, 유사 위원회 중복 등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조례 폐지의 대안으로 ‘서울교육청 학교환경교육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이 새 조례로 제시한 학교환경교육 활성화 조례안은 기존 생태전환교육조례와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제1조인 조례의 ‘목적’에서부터 이미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조례 목적에 ‘기후위기 대응’을 명시한 현 조례와 다르다. 대신 제8조에 “기후위기 대응 등을 포함한 환경교육을 모범적으로 실시하는 학교를 모범학교로 지정해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현 조례가 교육청 차원에서 생태전환교육 전담부서를 만들어 기후위기 교육 등을 위한 전담 정책을 추진하도록 한 것과 달리 개별 학교 차원의 자발적인 교육을 권장하는 내용이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 등 교육·환경시민단체들은 6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위기 시대 교육기관의 책무를 규정한 조례를 없애고, 퇴행적인 조례로 대체하려는 것은 다수당의 폭거”라며 “국민의힘은 시민의 대표로서 역사와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의 ‘농촌유학’에 참여한 서울 학생들과 지역 학생들이 김치 담그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전남 오산초등학교 제공

서울시교육청의 ‘농촌유학’에 참여한 서울 학생들과 지역 학생들이 김치 담그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전남 오산초등학교 제공

‘농촌유학’도 좌초되나 생태전환교육조례를 통해 설치된 ‘생태전환교육기금’으로 지원되던 ‘농촌유학’ 사업도 축소 내지는 폐지 위기에 놓였다. 농촌유학은 서울에 거주 중인 학생이 지방 소도시의 시골 학교로 전학 가 6개월 이상 체류하며 “생태시민”(서울시교육청)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학부모와 함께 체류하기 때문에 교육청과 해당 지자체 등은 주거비 지원 등으로 월 60만~80만원을 학생가정에 지원한다. 2021년 시작돼 6월 기준 235명의 학생이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전남·전북에 이어 7월부터는 강원도도 참여하기로 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농촌유학에 참여한 학생 10명 중 7명은 체류 기간을 연장하며 시골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다. 만족도가 높다는 뜻이다. 프로그램이 영국 BBC 방송에도 소개되는 등 우수성이 입소문을 타면서 일부 학교에는 수백명의 지원자가 몰리기도 했다. 지자체들도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놓인 시골 학교를 되살릴 주요 방안의 하나로 농촌유학을 꼽고 있다.

국민의힘은 “기금으로 왜 농촌유학만 지원하냐”며 적절성을 문제삼는다. 생태전환교육조례가 폐지되면 농촌유학을 지원할 기금(2022년 기준 10억원)도 사라진다. 시교육청이 “기금 용처가 문제라면 현 조례에서 기금조항을 삭제한 뒤 농촌유학 사업을 본예산에 편입해 추진할 테니 조례는 남겨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희숙 서울혁신교육네트워크 대표는 “농촌유학은 학생들이 장시간 농촌에 머물며 생태적 삶을 체험하는 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도시와 지방이 공존할 수 있는 정책으로 더욱 확대돼야 할 정책”이라며 “이를 지원하는 조례가 폐지된다면 이에 앞장선 시의원들은 시민들에 의해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민정 학부모시민행동365 대표는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이해하고, 지구생태계 내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생태전환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민의힘이 정치적인 이유로 조례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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