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잇단 학교폭력 폭로로 들썩이고 있다.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 선수의 과거 폭력 행위가 공개된 뒤 지난 한달여 간 유명 스포츠 선수, 배우, 아이돌 가수 등을 둘러싼 ‘학교폭력 폭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누리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자 미디어는 ‘폭로’를 자극적으로 소비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향한 대중의 공격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의혹이 제기된 폭력 행위를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학교폭력 폭로’에서 한국사회는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폭로자들은 대개 성인이 된 이들이다. 과거의 상처로 지금도 괴롭다고 호소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청’의 자세다.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해온 학교폭력이 어떤 고통을 안겼는지를 진지하게 들어야 할 시간이다.
당신은 학창시절 가해·방관·피해자 어디쯤에 있었는가. 강화된 학교폭력 대책은 왜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학교폭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모든 논의는 ‘고통 듣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이야기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이제는 또래가 두렵지 않지만, 열두 살의 그 아이 눈빛은 지금도 무섭다”
▲김하나씨 가명·21
김하나씨(가명·21)가 처음 괴롭힘을 당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너, 왜 아빠 없어? 우린 있는데….” 김씨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사실을 알게 된 같은 반 A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가정사로 김씨의 약점을 잡은 A는 말투나 머리 모양, 옷까지 하나하나 악의적으로 지적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 너 챙겨줄 사람 없지?” A는 친구가 꽤 있었고, A의 무리는 괴롭힘을 일종의 놀이로 여겼다. 체육시간에 피구를 할 때면 A무리는 ‘내기’ 같은 것을 했다. “김하나 머리 맞히면 3점, 가슴 맞히면 5점, 엉덩이 맞히면 10점이다.” 애들은 킥킥대며 웃었다.
김씨와 A는 내리 3년 동안 같은 반에 배정됐다.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는, 빤히 쳐다보는 그 눈빛이 있어요.” A가 친구들을 데리고 자신의 책상 근처로 올 때의 두려움이 김씨는 아직도 생생하다. 급식시간에 자리에 앉으니 “마치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자신을 피하던 아이들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A무리와 흩어졌지만 이미 또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뒤였다. “애들에게 말 거는 건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학교에서 웃어본 기억도 없다. 어린시절 A는 “너, 왜 웃어?”라며 무안을 주는 공격을 자주 했는데 A가 사라진 뒤에도 그는 ‘웃지 못하는 아이’가 됐다. 중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던 그는 간혹 생겼던 친구가 등을 돌리면 ‘내 잘못이구나’라고 자책부터 했다.
고교 진학 후 꾹꾹 억눌러온 무엇인가가 마침내 터져버렸다. 어느 날부터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살고 싶어” 자해를 했다. 고통이 느껴지는 잠깐 숨을 편히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눈물을 주체 못 해 급히 들어간 화장실에서 락스통을 보고는 ‘저걸 마시고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1 때 김씨는 자퇴를 결심했다. 이때 교육지원청의 소개로 해맑음센터(학교폭력 피해자 치유기관)에 가게 됐다. 이곳에서 보낸 18개월은 김씨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돼주었다. “거기서 만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웃는 얼굴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신기하게도 그후 많이 웃게 됐어요.” 그곳에선 김씨를 따르는 ‘동생’들이 많았다. 봉사활동 등을 갈 때면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그는 ‘리더’이자 ‘누군가를 돌보는 이’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했다. 고2 후반에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다.
성인이 된 김씨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이제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고통에 마침표가 찍힌 것은 아니다. 학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는 늘 ‘인정’을 갈구한다. 친구로부터 상처를 입어도 화를 내본 적이 없다. 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도 여전히 힘겹다. 과거 기억에 우울이 덮쳐올 때도 있다. 다만 그는 “가끔 힘들어도, 이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한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A의 흔적을 찾아본 적이 있다. A를 만나보고 싶은지 묻자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스물몇 살짜리 어른은 안 무서워요. 그런데 걔를 보면 열두 살의 그 아이가 떠오를 것 같아요.” 폭력의 기억은 어른이 돼도 쉽게 떠나지 않는다. 가해자가 ‘열두 살 소녀’였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착하고 순하다고요!”
▲B양 익명·17
한 학급에 10명 중 9명은 남학생인 고등학교다. ‘그 남학생들’은 랩에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사를 담아 불렀다. 청소시간에는 휴지통 앞에서 성적 농담도 거리낌없이 했다. 조혜수씨(가명·37)의 자녀 B양(17)은 모두 눈앞에서 보고 들었다. 가해 남학생들에게 여학생이 학교폭력 피해를 받았다.
폭력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B양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성의 상반신이 노출된 사진을 받았다. 가해학생들이 보낸 사진이었다. 욕이 섞인 거친 말을 듣는 것은 예사였다. B양은 더 이상 메시지를 받지 않게 가해학생을 차단했다. 조씨는 “여자아이여서 가해학생들이 더 만만하게 본 것 같다”고 했다.
가해학생 부모는 담임선생님과 학부모들이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우리 아이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같이 놀다가 말이 심하게 오간 것입니다”라고 했다. 조씨가 감정이 격해져 대화방에 피해 상황을 알리자 가해학생 부모들이 뱉은 말이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부모는 “4시간 봉사활동 정도로 미미한 일을 당신이 지금 이렇게 올리는 겁니다”라고도 했다. 봉사활동은 학교폭력 처분 중 하나다. 봉사활동 처분이 4시간뿐이니 미미한 학교폭력이었다는 의미가 담겼다. 가해학생들은 서면 사과, 접촉·협박과 보복행위 금지와 특별교육이수(2시간) 처분도 받았다. “저희 아들 정말 착하고 순한 아이입니다”라는 가해학생 부모의 발언도 나왔다. ‘착하고 순한 내 아이의 학교폭력은 장난 수준이었고, 잠시 심한 말이 오갔을 뿐’이라는 주장은 전형적인 2차 가해다.
교육청의 조치가 이뤄진 건 지난 1월 초다. 두달 넘게 지났지만 조씨는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자녀의 상태가 예전과 달랐기 때문이다. B양은 상담치료도 3차례 받았다. 조씨는 “아이가 전과 다르게 의기소침해졌다”고 했다. B양은 학급에서 반장도 하고 교우관계도 활발했다고 한다. 집에서 웃음이 줄었고, 친구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도 사라졌다. 가끔씩 ‘친구 집에서 자고 올게’라고 했던 B양이었다.
B양이 문제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20년 초 담임선생님에게 상황을 알렸다. 조씨는 “학교가 일이 커지길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가해학생들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로 회부되지 않는 대신 사과편지를 썼다. “장난도 적당히 선 지켜 치도록 진짜 노력할게”, “진짜 진심으로 미안하고 네가 하라는 대로 벌 받던가 그렇게 하도록 할게”라는 내용이 담겼다. 서면 사과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학폭위 조치도 ‘문서 그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B양이 다니는 학교는 학기 중에 2주씩 혹은 한달씩 실습을 나간다. B양은 최근에도 실습에서 한 공간에서 가해학생들과 수차례 마주쳤다. 폭력이 발생하진 않았다고 한다. 접촉·협박과 보복행위 금지 조치는 의미가 없었다. 조씨는 “B양이 원래 감정을 잘 내색하지 않는데, 요새는 방안에서 공부만 한다.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이 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정말 그 아이를 용서했을까”
▲나현석씨 가명·49
“걔가 미안하다고 했어?”, “음… 그런 것 같아.”
2년 전 나현석씨(가명·49)는 식탁에 마주앉은 고1 아들의 얼굴빛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안경이 부서진 날이었다. 아들은 친구가 찬 공에 맞았다고 했고, 사과를 받았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 같다’고만 했다. 이후로도 안경이 자주 깨졌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했다. 물건을 빼앗겼다는 얘기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침착하려던 나씨는 아들의 ‘친구’라는 아이가 ‘너, 아이 못 낳게 해줄까?’라며 한 행동을 듣고는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동성 간 성추행이었다. “그때 기분이 어땠어?” 나씨의 질문에 아들은 한참 있다가 답을 했다. “정말 죽고 싶었어.”
경기도에 사는 나씨는 남매를 일부러 ‘시골 초등학교’에 보냈다. 조금이라도 학교폭력에 덜 노출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들은 말과 행동이 느린 편이었고, 누군가에게 ‘대거리’를 할 성격이 아니었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반 친구들의 부모들과도 친밀하게 지냈다.
고1이 된 아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건 바로 그 초등학교 출신 동급생 C였다. C는 흔히 말하는 ‘일진’이나 ‘노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쉬운 타깃’이었겠다 싶어 화가 났다.
나씨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상대 부모와의 만남이었다. 상담실에서 만난 가해학생 아버지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하고 있었다. 가해학생 어머니 역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식이었고, 사과하려는 사람들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씨는 잠시 상담실 밖에 나와 머리를 식혔다. 몇분 후 상대 부모를 다시 마주했을 때, 뜻밖에도 이들의 태도는 180도 변해 있었다. 성추행으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가 한 모양이었다. 가해학생 아버지는 비로소 스마트폰을 내려놓았고,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이때부터 사죄가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나씨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가해자 징계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들은 겁을 먹은 탓인지 이미 ‘용서’를 결정한 상황이었고, 나씨는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자식의 미래에 문제가 있을 것 같으니 하는 사과” 따위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형사고소를 해서 제대로 처벌하면, 앞으로 아들을 건드리는 애는 없겠죠. 그런데 전교생이 알게 될 텐데 그나마 있는 친구들마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부 외면하는 게 더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씨는 코로나19 직전까지 아들을 주짓수·복싱 학원에 보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트레이닝도 받게 했다. 언제 또 그런 일을 겪을지 모르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아들과 얘기해봤다고 했다. C와의 사건 얘기가 나오자 아들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왜, 또…”라며 더는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2년 전 나씨는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말 용서할 수 있겠어? 나중에 걔랑 만나 소주 한잔하면서, 옛날얘기하고 그럴 수 있겠어?” C를 ‘대등한’ 존재로 느끼고 용서하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상황이 복잡해져 한 선택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당시 아들은 ‘용서해주자’면서도 이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종종 자신에게 묻는다. 잘한 선택이었느냐고.
“나는 가해자이자 피해자…다들 상처 준 경험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김경헌군 가명·17
“따돌림을 당할 때도 있었지만 따돌린 적이 없다고도 말 못 할 것 같아요.”
김경헌군(가명·17)은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크고 운동신경이 발달했다. 소년의 세계에선 ‘힘의 서열’이 주로 작동할 것이라 흔히 생각하지만, 김군의 경험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중학교 1학년 시절 따돌림을 당했는데, 가해학생들은 그가 ‘살이 쪘다’며 놀려댔다. 김군의 부모님을 욕하기도 했다. 이런 놀림이 심해지자 그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가끔 책상이나 벽을 쳤다. 이런 행동 때문에 선생님은 김군을 불러 자주 상담했다. 나중엔 병원도 다녔다. 중1 시절 그는 가해학생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쉬는 시간에는) 잠만 잤다”고 했다.
이듬해 2학년이 되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이번엔 자신이 속한 무리 안에서 D라는 아이가 표적이 됐다. 아이들이 D를 놀릴 때 김군도 상처가 될 만한 말들을 내뱉었다. 욕설도 했다. 그때는 ‘아, 이러면서 친해지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잘못을 깨달은 건 3학년이 되면서부터였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시작한 선생님과의 상담, 부모님과의 대화가 그에게는 ‘약’이 됐다. “애들한테 괜히 시비 걸고 욕하면서 멋있는 척하는 게 이해가 안 되기 시작”했다. 이후 D와는 ‘친구 사이’가 됐고, D를 괴롭히던 아이들과는 멀어졌다.
그러나 ‘괴롭힘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고1 때 또다시 힘겨운 상대를 만났다. 중학교 시절엔 ‘살이 쪘다’는 꼬투리라도 있었지만, 이번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시비 걸기가 이어졌다. 학급의 다수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는 정말 궁금해 ‘나한테 왜 그러느냐’, ‘왜 내가 마음에 안 드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돌아온 대답은 허탈했다. “‘그냥’이래요, ‘그냥’. 멘탈이 많이 깨졌죠.” 다행히 고2, 고3 때는 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다.
피해와 가해의 ‘굴레’를 모두 경험한 그는 “학교폭력엔 특징이 있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는 건드리지 않아요. 주변에 자기 친구들이 있으면 그때 괴롭혀요. 얕보이기 싫으니까, 자기도 따돌림 당할까봐,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 최근 잇단 폭로에 유명인만 손가락질하는 누리꾼들을 보면서 “내가 가해자이기도 했던 것처럼 누구나 상처를 준 경험이 있을 텐데 왜 마치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다는 듯이 댓글을 쓸까”라는 생각도 해봤다고 한다.
그는 ‘나도 남을 따돌린 적이 있다’고 인정하고 반성하는 청년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들이 “스스로 사과한다면”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김군조차 ‘그 아이는 용납이 안 될 것 같다’는 동급생이 있다. ‘왜 내가 마음에 안 드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고 답했던 그 아이다. 운동 잘하는 김군에게 자신의 존재 자체가 못마땅해한 눈빛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큰 상처였다.
“어른들의 ‘몰랐다’는 반응… 화가 납니다”
▲임권배씨(43)
움켜쥐고 있던 고통을 세상에 꺼냈다. 카메라 앞에서 30년 가까이 이어진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이야기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키 크고 힘센 동급생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킥복싱 킥으로 맞았다. 복도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녔다. 억눌림은 꼬박 1년 동안 이어졌다. 스스로 죽거나,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프리랜서 대입 컨설턴트로 일하는 임권배씨(43) 이야기다.
임씨는 2019년 CBS의 온라인 콘텐츠 채널 ‘씨리얼’의 <왕따였던 어른들>에 출연해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 4명과 함께 나왔다. 임씨는 40대가 돼서도 아픔이 계속됐음을 말하면서 “고통의 길엔 끝이 없었다”고 했다. 학교폭력 후유증 때문에 고교시절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연락하는 고교시절 친구는 딱 2명뿐이다. 성인이 돼서는 관계가 자꾸 틀어졌다. 권력 다툼에서 절대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날서고 센 말이 튀어나왔다.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는 집착, 나를 누르려는 사람을 향한 공격적인 반응이 앞섰다.
피해 사실 고백은 치유의 단초가 됐다. 임씨는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힘들었겠네”,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요”, “괜찮아요”라고 반복해 말한다. 그는 공감이 제법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임씨는 “나와 비슷한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 도망치지 않고 세상과 싸울 힘이 생겼다”고 했다.
임씨는 방송 출연 이후 다른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들어준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임씨에게 직접 연락을 하거나 주변 지인을 통해 임씨와 연락을 취한다. 임씨는 “5시간이고 6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피해자의 상처가 나에게도 전해지지만, 동시에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고받으면서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임씨는 최근 ‘학폭 폭로’에서 어른들의 “우리는 몰랐다”는 반응에 분노한다. 쌍둥이 배구선수 자매의 학교폭력이 공론화되자, 쌍둥이를 가르쳤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몰랐다”고 했다. 임씨는 “내가 당한 피해도 여러명의 가해학생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정말 선생님들이 몰랐을까. 모르기가 더 어렵다. 대부분의 학교폭력은 어른들의 방관 속에서 자란다. 운동선수들은 성적을 위해 학교폭력을 묵인하지 않나. 몰랐다면 사과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방관과 침묵은 ‘그래도 되니까’로 이어진다. 어른들의 침묵, 학우들의 외면은 가해학생에게 학교폭력을 해도 된다는 시그널로 여겨진다. 임씨는 “그래도 되니까 한 것이다. 아무도 말리지 않고 제재하지 않으니까 학교폭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임씨는 가해자 처벌 만능론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경계한다. 임씨는 “사람들이 처벌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해서 문제지, 처벌이 필요 없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처벌은 피해자 치유의 시작점이다. 단호한 처벌은 제도가 피해자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송윤경·김원진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