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이 된 폐기물, 낙엽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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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낙엽 퇴비’ 만들어 올해 첫 판매

소각 인한 환경오염 줄이고 소득원 창출 효과

“낙엽을 삽니다. 잘 썩힌 낙엽도 팝니다.”

사진/김서영 기자

사진/김서영 기자

충북 제천시 신월동 제천산림조합 부지를 찾은 지난 11월 10일 이 같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11월 1일부터 낙엽을 사고, 낙엽으로 만든 퇴비를 판다는 내용이었다. 이곳은 제천산림조합이 제천시 위탁을 받아 주민들로부터 낙엽을 수매하는 장소다. 입구를 따라 올라가니 평평한 부지에 볼록하게 솟아오른 무더기 몇개가 보였다. 퇴비화를 위해 부숙(腐熟) 작업이 진행 중인 낙엽 더미다. 2020년, 2019년, 2018년에 나온 낙엽이 각각 쌓여 있다. 2018년과 2019년치는 이미 부숙이 어느 정도 진행돼 위에 파란 천을 덮어뒀다. 천 틈새로 검게 변한 흙 같은 것이 빠져나왔다. 반면 지난해에 들어온 낙엽은 아직 나뭇잎의 모양새를 알아볼 수 있다. 군데군데 나무 껍데기와 톱밥이 보였다. 김병기 제천산림조합 주임은 “퇴비 품질을 높이기 위해 나무를 톱밥으로 만들어 퇴비에 섞었다. 부숙 작업에 3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낙엽 파세요, 낙엽 삽니다

가장 안쪽에는 올해 들어오기 시작한 낙엽이 포대째 놓여 있었다. 눈이 약하게 내린 이날도 주민이 낙엽을 놓고 갔다. 모아둔 낙엽의 무게를 재는 데 쓰이는 저울도 있는데, 한 번에 대량으로 가져오는 경우를 위해 농업용 저울도 마련돼 있다. 한포대에 10~20㎏ 정도가 나온다. 제천시는 낙엽 1㎏당 300원을 준다. 통상 100원 내외인 폐지 단가보다 높다. 매년 300t 정도가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김병기 주임은 “지난해엔 눈이 많이 내려 낙엽을 쓸기 어려웠던데다 코로나19가 퍼지는 바람에 190t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다시 300t을 목표로 잡았다.

제천시 ‘낙엽 수매 및 산림부산물 이용 활성화 사업’이 진행 중인 풍경이다. 제천은 2018년부터 낙엽을 퇴비로 재활용하려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동안 낙엽에 발효미생물을 투입해 부숙시키는 퇴비화 작업을 거쳤고, 성분분석 및 부숙도 검사를 통해 퇴비로 사용하기 적합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다. 농업에서 널리 쓰이는 부엽토처럼 정원용, 분갈이용, 텃밭퇴비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제천시 설명이다.

4년차에 접어든 올해는 11월부터 낙엽 퇴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자체에서 낙엽을 재활용해 상품화한 첫 번째 사례다. 신월동 수매장 낙엽 더미 맞은편에는 포장을 마친 퇴비 포대가 쌓여 있다. 바닥에서는 퇴비를 널어놓고 물기를 날리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름은 ‘제천이 만든 갈잎 흙’이다. 아직 온라인을 비롯해 판매 경로가 열려 있지 않아 직접 와야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10ℓ 4800원, 20ℓ 9500원이다.

특이한 점은 제천시가 시민들에게 값을 주고 사들이는 방식, 즉 수매를 통해 낙엽을 모아왔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제천시는 낙엽 재활용 과정에서 첫 번째인 ‘모으는’ 단계를 해결했다. 이원일 제천시 산림공원과 시유림경영팀 주무관은 “수매를 하면 지역에 생계가 어려운 분들에게는 폐지 줍는 것보다 나은 소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낙엽 모으기와 더불어 일석삼조 효과가 있다. 마을이나 아파트 단위로 많이 모아주고, 거리가 먼 곳에는 날짜를 정해 낙엽을 수매하러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1t당 24만원가량 소각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당 300원으로 사들일 경우 소위 ‘남는 장사’는 아니다. 이원일 주무관은 “수익성 목적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익성 사업”이라며 “대신 그만큼 환경오염이나 미세먼지로 인한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거된 낙엽에 종이쓰레기가 섞인 모습 / 김서영 기자

수거된 낙엽에 종이쓰레기가 섞인 모습 / 김서영 기자

골칫거리 낙엽, 퇴비로 재탄생

본래 낙엽은 지자체 입장에선 골칫덩이다. 낙엽을 놔두면 산불이 확산되거나 보행자가 다칠 우려가 있고, 수거하는 데에도 수고가 들어갈 뿐더러 수거한 낙엽의 활용이나 처리 방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거둬들인 낙엽은 매립하기도 하지만 상당수 소각된다. 이때 소각비용과 더불어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는 우려가 있다. 환경을 위해 심었던 나무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때조차 환경이 오염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지자체에서도 낙엽을 재활용하려 시도해왔다. 낙엽을 유원지에 가져다주거나, 농가에 제공하거나, 톱밥으로 만드는 방안 등이다. 낙엽 자원화를 하려다 낙엽과 쓰레기를 분리하는 문제 때문에 접은 경우도 있다. 낙엽에 담배꽁초나 쓰레기 같은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퇴비로서 가치가 떨어질 뿐더러 농가에서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여러 지자체에서 제천시에 낙엽 퇴비화 사업에 관해 문의하는 상황이다.

시민을 대상으로 낙엽을 수매 중인 제천시도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원일 주무관은 “과거엔 시에서 직영으로 수매 시스템을 운영했고, 시유지에 낙엽을 적재했다. 전담 직원이 없다 보니 관리를 비롯해 퇴비화가 어려웠다. 그러다 2018년부터 제천산림조합에 위탁해 조직과 장비를 활용하게 되면서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 사이 낙엽을 수매하는 기준도 강화해 퇴비질 유지를 위해 침엽수가 아닌 활엽수(플라타너스·단풍나무·참나무·밤나무 등)만 받고 있다. 내용물도 따져본다. 김병기 주임은 “무게를 늘리기 위해 낙엽 포대에 돌을 넣는 사례가 종종 있다. 대량으로 들어올 경우 전부 쏟아 검사할 수는 없지만 포대 몇개를 열어보고 돌이 나오면 돌려보내기도 한다. 돌이 있으면 포장기계 날이 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퇴비화 과정에서도 불순물을 골라낸다.

자원이 된 폐기물, 낙엽의 변신

낙엽 퇴비의 품질을 높이려는 고민도 현재 진행형이다. ‘제천이 만든 갈잎 흙’이란 이름에서 보듯, 제천시가 낙엽으로 만든 퇴비는 법적으론 퇴비가 아닌 흙이다. 용도는 퇴비지만 비료관리법이 정하는 품질기준에 다 맞지는 않는다. 이원일 주무관은 “시장조사, 성분검사, 유해성검사를 다 거친 결과 충분히 퇴비로선 좋은 품질이고, 중금속기준검사도 두차례했다. 당장 퇴비로 쓰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향후 비료생산업 등록에 필요한 공정기준과 시설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설비를 보완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현재로선 수매한 낙엽을 실내가 아닌 야외에 별다른 비 가림 시설 없이 적치하고 있다. 눈과 비, 바람을 막을 장치가 없는 셈이라 낙엽 부숙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비용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원일 주무관은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하고 있다. (퇴비가) 잘 팔려야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필요한 시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300만ℓ 정도 판매가 목표”라고 말했다.

폐기물이냐, 자원이냐

낙엽 재활용은 낙엽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낙엽을 폐기물과 자원 중 ‘무엇으로’ 볼 것인가란 질문과 맞닿는다. 낙엽량 추산은 제각각이지만, 농산촌활성화연구소가 지난해 충청북도 연구용역으로 시행한 ‘낙엽 재활용(연료화·퇴비화) 방안’을 보면 나무 1그루당 낙엽 건중량 2.4㎏, 전국 가로수를 600만그루로 가정했을 때 한해 낙엽량은 1440만t이 된다. 낙엽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달라진다.

연구를 진행한 반기민 소장은 “단순히 낙엽만을 활용한 퇴비화는 낙엽 수집 시기가 제한적이란 점에서 적절성이 낮고 수거 과정의 인건비, 보관 장소, 분리 처리 등의 문제가 있다. 사업성 면에서는 아직 경제성이 낮아 공공영역에서 환경 측면에서 접근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 특성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필요도 있다. 제천의 경우 낙엽 퇴비화 사업이 이상천 현 제천시장의 공약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이어질 수 있었다. 반 소장은 “낙엽을 소각해 이산화탄소와 먼지를 내보내는 것보다 퇴비로 한 번 더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만큼 돈 되는 사업은 아니더라도 낙엽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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