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엽 학생 사망 1주기,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걷는 아버지
“오늘 출발할 때만 해도 마음이 굉장히 착잡했습니다. 아내가 아침에 전화했는데 유엽이 SNS 계정이 다 없어졌다고 울더라고요.” 정성재씨(54)는 이 말을 한 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미접속 상태가 1년을 지나자 아들의 계정이 휴면상태로 바뀌었다. 지난해 3월 18일 코로나19 의심환자로 분류돼 제때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한 채 급성폐렴으로 숨진 아들 정유엽 학생(당시 17세)을 추억할 수 있는 작은 연결고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날은 경산에서 출발해 청와대로 향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한 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의료공백으로 숨진 고 정유엽 학생의 아버지 정성재씨와 시민들이 3월 18일 서울 정동사거리를 출발해 진상규명과 의료공백 재발 방지, 의료공공성 강화를 촉구하며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370㎞ 걸으며 외쳤다 “공공의료 한걸음 더”
지난해 3월 10일 대구·경북지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던 시기, 마스크를 사러 추운 날씨에 약국 앞에서 오래 줄을 섰던 아들이다. 아들은 이틀 뒤부터 고열 증상을 보였고, 정씨는 아들과 함께 집 근처 민간병원인 경산 중앙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코로나19 환자로 의심해 해열제와 항생제만 처방해주고 집에 돌려보냈다. 뒤늦게 입원한 영남대 병원에선 코로나19 검사만 13번을 받았다. 총 14차례에 걸친 검사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 부모는 음압실에서 죽은 아들의 임종조차 못 했다.
그후 1년 정씨는 아들의 죽음이 의료공백으로 인한 것임을 알리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아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 시기 대구·경북지역 초과사망자가 338~900명 정도가 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공공병상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일반 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거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사례가 평소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정씨는 그해 6월 청와대를 찾아 의료공백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공공의료 강화를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정당에도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탄원서를 전달받은 청와대 담당자는 “유엽이 한 사례로는 보고하기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다른 곳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경산 중앙병원은 유엽이 사건 때문에 환자수가 감소했다, 병원 이름을 떼면 탄원서 서명에 동참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왜 아들이 죽었는지 알려달라, 아들과 같은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의료공공성을 강화해달라는 요구에 책임 있는 기관과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씨는 “참담하다”고 말했다.
1년이 다 되도록 진전이 없자, 아버지는 도보행진을 마음먹었다. 아들의 허망한 죽음이 잊히는 걸 막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도보행진은 지난 2월 22일 시작했다. 이번 만큼은 답변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설렘과 기대감 한편에 이것마저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절박함이 함께했다.
주간경향은 3월 16일 경기도 범계역에서 출발해 서울 대림역까지 향하는 약 16㎞의 일정을 함께했다. 정씨는 전날까지 약 340㎞를 걸었다. 아들의 1주기인 3월 18일까지 남은 이틀 동안 14㎞를 더 걸어야 청와대에 도착한다. 베이징에서 불어온 황사가 뒤덮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이날 날씨는 맑았다. 바람이 불어 걷기에 좋았다. 범계역에 모인 이들은 18명이었다. 경북 경산에서부터 동행한 최기석 정유엽사망대책위 집행위원(민주노총 경산지부 조직부장)과 자문변호사 역할을 하는 민변의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해 노조 관계자, 인권단체 활동가, 정의당 경기도당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의료공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출발 전 짧게 인사말을 나누고 행진을 시작했다. 도보행진의 시작과 끝엔 늘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를 외쳤다. 오전 10시에 출발해 경수대로를 따라 대림대사거리를 거쳐 석수1동 주민센터에 이르니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났다. 걷기가 만만치 않다는 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정씨는 직장암 3기로 투병 중이다. 암세포는 제거했지만, 전이 가능성이 있어 늘 조심해야 한다.
정씨는 도보행진을 한 후 첫 3일간은 무척 힘들어했다. 혈액순환이 좋지 않아 발가락은 검게 변했고, 물집도 많이 잡혔다. 어깨 통증도 심했다. 하지만 일주일을 넘기면서부터 오히려 “몸은 훨씬 더 단단해졌다.” 다만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심적인 압박감이 커졌다. 묵묵부답을 되풀이하면 거기서 받을 상처가 두렵다. 그는 “목적지에 가까이 왔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불확실함을 향해 달려가는 게 불안하고,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된다. 한마음으로 함께 걸어주는 분들을 의지하고 가겠다”고 말했다.

고 정유엽 학생의 아버지 정성재씨가 3월 16일 도보행진 중 시민들에게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는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 주영재 기자
이날 동행자 중에는 정유엽 학생의 또래도 있었다. 이재혁 정의당 경기도당 청소년위원장(17)이다. 그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사망은 고 정유엽만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지역과 지방도시의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데 공공의대 설립과 공공병원 확충으로 시급히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밖 청소년인 그는 특히 청소년의 의료공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을 때 청소년이 혼자 가면 흔히 진료 거부를 당한다면서 그 이유를 들었다.
의료공백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문제가 된다는 게 도보행진에 나선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감염병 대유행 등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공공병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공병원을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하게 된다. 노숙인, 장애인, HIV 감염인,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이 공공병원에 의지할 길이 막히면서 비싼 민간병원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보호자가 없이는 입원을 시켜줄 수 없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진료 거부를 당하기 일쑤다. 결국 이들은 아파도 참고, 참다 병이 악화돼 죽음에 몰리게 된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 겪었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되풀이되는 것이다.
건강과 대안, 다산인권센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 장애여성공감,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 보건의료·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을 꾸려 지난해 11월 의료공백 1차 실태조사를 벌였고, 지난 3월 15일부터는 2차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이날 도보행진에 함께한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1차 실태조사 결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의료공백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평소에도 진료받기 어려운 조건의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공공병원이 소개되면서 더 갈 데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누구나 평등하게 의료기관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와 공공병원을 확충할 필요도 있지만, 위급 시기엔 민간병원을 동원할 수 있는 대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공의대 설립안이나 의대 정원 확대 등은 의사단체의 반발로 흐지부지되고, 올해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예산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가 공공의료의 부족 문제를 가리고 의료 문제를 K방역이라는 행정권력 강화로 해결하려 한다는 게 정유엽사망대책위나 보건의료단체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만 13건의 의료공백 사례가 담겨 있다.
진상조사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동참해달라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의료공백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정유엽 사례만으로는 의료공백 문제를 제기하기 부족하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권영국 변호사는 “정부는 백신문제가 해결되면 마치 의료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감염병 말고도 다른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고, 이들이 평등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이번 계기를 통해 반성하고 개선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늘 이슈에서 밀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결국 아버님은 의료공백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의료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받은 많은 사람을 대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도보행진단은 서울에 진입하면서 10인 이상 집합금지 지침을 따라 9인은 도로로 나머지는 인도로 분리해 행진했다. 인도로 가는 팀은 환하게 웃는 정유엽 학생의 얼굴이 찍힌 전단을 나눠줬다. 많은 사람이 멀리서 이들을 유심히 지켜봤고, 일부는 먼저 다가가 전단을 받아가기도 했다. 도보행진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서울 대림역 11번 출구 앞에서 끝났다. 정리 행사 중 누군가 “함께 걸어 좋았지만 슬펐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은 가진 사람이 바꾸지 않는다. 산재문제를 봐도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권을 움직여 제도를 만들었다.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큰소리를 낼 수 있는 행진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후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지, 사회의 제도적인 불합리함과 모순을 왜 해결하려 하지 않는지, 그 답변을 듣고자 참 먼 길을 왔습니다. 제도적 개선으로 누구나 평등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정착되고 현실화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정성재씨가 밝힌 소감이다.
행사를 마친 후 그는 한가지 청이 있다고 말을 건넸다. 도보행진을 시작한 날 청와대 국민청원도 시작했는데 참여자가 저조해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청원은 아들의 사망이 코로나19 의료공백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할 수 있도록 진상을 밝혀달라며 올린 것이다. 18일 청와대에 의견서를 전달한 후에도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할 경우 청원에 희망을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청원에 동참한 이는 3월 18일 오후 4시 기준 7090명이다.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이 30일 이내인 3월 24일까지 동참해야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