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기부, 더 나눌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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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경기위축에 정의연 의혹 등으로 심리까지 위축

“엄청 많이 줄었죠. 그런데 다들 코로나19 때문에 형편이 어렵기도 하고, ‘딴 주머니 챙기면서 징징대는 거 아냐’ 하는 소리 나올까봐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한 비영리 아동단체 대표의 말이다. 2020년은 특히 비영리단체와 단체들을 통해 후원금을 받는 이들에게 혹독한 해였다. 모인 기부금이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가 빠르게 위축된데다 상반기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액으로 활동한 단체들을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번지며 기부 심리까지 동여맨 탓이 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연말 기부와 나눔을 장려하려는 취지로 지난 12월 1일 서울 시청광장에 세운 ‘사랑의 온도탑’도 지난해보다 목표 모금액을 18% 줄인 3500억원으로 잡고 예년보다 간소한 제막식을 치렀다.

기부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올해 한국사회 전체의 기부 규모가 줄어든 것은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가 크지만, 코로나19 탓만 할 수도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높아졌음에도 기부 참여율은 반대로 지속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소세에 코로나19 영향이 겹치면서 비영리를 표방한 단체들 대부분이 사실상 활동가들의 불가피한 무급봉사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인권 분야 NGO 소속 활동가는 “올 한해 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동료들이 책 인세 수입 일부를 나눠주기도 했고, 다른 아르바이트까지 구해 번 돈으로 겨우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의 기부 참여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 사회조사 자료를 보면 관련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1년 36.4%에 달했던 기부 참여율이 2015년 29.9%, 지난해에는 25.6%로 떨어지며 지속적인 감소세를 나타냈다. 가계동향조사 자료의 ‘비영리단체로 이전’ 비중 역시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2003년에는 소득 대비 2.91%를 차지했던 이 비율은 2016년 2.38%까지 떨어지며 최저점을 찍은 뒤 이후 소폭의 회복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2.66%까지 올랐다. 그러나 보험연구원의 ‘최근 기부 및 자발적 상호부조의 변화’ 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 이 비율은 다시 크게 떨어져 2.3%를 기록해 집계 이래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가장 대표적인 기부모금 행사인 연말연시 나눔캠페인이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1월까지 4257억원을 넘기며 사랑의 온도탑도 100.4도까지 오른 상황과는 대비된다. 지난해 사랑의열매 연간 모금액도 6540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기부 참여율은 낮아지지만, 기부 모금액수는 늘어나는 이유를 두고 모금 분야 관계자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화폐 가치 감소에 따라 명목상의 금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과 함께 기부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 전체 기부에서 법인과 개인의 기부 비율이 대략 7 대 3 정도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이 약정한 기부액수는 갈수록 늘어나지만, 개인 기부자들 중 새롭게 기부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보다 기부를 단념하는 사람의 수가 더 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기업들의 기부금마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국내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중 기부금 내역을 공개한 247개 기업(공기업 제외)의 기부금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3분기까지 누적 기부금은 1조1253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9%(1114억원) 감소했다.

에너지빈곤층에겐 혹독한 겨울

올 상반기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며 공적 차원의 부조를 이끌었지만 이와 상반되게 사적인 영역의 상호부조는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연말연시로 접어들면서 연탄 같은 연료로 겨울을 나야 하는 에너지빈곤층에게는 더욱 혹독한 계절이 다가왔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22년간 연탄 나눔운동을 진행해온 전국 31개 연탄은행이 올해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기부받은 연탄은 92만장으로 전년 동기의 175만장보다 47%가량 감소했다. 연탄 배달 봉사자 역시 4235명으로 지난해(9083명)에 비해 53% 줄었다. 허기복 연탄은행전국협의회 회장은 “전국적으로 연탄을 사용하는 어려운 이웃이 10만가구에 달한다”며 관심을 당부했다.

기부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은 비단 국내의 현상만은 아니다. 코로나19로 몸살을 앓으면서 전 세계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한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비영리기구가 모은 기부금은 절반 이상 감소한 반면 식료품비와 필수생계비를 요청하는 빈민의 숫자는 1.5배 이상 늘어나 기부단체들도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성탄절을 앞두고 붉은 자선냄비를 내건 미국 구세군은 당초 목표 모금액은 1억2600만달러(약 1370억원)로 잡았지만 실제 예상 모금액은 그 절반인 6000만달러(약 650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여 부족한 절반의 모금액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때문에 위기에 몰린 어려운 이웃들은 늘었지만 반대로 주식시장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은 오히려 돈이 몰리며 자산 가격이 높아졌을 정도로 양극화된 위기의 모습이 기부 모금에서도 재확인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올해 상반기 가계경제의 저축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25.9% 늘어 수치상으로만 보면 금전적인 여유가 늘어났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는 가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탓에 타인을 위한 기부보다는 자신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저축액을 확충해두려는 수요가 있어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부금을 모으는 단체 중 일부가 모금액을 전용하는 등의 비리가 드러나면 전체 모금 사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영향을 받는 현상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기부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여유 부족’이 줄곧 1위를 차지했지만, 그 비중은 꾸준히 줄고 있고 오히려 ‘기부단체 불신’을 응답한 비율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단체 회계의 투명성을 강력하게 담보할 수 있는 공동의 플랫폼이라도 짜지 않으면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는 흐름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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