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부터 입을거리까지… 없는 게 없어요
시장은 번영의 중심이다. 전통시장이 줄어들고 위축돼가고 있지만, 인천 부평종합시장은 아직도 활기가 넘치는 몇 안 되는 시장 중의 한곳이다. 채소와 수산물, 먹을거리부터 생필품과 옷까지 없는 게 없다. 가게에 따라 새벽부터 문을 열고 자정까지 장사하며 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다. 통칭으로 부평종합시장이라 하지만, 시장 안을 살펴보면 깡시장과 진흥종합시장 그리고 부평종합시장이 있다. 한편에 있던 부평자유시장은 철거로 사라졌다. 깡시장은 농수산물 경매를 하던 곳이나 이제는 경매기능을 잃어버렸다. 진흥종합시장은 상가건물로 출발해 이제는 부평종합시장의 일부가 됐다. 시장은 모두 5곳의 구역으로 나눈다. 장터 곳곳이 골목으로 연결돼 있어 처음 오는 이들은 미로 속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공용주차장이 잘 돼 있고, 안내판과 시장 골목도 잘 정비된 편이라 지금도 시장을 찾는 이들이 많다.
한국전쟁 직전에 시장이 처음 열렸다. 당시 공설시장으로 출발해 좌판이 대부분이었고, 부평 일대 미군부대의 물건을 주로 다뤘다고 한다. 암시장의 커피와 양담배를 팔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몇차례 자리를 옮긴 끝에 지금의 장소에 닻을 내렸다. 부평수출산업공단이 들어선 후 1970년대부터 부평 인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팽창과 번영도 필연적이었다. 부평종합시장에서 살림살이를 구하고 하루를 살 양식을 장만했다. 부평의 젖줄이 된 것이다. 1970년대 경제 번영기 신화의 산물이 부평종합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산물은 어디보다 싱싱하죠”
시장 안 상품은 시대를 반영해 변해왔다. 지금의 가게는 워낙 다양하다. 아마도 시장 개장 이후 가장 많은 품목이 팔리고 있지 않나 싶다. 순대부터 해산물과 건강식품, 옷과 이불과 반찬거리까지 어느 전통시장도 이처럼 다양한 물품으로 가득 찬 골목을 갖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물건 중 해산물과 생선 등이 눈에 띈다. 인천이 지척이라 싱싱한 해물들이 어물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둥거리는 꽃게를 고르는 손님에게 상인은 친절하게 상태 좋은 녀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있었다. 상인은 “꽃게잡이 철이 지났는데도 인천과 강화도 연평도 서산 등지에서 물 좋은 물건이 많이 들어온다. 서울과 부천, 수원 등지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이곳의 생선과 해산물은 어디보다 싱싱하고 값이 좋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치원생인 듯한 아이 하나가 수족관에 매달려 방어며 광어 등이 헤엄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그 옆의 아버지는 장바구니를 들고 아이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통통한 물고기들이 예쁘게 헤엄친다”는 아이한테 차마 곧 회를 뜨고 매운탕거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으리라. 누군가에겐 신기한 생명체가 다른 이에겐 싱싱한 횟감으로 보인다. 모두가 자기 처지에서 사물을 살피는 모습이 세상의 진실을 말하는 것 같다. 요즘 맛이 들었다는 물미역과 파래를 고르는 이들도 있다. 배를 갈라 굵은 소금을 골고루 뿌린 간고등어도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반쯤 말린 생선은 이곳 시장의 인기 품목이란다. 김을 자동으로 굽는 가게에는 주부들이 김 한조각씩을 먹어가며 품평 중이다. 맛을 모를 때는 무조건 비싼 걸 사면 된다는 게 그들이 들려준 물건 고르는 요령이다.
시장 안 골목은 모두 시장로터리 사거리를 향한다. 대정로와 시장로 사이 거대한 삼각형 지역 안의 골목들 사이로 점포들이 있다. 깡시장과 진흥시장 그리고 부평종합시장이 연결된 형태다. 자연 발생형 시장 골목이 아니라 계획에 맞춰 가로가 형성돼 있어 골목은 모두 직선으로 잘 뻗어 있다. 점포 사이 골목길 중간엔 노점 좌판들이 줄지어 있다. 좌판들은 대개 젓갈이나 반찬이며 주전부리를 팔고 있다. 좌판과 상점들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시장 건너편에는 젊은이들 북적거려
분주한 시장통 골목 안에 동동주를 파는 집과 순댓국밥집, 포장마차도 숨어 있다. 국밥집 골목은 다른 곳에 비해 한가한 편이다. 좌판이 없어 고작해야 시장을 질러가는 행인 몇만이 지날 뿐이다. 국밥집 앞에서 사내 몇은 대낮인데도 불콰해진 얼굴로 담배를 피우며 건설판 막노동판 반장의 뒷얘기를 하고 있다. 분노는 입으로 풀어야 제맛이고 험담만 한 안줏거리가 없는 법이다. 술국과 탁주 한사발에 위로받고 힘을 낸다. 때때로 탁주 사발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가족보다 가까울 수 있다. 그들이 건네는 눈빛이 그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옆 건물엔 중국인을 위한 마작원도 눈에 띈다. 부평에도 꽤 많은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채소가게 주인이 오랜 단골인 듯한 손님에게 말을 건넨다. “왜 요즘 안 나와. 얼굴 보기 어렵네”, “코로나19가 무서워 바깥나들이를 아예 안 해”, “백신 안 맞았어?”, “맞았는데도 겁나서 못 다니겠다.” 요즘 시기에 대중이 느끼는 불안감을 역력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전염률이 점점 높아지고 감염자가 폭증하는 현실에서 그들의 심정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공포 앞에서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팬데믹 사태로 힘들지 않냐고 묻자 한 상인은 “예전보다는 못해도 여긴 좀 손님이 다니는 편이다. 아예 문을 닫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사람이라도 찾아오는 손님이 귀한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 한다.
시장 골목을 한발짝 나서면 온통 오피스텔과 원룸텔이다. 한동안 유행하던 다세대·다가구 공동주택을 헐고 대형 건물을 세웠다. 지금도 한편에서는 헐고 짓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아래층에 주차장을 갖추고 위로 높게 주거공간을 만들었다. 예전과 달리 젊은이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들은 아무래도 시장보다는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편이라 시장 주변에서 마트와 아웃렛을 종종 볼 수 있다. 부평의 특성상 서울과 인천에 빨리 접근할 수 있고, 고속도로와 간선도로를 타면 일산과 분당까지 생활권이 이어진다.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가 집을 구하기에 용이한 편인 것도 이 지역에 젊은이들의 비중이 커지는 이유다.
부평종합시장 건너편에는 부평문화거리 골목이 있다. 젊은이들이 자주 모인다. 골목 안에는 옷가게와 식당, 카페가 주류다. 간혹 타로 점집도 눈에 띈다. 야간에는 포장마차들도 문을 연다는데 낮에는 보이지 않았다. 샛골목은 옷을 파는 노점과 의류 가게로 연결돼 있다. 모자와 귀마개를 파는 손수레 상점도 있고, 방한복부터 내의며 양말을 파는 점포도 있다. 한 상인은 “여기가 동대문보다 싸다. 구색도 다 갖추고 있어서 단골도 많다”고 한다. 젊은 멋쟁이들은 유명상표의 가게를 찾고, 눈썰미 좋은 멋쟁이들은 뒷골목 옷가게를 살핀다고 그는 말한다. 듣고 보니 어디 내놔도 돋보일 옷들이다.
시장 입구의 콜라텍은 정오의 시간에도 번창이다. 바람머리를 하고 털코트를 빼입은 중년의 여인부터 철에 안 맞게 백바지로 멋을 낸 장년까지 쿵작거리는 음악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골목 안으로 스며든다. 골목 입구까지 느긋한 걸음으로 걷다가 콜라텍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는 유독 다들 발걸음이 빨라진다. 봄이 오지 않아도 춘심은 마음을 흔들고 춘풍은 겨울에도 분다. 외로움이 인생의 본질이다. 삶의 사막, 고해의 피난처로 오라는 풍악에 넋이 팔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 시국에도 지르박과 블루스는 참을 수 없나 보다.
젊은 인구가 늘었다지만 아직 시장 손님의 대부분은 중장년층이다. 손이 많이 가지만 반찬거리와 생선 등을 사다가 공을 들여 손질하고 가족을 위해 반찬을 만든다. 정성은 필수적인 조미료라 그 찬과 밥이 왕의 것과 다를 바 없다. 젊은이들은 시장 골목에서 주로 만들어진 반찬을 사간다. 밥상을 앞에 두고서도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니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따질 수는 없지만, 정성껏 차린 식탁과 따듯한 밥 한공기가 주는 감동을 돈만으로 구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시장이 곧 문화다
시장 골목의 상인들은 대부분 20~30년을 훌쩍 넘긴 붙박이들이다. 자신이 다루는 물건뿐 아니라 손님의 안색만 스쳐도 그가 물건을 살 것인지 타박만 할 것인지 알아본다고 한다. 건강식품을 파는 가게 주인은 “장사하려면 숙이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손님한테 ‘예’란 소리부터 한다”고. 시장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고 마음의 수행이 돼야 하는 일인지 그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 좌판이라도 하나 깔고 사는 이들은 먹고살 걱정은 지난 셈이다. 모두가 못 살겠다지만 시장 바닥에서는 그래도 뭐라도 해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젓갈집 사장의 이야기다.
부평종합시장 골목과 부평 문화의 거리를 굳이 나눠 놓았지만, 실상은 시장이 곧 문화다. 문화는 시간에 따라 쌓아 올린 삶의 양식이며, 시장만큼 그 본질을 명백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먹고 입는 모든 것이 유통되는 곳이라 가난한 이도 형편대로 만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넉넉한 이는 가진 것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 시장이다. 경제가 어렵다 해도 순대 한줄은 팔리는 법이고, 망한 세상에서도 시장은 문을 닫지 않는다. 어려워도 견뎌내는 모습을 시장에서 발견한다.
사람들의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부평종합시장 골목만을 본다면 부평사람들은 말 그대로 넉넉하고 평화롭다. 시장은 매일같이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로 남아 있다. 이 위기의 시대에도 잠시 시름을 벗고 위안을 얻는다. 부평의 바닥 경제가 시작되고 부평사람들의 동질성과 정체성이 존재하는 곳이 부평종합시장이다. 부평시장 골목에서 고른 반찬거리 하나에서 오늘의 만족을 얻는다. 삶의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다면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나서야 한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