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교사 재판 시작되자 발송된 ‘협박편지’ 유죄 확정 후에도 ‘2차 가해’ 고통은 여전
“K선생님은 C중학교 스쿨미투의 매우 사악한 학생들의 허위진술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 중심에 아버님의 딸인 이현이(가명)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2019년 가을, 이현이씨(18)의 집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는 편지가 도착했다. 1년 전 이씨가 허위 스쿨미투를 했으니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도록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편지 작성자는 자신을 “고3이 된 K교사의 제자들”이라고 칭했다. K교사는 당시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편지는 이씨가 “죄질이 나쁜 아이”, “도저히 양심이라고는 없는 철면피”, “타락한 영혼”이라면서 근거로 그의 SNS 게시물을 들었다. “이현이가 심각한 페미니스트인 것을 아버님을 알고 계신지요. 또 다른 페미니스트 단체 대표 ○○○와도 관계를 맺고 있고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자주 참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열어보시면 다 나와 있습니다.” 편지엔 이씨의 SNS 캡처 사진이 빼곡하게 첨부돼 있었다.
그후 1년이 더 흘렀다. 지난해 K교사에 대한 재판은 모두 마무리됐다. K교사는 1심에선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았고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됐다. 2심에서는 “범행사실을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 참작됐다.
3년 전의 C중학교 스쿨미투는 이렇게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씨는 재판이 끝난 후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오래 방황하다가 몇달간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고 한다. 2차 가해의 고통엔 ‘끝’이라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뒤틀어놓을 수 있는지 몰랐어요. 이제까지 살아왔던 것이 이렇게 곡해될 수 있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비방을 받을 수 있구나….”
스쿨미투 계정 만들자 벌어진 일
모든 일은 2018년 9월 7일 시작됐다. 이씨에게 ‘9월 7일’은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날짜다. 그날은 학교 축제가 있었다. 축제 진행을 위해 학교에 온 이벤트 회사 직원이 댄스 동아리 공연을 허가 없이 촬영하다가 들켰다. 학생들은 촬영된 영상 내용을 확인하고 삭제케 하고 싶었지만, 교사들은 “신고할 테니 자리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만 했다. 그날 이씨는 학교의 미온적 대응을 고발하는 SNS 계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동급생들 사이에서 이 사안 공론화에 대한 의견이 갈려 이씨는 계정의 성격을 ‘대나무숲 같은 공간’으로 바꿨다. ‘이제까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보자’는 생각이었다. C중학교 스쿨미투를 촉발한 SNS 계정은 그렇게 생겨났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졸업생과 재학생들로부터 다양한 제보가 쏟아졌다. 성희롱·성추행뿐 아니라 교사의 폭언과 체벌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계정을 만든 날은 금요일. 주말새 제보가 끊임없이 쌓였다.
그리고 월요일이 밝았다. 이씨는 등교하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학급 단체대화방과 SNS에 이 계정을 향한 욕설과 ‘저격글’이 올라왔다. “학교 망신을 시킨다”, “얘네 때문에 우리가 욕먹는다”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몇몇 학생들은 계정운영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 이씨는 일부 동급생의 날선 반응에 위축됐지만 계정을 지우지 않았다.
그후 학교에선 성폭력 피해 실태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일부 피해자들은 경찰에서 피해진술도 했다. 이씨도 경찰에 출석해 2017년 K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말했다.
학교에선 주요가해자들이 추려졌다는 말이 돌았다. 일부 교사들은 ‘애매한 사과’를 했다. 한 교사는 전교생이 모인 강당 단상에 캡모자를 쓴 채 올라와 한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비스듬하게 서서 사과했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평소 훈계할 때의 포즈였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때 일부 동급생들은 이씨 무리를 돌아봤다. 이씨와 몇몇 친구들이 SNS 계정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들이 말했다. “너네 때문에 선생님이 사과하잖아.”
그즈음 이씨는 SNS에 이런 글을 적었다. “‘쟤가 걔 아니냐’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 (중략) 미투 이전의 내 일상을 되찾고 싶다.”
피해자 아버지에게 온 협박편지
2차 가해는 이듬해 더 심각한 방식으로 반복됐다. 스쿨미투로 성추행·성희롱 사실이 드러난 C중학교 교사 2명은 2019년 재판에 넘겨졌다. 그중 한명이 K교사였다. “이현이 아버지께”로 시작하는 편지 2통은 K교사의 재판이 시작될 무렵에 왔다. 이들은 스쿨미투 SNS 계정운영자이면서 K교사의 피해자이기도 한 이현이씨를 ‘타깃’으로 삼은 듯했다. 이 무렵 이현이씨 친구의 어머니도 유사한 형식의 편지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이현이씨를 비방하는 내용이었다.
편지 작성자는 자신들이 “스쿨미투의 전모를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저희는 C중학교 스쿨미투의 전말을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을 거의 마무리하고 법원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많은 후배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현이의 진술이 허위라는 (내용의) C중학교 출신 학생들의 진술서 60여장 이상이 선생님의 무죄를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편지에서 언급된 ‘무죄 진술서’는 무엇을 말할까. 실제로 K교사의 1심 재판에선 C중학교 출신 학생들의 진술서가 수십장 제출됐다. K교사의 수업 방식을 설명하며 피해자들의 진술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진술서를 쓴 몇명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진술서의 문구를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에 해당 학생은 “선생님이 만들어주셨어요. 애들이 선생님한테 말씀드리고…”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현이씨의 SNS를 자신들이 직접 찾아봤으며 캡처사진을 K교사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이현이씨의 집에 도착한 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편지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지금까지도 미궁이다. 다만 편지에 활용된 ‘SNS 캡처’가 K교사를 도운 학생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확인된 것이다. 학생들이 가해교사를 돕게 된 과정은 밝혀진 것이 없지만, K교사가 학생들을 모아놓고 ‘억울하게 누명을 썼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학교 외부에서 목격했다는 말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돌았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피해자들은 이 사건의 문제를 제기하고, 수사 및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상당한 2차 피해의 우려에 노출됐던 것으로 보이고, 그 과정에 피고인(K교사)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K교사를 도우려 했던 학생들은 피해자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K교사의 피해자는 이씨를 비롯해 모두 5명이었다. 그중 한 학생은 K교사에게 ‘허위로 진술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K교사는 이것을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 피해학생은 재판에 출석해 K교사와 가까운 학교선배의 압박으로 거짓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진술했다.
왜 아이들을 이용했나
피해자들의 진술을 모두 부인했던 K교사는 1심에서 실형을 받자 ‘전략’을 바꿨다.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들로부터 처벌불원 합의를 받아내려 했다. 2심 변호인은 서울의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였다. 그는 이씨에게 “유학을 보내주고 싶다”며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합의에 이르렀고, 2심에서 K교사는 집행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이씨는 합의해주지 않았다.
스쿨미투 이후 이씨의 삶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히 심각한 2차 가해는 C중학교 스쿨미투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충북의 한 지역언론 기자 시절 이씨를 만났다가 지금은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등에서 활동하는 계희수씨(32)는 “지역사회의 좁은 인적 연결망, 폐쇄적 분위기가 문제 제기하는 사람을 터부시하게 만들고 2차 가해를 심화시킨다”면서 “C중학교 사례가 ‘변방의 스쿨미투’ 특성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어 “교사가 자기에게 우호적인 아이들을 이용해 2차 가해를 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며 “K교사는 자기편 들어주는 제자를 증인으로 세우면서 가명 신청도 하지 않고 실명을 노출했다. 반대편에 있는 내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고 했다.
“지역이 좁다 보니, K교사와 인연이 있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 깜짝 놀라요. 그중 한분이 K교사 처벌 탄원서를 써주셨는데, 그분도 학창시절엔 그 교사와 친했다고 해요. 다른 학생들에게 ‘나 얘랑 원조교제 하는 것 같지 않느냐’면서 그후부터 그분을 ‘원조’라고 불렀대요. 몸을 쓰다듬기도 했고요. 그때는 이게 문제인지도 모르고 e메일을 보내면서 ‘선생님, 저 원조예요’라고 쓴 적도 있다고 해요.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거죠. 성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아마 K교사를 도운 아이들도 여러 감정이 혼재돼 있었을 거예요. 잘못된 행위를 훈육이라고 인식했을 수도 있고요. 문제는 그걸 이용한 어른들이죠.”(계씨)
계씨는 이씨가 교육당국의 ‘무능’에 의한 피해도 입었다고 본다. 기자였던 계씨가 이씨를 돕게 된 계기가 있다. 이씨는 스쿨미투 이듬해 증인소환장을 받고 도움받을 곳을 고민하다 한때 자신을 취재했던 계씨에게 e메일을 보냈다. “학생들이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현실에 놀랐다”는 그는 “교육청엔 스쿨미투로 재판에 참여하게 된 학생들을 지원하고 도와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지만 재판이 이어지는 내내 교육청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충북 C중학교의 스쿨미투 그후 3년. 주요가해자의 형사처벌이 확정됐지만 이씨와 계씨는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다. ‘2차 가해’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고 피해에 합당한 보상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이씨는 협박편지 작성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으나 경찰은 “유효지문을 발견하지 못해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수사를 중지한 상태다. 이씨는 소송을 통해 싸우기로 했다. 그가 올해 K교사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의 재판은 12월 시작된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