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정명석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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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말이야. 젊은 친구들이 엄청 좋아하던데, 왜 그런 거야?” 식사 자리에서 회사 선배가 불쑥 던진 질문이다. 장안의 화제인 ENA 채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즐겨본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참이었다.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의 사수이자 시니어 변호사인 정명석(강기영 분)은 주인공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상급자’ 정명석에게 열광했다. 횡설수설하며 캐릭터의 장점을 늘어놨지만, 좀더 분명한 언어로 정리하고 싶어졌다. 명석이 왜 좋을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오른쪽)와 사수 정명석 변호사가 재판에 출석한 모습 / ENA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오른쪽)와 사수 정명석 변호사가 재판에 출석한 모습 / ENA 제공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명석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영우의 로펌 채용을 반대했다. 이런 태도는 영우와 함께 일하며 금세 변했다. 장애를 하나의 특성으로 인지한 그는 유연한 태도로 영우와 소통했다. 동료로서 존경하는 모습도 숨기지 않았다. 영우에게 칭찬의 의미로 “그거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말한 뒤,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것 같다”며 곧바로 표현을 교정했다.

이렇게 보면 명석은 그저 ‘다정한 사람’ 같다. 다정함은 ‘좋은 선배’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가 훌륭한 상급자라고 확신한 장면은 따로 있었다. 6회 ‘내가 고래였다면’ 편에서 명석은 영우에게 동료 변호사 최수연과 함께 ‘탈북민 강도 사건’을 맡으라고 지시한다. “최수연 변호사가 지나치게 열정적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피고인에게 감정이입을 과하게 하는 느낌이라 우영우 변호사가 사건을 같이하면서 ‘워워’ 시켜주면 어떨까 하고.”

후배 변호사가 맡은 일에 얼마나 몰입하는가를 알고,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하는 선배라니. 무릎을 ‘탁’ 쳤다. 동료의 장단점을 꿰뚫는 그의 전략은 재판에서도 빛을 발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이 증인에게 동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상대를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영우 대신 수연을 투입해 증인신문을 하도록 한다. ‘일이 되는 방향’으로 후배를 이끌었다. 지시엔 늘 설명이 따랐다. 지시받는 후배로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의 가이드라인이 주어지는 셈이다.

물론 명석도 완벽하지는 않다. 한 의뢰인이 상담 자리에서 군대 얘기를 꺼내자 명석은 금방 대화에 몰입했다. 여성 변호사인 영우가 대화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하지만 ‘완벽한 선배’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곤란에 처한 후배들에게 “책임은 내가 진다”며 격려하는 모습만으로도 그는 좋은 선배임이 분명하다.

입사 7년차. 선배라는 호칭의 무게를 자주 생각한다. 일부 기업은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직급 상관없이 ‘님’ 호칭을 쓴다고 한다. 기수문화가 여전히 공고하고, 상명하복식 의사소통이 팽배해 있는 언론사엔 그런 변화가 금방 찾아올 것 같지 않다. 호칭은 죄가 없다.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주변에 있는 ‘명석들’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나 역시 ‘다정하고 꽤 괜찮은’ 선배들의 조언과 격려로 기자생활을 버텨왔다. 누군가에게 명석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큰 욕심이지만 노력이라도 해볼 참이다.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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