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술은 어제 설명해드린 대로 진행합니다. 교수님은 조금 후에 오실 거예요.”
A씨의 말에 수술대에 누운 환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마취과 의사가 환자 상태를 살피며 약물을 주입한다. 환자가 잠들자 A씨는 소변줄을 꽂고 수술 부위를 소독했다. 이어 메스를 들고 ‘수술 시작’을 알렸다. “절개 시작합니다.” 이날 수술은 암이 위치한 위 일부를 절제하는 ‘원위부 위절제술’. 위암환자가 많이 받는 수술 중 하나다.
수술실은 의사가 수술의 핵심만 맡고, A씨와 동료들이 ‘그 외 나머지’를 맡는 식으로 굴러갔다. 이를테면 복부를 절개한 A씨는 잘라내야 할 ‘위 부위’가 잘 드러나도록 밑작업을 한다. 절개 부위를 벌려 고정시켜놓고 시야를 가리는 다른 장기는 옆으로 밀어놓는 식이다. 그사이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는 ‘위 절제 후 소장과의 봉합’이라는 핵심 처치를 마치고 나간다. 남은 수술을 지휘하는 건 다시 A씨의 몫이다. 위와 소장이 잘 붙도록 봉합을 보강하고, 복강 안 세척을 한 뒤 배액관(수술부위의 분비물을 배출시켜주는 관)을 꽂는다. 그후 절개 부위를 꿰매면 수술이 끝난다.
경남권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 A씨는 지난 10년간 이런 수술을 수없이 반복해왔다고 한다. 그는 수술실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병원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남겨본 일이 거의 없다. 수술이 끝나면 의사 ID로 전산망에 접속해 ‘의사의 이름’으로 수술기록지를 작성했다. “나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아는 사람만 알아야 하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죠. 유령이 된 느낌이랄까.” 환자의 생명을 다룬다는 사명감으로 일해왔던 A씨에게 지난 10년의 커리어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한국의 중·대형 병원에서 A씨처럼 일하는 이들을 일컬어 PA(Physician Assistant)라고 한다. ‘의사 보조’ 혹은 ‘진료지원인력’이라는 뜻의 PA는 의사의 의료행위 일부를 담당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선 별도의 국가면허가 존재하지만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 현행 의료법상 이들이 하는 일 상당부분은 ‘무면허 의료행위’다. 병원은 주로 간호사들을 PA로 선발해 활용하면서도, 이들의 존재는 숨기려 한다. 한국 병원들의 공공연한 비밀인 셈이다.
“PA 없으면 병원이 안 돌아간다”
현재 PA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대강의 규모를 추정해볼 수는 있다. 전국의 10개 국립대병원이 밝힌 PA 간호사는 모두 1091명(지난해 기준·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이다. 국립대병원 한 곳당 평균 100명이 넘는다. 사립대병원도 이에 못지않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각 병원 지부를 통해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면, 27개 사립대병원의 경우 PA가 한 곳당 평균 92명이었다. 특히 서울 유명 사립대병원 두 곳은 PA가 각각 270명에 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전국 종합병원의 PA가 1만명은 훌쩍 넘을 것이라고 본다.
PA 규모는 대략 2010년대부터 급격히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병원들의 병상 수는 2000년대 후반부터 크게 늘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세 배(인구당 병상 수 12.4)에 이르렀다. 반면 지난 18년간 의대 정원(3058명)이 동결돼 ‘의사 공급’은 그대로였다. 매해 배출되는 의사 수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병상 수만 늘고 있으니 의사 부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주당 수련(노동) 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 특별법까지 2016년 시행되면서 특히 대학병원의 의료공백이 심각해졌다. 전공의 특별법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전공의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법이었으나, 이들을 대체할 의사들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대학병원들은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간호사들로 메우고 이들을 PA라고 칭했다. 나중에는 대학병원이 아닌 병원들도 간호사를 뽑아 ‘의사 대체인력’인 PA로 활용하게 된다.
A씨는 수술이 많은 외과를 중심으로 PA가 늘던 2010년대 초반에 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술 마무리인 ‘봉합’부터 했다. 그러다 나중엔 복부 절개, 장기 절제, 장기 봉합, 대리 처방도 했다. 현행법상 대개 의사가 해야 하는 행위였다. 그가 맡은 일은 지난 10년간 “마치 한지에 먹물이 번지듯” 법의 경계선 바깥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PA들은 “정신없이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의사면허가 없는데 여기까지 했구나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A씨와 유사한 시기에 수도권의 대학병원에서 PA 일을 시작했던 B씨는 “간단치 않은 시술이지만 자주 하게 되는” 동맥혈압 측정을 예로 들었다. 손이나 팔의 동맥라인에 관을 꽂고 혈압을 직접 측정하는 이 시술은 합병증이 생길 경우 손가락이 괴사할 수 있다. 위험도가 높은 시술이지만, PA뿐 아니라 일반 간호사도 흔히 ‘의사 대신’ 이 시술을 한다. ‘많이 해봤으니 더 잘하지 않느냐’며 대놓고 부탁을 하는 의사들도 있다고 한다.
위급상황에선 의사처럼 대처도 해야 했다. B씨가 일했던 병원에 만성 신부전 환자가 입원했다가 갑자기 심정지가 온 적이 있다. 이른 아침이어서 교수인 전문의는 출근 전이었고, 해당 과에는 전공의가 없었다. 병동에 의사가 없으니 ‘의사 대체인력’인 B씨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10분간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여러 약물을 처방해 주입했다. 심폐소생술은 간호사도 할 수 있지만, ‘진단’과 ‘약물 처방’은 의사의 몫이다. B씨는 이때 환자를 살려냈다. 이 일화는 그러나 상시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PA가 얼마나 큰 부담에 내몰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의사의 일’ 맡겨놓고…“교육이 없다”
PA라는 직종을 공식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먹구구로 일을 맡기다 보니, 업무의 ‘표준’이 없는 것도 문제다. 18년차 간호사 C씨는 2010년대에 4년간 대학병원 내과 PA로 일한 적이 있었다. “외과 PA와 달리 내과 PA는 처방하는 일이 거의 전부”였는데, PA 간에 ‘처방을 주로 누가 내야 하느냐’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입원 환자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면, C씨는 무슨 수술을 언제 받은 환자이고 구체적 증상이 무엇인지를 의사에게 메신저로 설명한 후 “어떻게 처방할까요”라고 매번 물었다. ‘의사의 구두처방 대리입력 및 수행’을 자신의 역할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증상별로 처방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의사에게 알리지 않고 직접 처방을 해버리는 PA들도 상당수 있었다.
의사들 역시 입장이 제각각이었다. “구두처방의 대리입력까지만 시키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특별하지 않은 경우라면 PA가 알아서 처방을 내리길 바라는” 의사들도 있었다. C씨는 ‘특별한 경우냐 아니냐’ 역시 자신이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 전문의가 C씨에게 일일이 보고하지 말고 알아서 처방을 내리라는 뜻으로 “문제 생기면 제가 책임질게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C씨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뇨, 교수님. 교수님은 책임질 수 없으세요.” 그러나 의사에게 C씨처럼 당차게 선을 그을 수 있는 PA는 많지 않았다. C씨 역시 귀찮아하는 의사에게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는 임의처방에 대한 유혹과 매일 싸웠다.
C씨는 대안으로 ‘교육을 받자’는 생각도 했다. 병원 내 관리자급의 의사에게 “우리(PA)가 전공의(의사) 업무를 해야 한다면, 그들이 배우는 걸 우리도 배우게 해달라. 그래야 임의로 처방을 하게 되더라도 제대로 할 것 아니냐”라고 건의를 했다. “(PA) 선생님들이 그런 걸 배울 필요가 있나?”라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한다. 의사의 일을 시키면서도 ‘의사가 배우는 걸 알려고 들지 말라’는 식의 병원 측 태도가 C씨는 답답했다.
C씨뿐 아니라 많은 PA가 교육을 갈구했지만 대개는 “각자 알아서” 일을 배워야 했다. 주로 수술실에서 일했던 A씨의 경우 ‘수술 참관’을 통해 일을 배웠다.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불안해 “임상과마다 있는 ‘의사들의 교과서’를 거의 외웠다”고 한다. 그는 ‘후배 PA’가 들어오면 도제식으로 일을 가르쳤다.
의료계 내에서 PA 교육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B씨는 PA 일을 시작할 당시 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의 연수교육에 참여해 이수증(아래 사진)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PA에 반대하는 의협 회원들이 학회 연수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이 과정은 사라졌다고 한다. 학회 교육이 사라진 이후로는 B씨 역시 영문서적과 외국 의사들이 올리는 술기(수술기술) 영상 등을 가지고 홀로 공부했다. 현재 대다수 병원 현장의 PA들은 선배들로부터 업무 스킬을 물려받는 것 외에는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캐나다에선 ‘유망직업’인 PA
애초 PA라는 용어가 건너온 미국은 어떨까. 2~3년의 석사학위 과정이 있고, 공인된 자격시험이 존재한다. 심장·흉부외과, 정형외과, 소아과 등의 세부 전공을 택할 수 있다. 환자를 돌본 시간이 수천시간 이상이어야 한다는 등의 시험응시 조건도 붙어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재인증’도 거칠 수 있다.
주마다 법령이 조금씩 다르지만, PA가 되면 진단, 검사, 치료, 처방, 수술 등 의사의 업무 상당부분을 공식적으로 위임받아 수행할 수 있다. 2012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좋은 일자리에 연결되느냐’를 기준으로 석사 학위들을 평가한 결과 ‘가장 좋은 석사학위’ 1위는 PA 과정이었다. ‘모던 헬스케어’라는 의료전문잡지는 지난해 PA를 ‘의료 분야의 가장 좋은 일자리’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의료현장에서 PA의 입지가 공고하다는 얘기다. 미국에선 지난해 기준 15만8000여명이 PA로 활동 중이다. 캐나다, 영국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PA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공식’으로나마 PA를 10년 넘게 활용한 만큼 영미권과 같은 방식은 아니어도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한 전문의는 “오래 일한 PA들은 전공의보다 훨씬 더 의사와 손발을 잘 맞춘다. 게다가 PA가 세세한 업무를 다 처리해주니까 이들 없이는 병원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PA 존재를 공식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들의 PA 채용을 막을 수 없다면, 이들에 대한 관리체계를 만드는 것이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다. PA 자격기준이 없다 보니, 일부 중소병원에서는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를 PA란 이름으로 수술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가은 계명대 간호학과 교수가 2021년 41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300병상 미만의 병원 수술실에 투입된 PA 4명 중 1명은 간호사가 아닌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등이었다.
숙련도가 높은 PA가 있다면 환자의 안전한 수술·관리에 더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의사라고 해서 꼭 손기술이 좋으리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PA로 오래 일한 B씨는 자신을 “의사의 제3의 손, 제4의 손”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교수님(전문의)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포셉(핀셋)을 어떤 자세로 잡을지까지도 머릿속에 꿰뚫을 정도로 수술을 복기하고 연구했다”는 그는 “의사의 손처럼 움직이는 PA가 있으면 의사는 더 위험하고 결정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PA가 ‘공식적으로 거론해선 안 될 직역’으로 남아 있는 한, 의사들에게도 인정받는 일부 PA들의 능력은 ‘있지만 없는’ 취급을 받아야 한다.
‘PA 공식화’ 엇갈리는 입장
‘PA 공식화’를 두고 의료계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대학병원들과 이곳에서 일하는 전문의 상당수는 PA의 존재를 공식화하기를 바란다. 반면 소규모 병·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들은 강력히 반대한다. 지난 2월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방사선종양학과 PA간호사 채용공고’를 냈던 삼성서울병원의 병원장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의사단체들이 PA를 반대하며 공개 고발하는 일은 그동안에도 수차례 있었다. 2021년 서울대병원이 PA로 일해온 간호사들에게 ‘CPN(임상전담간호사)’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관리체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가장 반발했던 이들도 의사단체였다.
전공의협의회 역시 PA에 반대한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노동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 특별법 때문에) 의사 일손이 부족하다면, 입원전담전문의를 채용하면 되는데도 자꾸 간호사들을 활용하려고 하는 병원이 문제”라고 했다. 입원전담전문의는 입원부터 퇴원 때까지 환자를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전문의를 말한다. 2016년 전공의 특별법 시행으로 인한 의료인력 공백을 막기 위해 생겨났다. 병원들은 그러나 입원전담전문의 구하기가 쉽지 않아 PA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비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수년 전 월 1500만원씩 보수를 주겠다고 채용공고를 냈는데도 입원전담전문의를 구하지 못했다”면서 “(입원전담전문의의 일이) 교수님 뒤치다꺼리로 여겨지고, 환자가 중증인 경우도 많아 피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간호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간호협회 역시 ‘PA 공식화’에 반대한다. “(PA를 두게 된) 근본 원인이 의사 부족이니,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간호협회 백찬기 홍보국장)는 것이다. 무면허 의료행위에 내몰리는 ‘PA 간호사’들에 대한 공론화에 나섰던 보건의료노조 역시 “3058명 의대 정원을 깨고 의사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최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PA 직역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려면 미국처럼 석사급 정도의 별도 교육과정이 필요할 텐데 의사들이 강력히 반발할 것이다. 의사 수 확대만큼이나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체계 만든다지만…
의료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정부는 일단 ‘PA 관리’부터 투명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의료현장에서 PA로 불리는 이들을 ‘진료지원인력’으로 칭하기로 하고, 관리·운영체계안을 만들어 8개 종합병원에서 시범운영케 했다. 의료기관장을 포함한 ‘진료지원인력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인력 운영지침을 만들고, 교육을 개발해 실시토록 하는 내용이 정부가 마련한 방안의 골자다.
복지부는 다음 달 종료되는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올 상반기 중 ‘진료지원인력’에 대한 대책을 발표한다. 대책에는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를 갖추고 있느냐 여부를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기준으로 넣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PA 논란은 그러나 정부 대책 발표 이후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PA가 의사 업무를 어디까지 위임받을 수 있느냐’에 대한 병원·의사·간호사 간 입장차를 좁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명하 의협 비대위원장은 “PA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들에게 ‘진료 보조’ 이상의 일을 맡기면 안 된다는 게 핵심”이라면서 “현장에서 어디까지 위임 가능한지를 의협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 중이다. 정부가 (PA의) 업무범위에 대한 안을 확정하면 살펴보고 입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의사는 간호사에게 ‘진료 보조’를 지시할 수 있지만,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맡겨선 안 된다. 그런데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 일부 의료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례와 정부 유권해석이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 방안’은 정부가 위법·합법의 경계를 제시하고, 법 테두리 내에서 PA인력을 투명하게 활용하자는 게 핵심이다. 정부 방안의 토대가 된 연구를 진행한 윤석준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보건대학원장)를 지난 2월 28일 만나 PA인력의 바람직한 운영 방안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연구결과 도출된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안’은 ‘PA의 공식화’를 의미하는 건가.
“현재 한국 병원문화에선 미국, 캐나다, 영국같이 PA를 양성화하기가 쉽지 않다. 별도 면허를 두기 힘들다는 얘기다. 의사들은 일자리를 뺏긴다고 생각할 것이고, 간호사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당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장의 PA는 기록을 남기지 못하면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행위를 했으면 기록이 남아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관리체계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간호사들은 간호기록지에 이름이 남아 있지만, PA들은 그렇지 않다. 관리·운영체계에선 의사와 공동서명을 하게 했다. 합법의 범위에서 일한다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진료지원인력(PA)이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를 제시했는데 애매하게 표현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동맥혈 채취, 수술 부위 봉합 등은 ‘의사가 직접 수행해야 한다’면서도 ‘위임가능 여부 논의 필요’라고 돼 있다.
“의료현장에서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업무 50가지를 뽑아 ‘의사가 해야 하는 것’ ‘진료지원인력(PA)에게 위임 가능한 것’을 가려냈다. 정부의 유권해석, 법원 판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했다. 그런데 사실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석고붕대(cast)’의 경우 진료지원인력이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 의사가 있는 반면, 뼈를 조금이라도 잘못 맞추면 환자 상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절대 위임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진료지원인력의 업무기준은 앞으로도 계속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PA의 업무범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단시간에 정리될 문제는 아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같은 공공연구기관에서 법적·의학적 근거를 찾아 ‘PA가 할 수 있는 행위’인지 여부를 가려내주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PA 규모가 커진 근본 이유는 ‘의사 부족’ 아닌가.
“정확히 말해 ‘병상 대비 의사 부족’이다. 병상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늘려놨으니 현장에선 의사·간호사가 부족해졌다. 정부가 10년쯤 전에 한번은 개입했어야 했다. ‘병상 수 조절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의사 수 확대’가 근본 해법 아닐까.
“의사 부족 현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신경외과 전문의 숫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할 때 그리 적지 않다. 그런데 중증 뇌혈관 수술을 응급으로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이 일어났다. 소방관의 개념처럼 권역별로 필수 의료를 담당할 센터를 만들고 의사 인건비와 운영비를 총액확정계약(Lump Sum, 럼섬계약)하듯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의료행위가 일어나야만 지불을 해주는 상황인데, 의료행위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주자는 얘기다. 이런 디테일이 없이 ‘의사 수 확대’만 하면, 아마 사각지대를 메우기 어려울 것이다.”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 도입으로 PA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기준에 ‘진료지원인력 관리’ 여부를 포함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소위 잘 나간다는 병원에서도 PA를 두고 있다. 아마 상급종합병원들은 별도의 훈련과정을 만들면서 제대로 운영하려고 할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비수도권 대학병원들은 좀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이들 병원도 투명한 관리에 적극 나설 수 있게끔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