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전, 기억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1901년생인 할아버지는 열네 살 무렵 인천시 부평구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17년간 한방을 썼던 저는 자연스레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이야기들은 모두 부평의 역사였던 셈이죠. 부평과의 인연은 아버지 대에도 이어졌습니다. 1960년대 아버지는 부평 미군부대를 다니셨습니다. 당시에는 미군부대인 캠프마켓을 ‘데포’ 또는 ‘55부대’라 불렀습니다. 저는 부평이 제공해준 것들로 먹고, 입으며 성장한 것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저와 제 아이들, 손자들까지 부평에서 살고 있으니 5대째 부평에서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육군조병창이 있었던 인천시 부평구 미군기지 ‘캠프마켓’ 전경 / 이석우 기자
그런데 부평에 최근 논란이 생겼습니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들이 실제 역사로 밝혀졌는데 그 증거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서울 용산과 마찬가지로 부평에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불편한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가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부평2동의 미쓰비시 사택, 부평공원(미쓰비시 중공업 자리), 캠프마켓과 캠프그란트(일본육군조병창 자리) 등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문제는 캠프마켓이 반환되며 유적 중 일부가 철거될 위기라는 것입니다. 일본육군조병창 자리에 있는 병원 건물, 1780호 건물이 대표적입니다.
부모세대의 유산 ‘부평4공단’
혹자는 이 유적을 철거하고 호수공원을 만들자고 합니다. 이를 통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부평에서 결혼했던 1980년대 중반에는 70~90%의 현금을 마련하고 비록 비싸기는 했지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오르며 32세가 넘은 우리 자식들은 안정적 주거생활 수단인 아파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 이제는 아빠 찬스도 소용이 없습니다.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나면 저 역시 아이들에게 아파트 한채 남겨주기 힘들겠습니다. 결국 내 집 마련을 못 한 아이들이 아름다운 고향을 떠나게 될까 걱정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인 부평에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평의 집값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귀중한 유적을 파괴하고 호수공원을 만들자고 합니다. 정말 부평에 터를 잡고 오래도록 살아갈 사람들이라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저의 아버지 세대 때에도 부평에 위기가 있었습니다. 미군 축소 내지 철수 이야기가 나오던 시점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 인천시 북구(부평구·계양구·서구) 시절의 인구는 8만명 내외였습니다. 이중 4000~5000명은 미군부대 노무자로 취업해 먹거리를 해결했고, 또 일부는 미군부대 인근에서 장사를 했으니 부평 인구의 과반수가 미군부대 관련 생업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던 것이죠. 미군 철수 위기 속에 동네 어른들은 매일같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부평에서 살아갈 우리 자식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자’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 결과 추진된 것이 부평수출산업공단 유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구로에 있는 수출산업공단과 가좌동 경인지구에 밀려 부평수출공업단지 유치는 무산됐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낀 지역 주민들은 이에 반발하며 부평 ‘수출산업공단 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이것이 부평4공단의 시작이었습니다. 50여년 동안 부평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던 부평4공단은 자식세대도 부평에서 살게 하려는 어른들의 결단이 만든 성과였습니다.

일본육군조병창에 강제동원된 노동자들이 입었던 작업복 / 이석우 기자
우리가 남길 유산은 일자리 창출
부평4공단도 더는 부평의 성장을 견인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동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더 이상 공장과 같은 생산시설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다양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그 가능성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평이 품고 있는 강제동원과 전쟁 역사 유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크 투어리즘은 이미 관광의 한 형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와 연계한 다양한 일자리도 창출합니다. 부평이 품고 있는 일제강점기 유적은 유네스코 등재 가능성까지 있습니다. 어쩌면 부평이 품은 제2의 성장 동력으로 거듭날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역사 보존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부평의 유적들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거나 국내 관광을 하는 이유는 그곳의 근린공원을 보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주민생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특색 없는 공원에 매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유적을 활용해 역사문화유적지가 있는 공원으로 거듭나자고 하면 무리한 생각일까요.
다행히 많은 사람이 이러한 생각에 호응해주었습니다. 지난 8월 23일 지역 사람들을 주축으로 ‘인천시장은 캠프마켓 1780 건물을 존치하라’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인천지역사회가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반대의 여론으로 들끓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국방부에 2022년 3월까지 1780호 건물의 철거 유예를 요청했습니다. 국방부가 문화재청의 요구를 인천시에 통보함에 따라 철거 여부와 시기는 향후 캠프마켓 부지와 시설물을 인수하게 될 인천시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인천시장은 지역사회의 요구에 호응해야 합니다.
어릴 적 앞마당 평상에 누워 바라보던 계양산과 금마산은 아파트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굴포천에서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며 놀던 옛적 친구들은 이제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평은 2021년에 법정문화도시가 됐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흔적을 없애는 부평이 아닌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부평으로 거듭나길 꿈꿔봅니다.
<박명식 부평구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