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 연착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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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삽화 파문’에 대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우리 법원에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일보는 ‘또 소송인가’ 정도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위력은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재판부가 알아서, 기껏해야 반론보도 해주는 선에서 마무리해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위력이 통하지 않는 미국 법정에 1억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조선일보는 오후 4시에 삽화 실수를 전격 사과했다. 믿기지 않는 사과였다. 조선일보는 그렇게 쉽게 사과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조국 부녀 일러스트와 관련해 지난 6월 30일자 1개면에 게재한 사과문

조선일보가 조국 부녀 일러스트와 관련해 지난 6월 30일자 1개면에 게재한 사과문

이를 본 시민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무엇인지, 그것이 미국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마침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지난 7월 6일 법안소위를 열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상정해 이달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될 전망이라고 한다. 이 개정안은 언론의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보도에 대한 손해배상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법안이다.

종이신문 시장의 위축으로 인터넷 시장에서 속칭 ‘어그로’를 끄는 낚시 기사 경쟁이 과열되면서 언론의 자정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다 보니 나오게 된 법안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신문협회가 가장 크게 반발했고, 7월 16일 긴급성명서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인터넷신문협회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권력에 유리한 법이고 언론 ‘입막음’ 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 언론보도 관련 소송을 보면 담당 취재기자가 자신이 입수하고 취재한 자료를 잔뜩 들고나오는 게 보통이고, 그러한 자료가 충분히 갖춰진 경우엔 고의·중과실이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신문협회의 주장은 고의·중과실이 인정될 정도의 악의적 보도도 단순과실이 인정될 때처럼 징벌적 손해배상 없이 가볍게 처리해달라는 뜻과 다름없다. 그러면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보도 피해자는 받으나 마나 한 보상만 받으란 말인가.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액에 하한선을 두자는 (안)도 함께 논의 중이라고 한다. 법원이 거대 언론일수록 손해배상액 인정에 소극적일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즉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액 자체를 지나치게 적게 인정하면 현행 제도와 큰 차이가 없을 것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가령 손해액을 10만원만 인정한다면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액이라고 해도 50만원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액 하한선 설정은 재판부의 재판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중간판결제도와 국민참여재판제도를 결합하는 것을 제안한다. 즉 재판부가 중간재판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만 판결하게 한다. 그 후 국민참여재판으로 고의·중과실에 의한 것인지, 손해배상액은 얼마인지, 몇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할 것인지 최종평결을 내리게 한다. 이로써 법원의 소극적 손해배상액 인정 경향에 대한 우려 불식과 국민의 사법참여 확대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윤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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