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휴가라고 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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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내 바지 어디 갔어?”

엄마가 대뜸 묻는다. 분명 아까 여기 두었던 바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답한다. “아까 차에서 본 것 같은데?” 그러자 엄마가 냅다 소리친다. “글쎄 내가 여기다 놨대두!”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엄마는 씩씩거리며 차에 갔다가 곧 얌전해져서 돌아온다. 바지는 차 안에 잘 개어져 있었다. 바지는 건드린 적도 없고 심지어 그 소재를 찾아주기까지 한 내 입장에서 엄마의 난데없는 호통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를 설명하면서 운전하다가 인천공항에 가는 길을 잘못 들었다. 한참을 돌아 도착한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가 항공사가 있는 H구역에 체크인 수속하는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그 끄트머리에 엄마를 세워두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E 구역에서 환전한 돈을 찾고, D구역에서는 여행자 보험을 들어야 한다. C구역에서 우리가 입고 온 두꺼운 옷을 맡기고, 도착해 쓸 유심은 A구역에서 찾아야 한다. 한 구역은 커다란 학교 운동장만 했고 사람으로 가득했다. 여행자 보험을 들었을 즈음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외투를 맡기고 유심을 찾았을 때는 땀이 났다. 여분의 현금까지 찾아 A부터 H까지 다시 8개의 운동장을 뛰어왔을 때는 온몸이 축축했다. 엄마가 말했다. “패키지여행 가면 다 알아서 해주던데.”

엄마가 조금 더 넓은 자리에 앉았으면 해서 비상구 자리를 부탁하자 승무원이 묻는다. “최근에 수술하시거나 상처가 생긴 적이 있으신가요?” 엄마가 먼 곳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왼쪽 무릎을 수화물 저울에 턱 하고 올린다. “글쎄, 수술을 했죠. 여기 왼쪽 무릎이 살살 아파지기 시작했는데 그게 그러니까 5년 전이었나….” 막 수술 부위를 짚어주려는 순간 승무원이 다시 묻는다. “고객님, 최근 6개월 안에 하신 적 있으신가요?” 내가 말한다. “없습니다.” 엄마는 무릎을 문지른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승무원이 말한다. “비상상황 시 승무원과 함께 승객들의 대피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엄마가 말한다. “아니, 노인이 먼저 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말한다. “도우시겠답니다.”

엄마와 첫 해외여행이다. 여행을 가면 제일 싼 도미토리에만 묵어왔던 내가 생애 처음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여행의 참맛은 무계획이라며 주요 관광코스 앞에서 코웃음을 치던 내가 온갖 교통수단과 관광지를 줄줄이 외웠다. 이동과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필요한 것을 빈틈없이 준비했다. 엄마가 고른 나라는 태국이었다. 아픈 다리를 위해 원 없이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였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방콕 공항에 도착한 엄마와 나는 습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공항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를 보며 엄마는 말한다. “제주도 같네.”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까지 가는 택시를 잡느라 한 시간을 헤맨다. 다리가 아프고 귀가 잘 안 들리는 엄마를 이끌고 1층에도 갔다가 4층에도 갔다가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묻는다. 모두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이제 엄마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공항을 떠나갔을 즈음 저 멀리서 한 태국인과 대화하는 엄마가 보인다. 모국어가 방콕 공항에 울려 퍼진다. “택시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자정이 넘어 도착한 호텔의 이름은 불사조였다. 우유갑 같은 방 안에 침대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실내화도 없고, 온수도 없고, 전화선도 없었다. 심심하고 단조로운 생김새의 호텔 건물을 제외한 주변은 폐허처럼 황량하다. 엄마는 처음 보는 나라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있는 게 없는 숙소에 도착했을 때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기쁘지도 새롭지도 실망하지도 않는 얼굴이다. 그냥 잠들기는 아쉬워 근처에 하나 있는 편의점에 들러본다. 하얗게 센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할머니가 편의점에서 작은 도시락을 사서 문밖에서 기다리던 개에게 준다. 둘 다 길에서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이후 편의점에서 할머니들을 마주칠 때면 그때 그 할머니가 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어제 그 할머니가 몇 시간을 운전해 다시 이 지역의 편의점에 나타났을 리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물 두 병을 사서 불사조 호텔로 돌아왔다.

엄마는 태국 화폐를 뭐라고 부르냐고 열 번을 물었다. 나는 열 번 모두 바트라고 대답했다. 바트가 어려우면 신드바드를 생각해보라고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계속해서 바트를 동이라고 말한다. “나한테 지금 만 동이 있어!”라고 외치는 식이다. 동은 베트남의 화폐로, 엄마는 베트남에 가본 적도, 동이라는 화폐를 쥐어본 적도 없다. 엄마는 태국 전통의상을 아오자이라고 부른다. “아오자이 입고 들어갈 수 있어?”라고 묻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아오자이는 베트남의 전통의상이며 엄마는 베트남에 가본 적도, 그걸 입어본 적도 없다. 이어서 엄마는 우리의 여행 행선지 중의 하나인 아유타야를 열한 번 물었다. 기록 경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유타야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는 우선 “아”라고 말한 뒤에 나를 아주 오래 노려본다. 엄마는 온갖 표지판에 적힌 꼬부랑거리는 태국어 글씨를 마찬가지로 한참 노려본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어떤 때는 말한다. “조금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여행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결정하고 이동하는 모든 중심 주체는 나다. 다리가 불편한 엄마가 편하게 오르고 내리고 이동할 방법은 많지 않다. 영어를 잘하는 태국인 또한 많지 않다. 영어로 “여기 엘리베이터 있나요?” 하고 물으면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위로 올라가는 몸짓을 하며 다시 묻는다. “엘리베이터?” 결국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번역기를 돌려 그들 앞에 내민다.

엄마에게 무언가 말할 때도 평균 2.5회가량 반복한다. 엄마는 귀가 좋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다. 태국은 어디든 조금 시끄럽다. 길에서 무언가를 보고 엄마에게 “귀엽다”고 말하면 우선 “응?”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시 “귀엽다” 그리고 또 “귀엽다고.” 말하고서 “방금 내 말 들었어?” 하고 묻는다. 그러다 보면 귀여운 것은 이미 지나가 있다. 그나마도 그렇게 전달되었던 내 말들은 엄마의 기억 속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절반 정도만 남는다. 전달 과정에서 절반, 기억 과정에서 절반 이탈하니 우리 사이의 소통률은 25%에 가깝다. 내 말을 한 번에 제대로 알아듣고 기억하는 사람은 이곳에 없다. 나는 수도 없이 다시 말한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식당과 관광지, 마사지 가게를 검색하고 거리와 평점과 가격을 비교한 뒤 교통수단을 결정한다. 그 사이 엄마는 길에서 넘어질 뻔하고, 물건을 잃어버릴 뻔하거나 갑작스러운 풍경에 멈춰서 있다. 그곳 어딘가에 엄마가 기뻐하는 순간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휴가를 온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디선가 엄마의 탄성이 들린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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