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나의 해고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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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노동법

서울시내 한 대형교회에서 방송실 정규직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외주화하고 이에 따르지 않은 직원들은 정리해고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외주 계약직을 거부한 8명의 정리해고자는 노조를 만들고 소송을 제기해 결국 부당해고를 인정받게 됩니다. 교회는 종교단체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해고자들의 신앙을 문제삼으려 했지만, 신앙은 노동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 JTBC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 JTBC

“변호사님, 우리 교회 방송실을 외주 기업으로 넘긴다고 하네요, 사직서를 쓰라고 합니다.”

“갑자기 외주요? 사유가 뭔가요?”

“잘 모르겠는데, 전문성을 키우고 멀티플레이어로 만든다고 해요.”

“외주 기업으로 안 가면 어떻게 된다고 하나요?”

“정리해고한다는 것 같아요.”

“부당하고 어려운 일이네요. 사직서를 한번 쓰면 돌이키기는 어렵습니다. 쓰실 건가요?”

한 교회에서 발생한 정리해고사건

서울에서도 신도 수가 상당한 A대형교회에서 정리해고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외주화에 응하지 않는 근로자 8명에 대한 사건이었습니다. A교회는 대형교회 중에서도 특히 방송시스템이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독자적으로 OTT(인터넷을 통한 영상 미디어 콘텐츠 제공 서비스)를 론칭했고, 체계적인 방송시스템도 구축했습니다. 교회는 방송실을 통제하기 위해 장로들을 주축으로 방송자문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다만 방송자문위원회의 의견에 대해(특히 외부에 예산을 지출하는 계약 관련), 해당 분야 전문가인 방송실 직원들과 충돌했던 모양입니다.

이 사건 외주화의 문제는 특별한 이유나 근거 없이 근로자들을 회사의 울타리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1)교회 경영진인 장로들과 친분 있는 외부업체에 컨설팅을 맡겨 ‘우리 업체에 외주화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근거로, (2)18명이나 되는 방송실 정규직 직원 전체를 ‘전문화’라는 명목으로 계약직으로 외주화했고, (3)외주화에 따르지 않는 직원들은 자리가 없다는 명목으로 정리해고(또는 근무지와 먼 곳으로 인사발령)한다는 시나리오가 명확했습니다.

노동법은 어렵습니다. 법대를 나와도, 친구가 물어보는 근로기준법이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알려줄 수 없었습니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노동법은 꼭 알아야 해!’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리해고에 관한 노동법은 더욱 어렵습니다. 노동법 기고문을 쓰고 있지만, 정리해고법을 처음 접한 것은 학교 수업이 아니라 만화 <송곳>이었습니다(대형마트 ‘푸르미’ 정리해고사건을 담은 이야기로, 드라마로도 제작됐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외주화와 정리해고 구상에, 노동법이 어렵긴 하지만 너무 과격하고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당회에서 정해진 일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이건 판례에 비춰볼 때 명백히 부당해고다”라고 몇 번이고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당회의 권위 앞에서는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외주 계약직을 거부한 8명이 정리해고됐습니다. 정리해고자들끼리 노조를 결성하고, 외부에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부조리 앞에서 분명 하나쯤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인간이 되기로 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 심문회의 날. “근로자들은 수십년간 몸담아오고 사랑해온 교회를 상대로 싸울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만들어버리는 부당한 해고절차에는 다투고자 합니다.” 그리고 정리해고의 4요건(▲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에 맞지 않다고 마지막까지 목 놓아 주장했습니다. 특히 외주화의 이면에는 사적인 이해관계가 있었고, 누군가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도 호소했습니다. ‘바로 앞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걸음 내디디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8명의 해고자와 함께.

교회 측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사용자에게 기업경영의 자유가 있고, 외주화로 자리가 없어졌는데, 해고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심판자인 공익위원들도 근로자들에게 ‘이미 외주화가 되어 일자리가 없는데 회사가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회사는 절대 사업을 외주화하면 안 되는 것입니까?’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역시 현실은 드라마와 다른가? 다소 암울했습니다.

같은 날 밤 9시, “부당해고 구제신청 인정”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기쁜 순간이었습니다(노동위원회는 보통 심문회의 당일 저녁에 결론을 신속히 알려줍니다). 환호했습니다.

지노위는 (1)출석 교인 수가 급감했다는 근거가 없고, (2)‘외주화’가 관리비용 절감, 노무관리에서 우월하다는 사정만으로는 경영상 필요성 요건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3)교회가 컨설팅을 의뢰한 그 업체에 외주화도 맡긴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 (4)외주화 이후 인력구조 차이가 별로 없고, (5)교회 경영진도 근로자들이 전문가인 점을 인정하고 있는 점을 토대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a)외주화 결정 당시 근로자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b)외주화 결정 직후 용역업체로의 이직 또는 퇴직의 양자택일만 요구했으며, (c)다른 부서에서 근무 가능한지 타진하지 않았던 점, (d)회피 노력을 하더라도 기업 전체 차원에서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e)해고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들어 해고회피 노력도 ‘없었다’고 봤습니다. 예상보다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교회가 노동법을 묻다

사건은 중앙노동위원회로 갔습니다. 교회 측은 “종교단체의 특수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해고자들이 신앙이 없었습니다”라고도 주장했습니다. 노동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듯한 주장과 함께 노동법을 적용하더라도 조금 완화(?)해 봐달라는 취지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영역에는 노동법이 없을까요.

법원은 다른 교회 전도사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해 그에 따른 보호를 받는지 여부는 ‘종교적 교리나 종교의 자유에 의해 그 판단이 달라지는 영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교회가 급여액수를 정확히 정하지도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대표자에게 근로기준법, 퇴직급여법 위반죄로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춘천지법 2020노1052).

신앙은 노동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해고된 근로자들의 신앙을 평가할 근거도 없지만, 그것이 해고의 기준도 아니며, 평가의 영역도 아닙니다. 다음과 같이 심판관은 종교적 교리와 신앙에는 관심이 없고, 해고했던 정확한 근거와 수치를 요구할 뿐입니다.

공익위원: 외주를 준 용역업체 매출이나 실적이 얼마입니까?

사측: 정확히 모릅니다.

공익위원: 용역업체 자본금은 얼마입니까?

사측: 알아보겠습니다.

공익위원: 용역업체에 연간 4억3000만원을 주기로 계약한 것 맞습니까?

사측: 인원이 증가해 더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익위원: 그러면 경비 절감 효과가 있는 것은 맞습니까?

사측: ….

<송곳>은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푸르미마트 해고자 전원 복직, 미지급 월급 지급, 손해배상 청구 취하가 받아들여졌습니다. A교회에서도 결국 근로자 8인 중 5인에 대해서는 복직을, 나머지 3인에 대해서는 명예퇴직과 위로금을 지급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직장에는 언제나 또 다른 문제가 있겠지만, 일단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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