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현대자동차 측이 이른바 ‘알박기 집회’로 다른 사람의 집회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언론사 몇 곳만 해당 내용을 다뤘다. 파장은 크지 않았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인권위는 2018년 5월에도 비슷한 취지의 결정을 했다. 심지어 대법원이 2018년 11월 현대차 측의 집회 형태를 두고 “집회가 아닌 경비업무의 일환”이라며 집회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한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런데도 왜 이런 집회 행태는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우선 인권위 결정문 2건과 법원 1~3심 판결문,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 등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현대차가 집회를 신고한 뒤 실제 개최하지 않고 있다가 후순위 신고자가 집회를 하겠다고 등장하면, “우리가 먼저 신고한 장소”라며 형식적인 집회를 개최했다는 점을 파악했다. 또 현대차 측이 집회에 직원은 물론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한 사실도 확인했다.
객관적인 수치가 있다면 더 확실할 것 같았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2017~2022년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주변의 집회신고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현대차뿐 아니라 기아(옛 기아자동차)도 사옥 주변에 집회신고를 내고 있었다. 신고는 거의 매일 이뤄졌다. 현대차와 기아의 집회신고 내역만 A4용지 약 850쪽에 달했다. 현대차 측은 최근 6년 동안 모두 4490건의 집회신고를 했지만 747건(16.6%)만 개최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령 집회와 알박기 집회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의 집회의 자유, 즉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행사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경찰이 대법원 판례와 인권위 결정 등을 토대로 알박기 집회, 유령 집회의 폐해를 개선하려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도 선량한 집회 신고자가 부당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단순히 규제만 늘리는 방식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잘 살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의 사저 등의 주변을 절대적인 집회금지 장소에 새로 포함하려는 시도보다는,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공력을 더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