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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여성에 정자제공’ 법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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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배우자 동의 요건 없지만 정자은행 이용은 사실상 난임부부만 가능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의 비혼출산은 한국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시술)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다”라는 사유리의 발언에 보건복지부는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출산이 ‘불법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생명윤리법 해당조항에 ‘배우자가 있는 경우’ 동의를 받으라고 한 것이지 배우자가 없는 비혼여성의 정자은행을 통한 시술을 막는 규정은 아니라는 취지다.

“정자 기증을 아무나 해주지 않는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했다고 밝혔다. / 사유리 SNS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했다고 밝혔다. / 사유리 SNS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입장처럼 생명윤리법에는 비혼여성의 난자 제공, 배아 형성 시술과 관련해 배우자 동의 요건이 없다. 하지만 생명윤리법은 금전 등을 조건으로 한 정자제공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민간 병원 약 10곳이 정자은행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상 난임부부에게만 문이 열려 있다. 비혼여성 입장에서는 정자제공자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실제 정자은행을 운영하거나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술하는 병원 몇 곳에 문의를 했지만 긍정적인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한 여성전문병원은 “저희 쪽에는 아직 비혼여성 시술 문의는 없다”라면서도 “정자기증을 아무나 해주지 않는다. 난임부부 중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게만 기증한다. 비혼여성에게 정자기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 있는 병원은 “다른 시술과 달리 생명을 만들어내는 시술이기 때문에, 정자를 기증받기 위해서는 각 병원에 있는 ‘윤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며 “시술이 아니면 임신이 불가능한 상황인지, 부부가 아이를 가졌을 때 유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인지 등을 검토한다. 비혼여성의 문의는 없었지만 간단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증 정자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기증자를 직접 구해야 한다. 이 경우 역시 금전 등을 조건으로 한 정자제공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생명윤리법 위반 소지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예전에는 기증자를 직접 데려오는 난임부부들이 있었다”며 “금전 보상이 불법이기 때문에 티를 내지는 않지만 브로커를 통해 기증자를 구하는 경우가 다수”라고 말했다.

박민정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박사는 “기증자를 통한 정자가 건강한지 따져봐야 한다. 연구원은 기증자가 오면 정액검사·피검사 등 1차 검사를 한 다음에 정자를 냉동시킨다. 그리고 6개월 뒤에 다시 한 번 검사를 한다. 두 번의 검사 모두에서 문제가 없어야 기증자가 된다. 2차 검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냉동된 정자는 폐기된다”고 말했다. 개인이 이런 검증 과정을 거치기는 쉽지 않다.

비혼임신, 산 넘어 산

적절한 기증자를 구해도 끝이 아니다. 시술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은 체외수정(시험관 시술)과 인공수정에 대해 지원한다. 체외수정은 신선배아 이식 4회, 동결배아 이식 3회, 인공수정 3회다. 자격 요건에 따라 다르지만 인공수정은 30만원, 시험관 시술은 동결배아 50만원, 신선배아 110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환자는 30%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비혼모는 지원대상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은 지원대상을 국내법상 혼인상태의 난임부부, 사실상 혼인관계의 난임부부로 한정하고 있다. A전문의는 “시험관 시술은 한 번에 200만원에서 300만원가량이 든다”며 “정부 지원을 받아도 적은 비용이 아니고 나이가 많을수록 시험관 한 번에 성공할 확률은 낮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비혼여성에 정자제공’ 법과 현실 사이

정자와 비용 모두 준비됐다면 시술할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일선 병원들은 시술을 꺼린다. 먼저 대한산부인과학회(학회) 윤리지침 때문이다. 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는 “(배우자의 정자가 아닌 타인의 정자를 이용한) 비배우자 간 인공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침에 따르면 비혼여성이 시술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보건복지부에 “불필요한 지침 수정을 위한 협의 조치에 들어가 달라”고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불법이 아닌데 학회 윤리지침 때문에 병원에서 시술을 꺼린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학회는 지난 11월 25일, 윤리지침을 법률적 혼인관계에서 사실혼관계까지 포함하는 ‘부부’로 확대했다.

학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중엽 함춘 여성의원 원장은 “학회가 비혼여성에 대한 시술을 반대·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으로 먼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며 “윤리지침이 법률보다 앞서나갈 수는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술 이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문제도 병원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정자를 기증한 생물학적 아버지가 찾아와 아이의 정보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반대로 아이가 아버지를 찾으려고 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병원·의료인이 곤란해질 수 있다. 비혼이라고 해서 시술을 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혼관계였을 때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장 전문가들은 “하나하나 따져볼 것이 매우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 17대 국회에서 ▲기증자와 아이가 친자관계가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시술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국립의료원에 의료보조생식관리센터를 설치하고 ▲기증자의 기증횟수 및 기증으로 인한 출산 횟수 등을 등록·관리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양승조 당시 우리당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됐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구세군두리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혼모 김모씨가 아이를 안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 여성가족부 제공

구세군두리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혼모 김모씨가 아이를 안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 여성가족부 제공

사유리와 같은 케이스가 한국에서 가능하려면 법의 사각지대가 메워져야 한다. 이중엽 원장은 “보건복지부는 ‘금지’ 문구가 없어서 비혼여성 시술이 가능하다고 해석한 것인데, 윤리법은 금지가 없다고 해서 곧 해도 된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윤리법은 ‘해도 된다’고 명시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재차 법률이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자보건법도 ‘난임’을 ‘부부가 피임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부부 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아니하는 상태’로 규정하고 있으며, 난임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험관 시술이나 인공수정 같은 보조생식술을 허용한다(모자보건법 제11조 2항). 시술의 전제가 난임부부인 것이다.

현실과 기술을 따라오지 못하는 법

박민정 박사는 생명윤리법과 모자보건법 등을 언급하며 “사실상 비혼여성이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법적 토대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지금은 자신의 정자·난자를 동결시키는 것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없는 실정이다. 자가 정자·난자 동결 가이드라인은 물론이고, 이후 기증 관련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A전문의는 “비혼여성의 ‘낳을 권리’를 시작으로 많은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라며 “해외는 남성 동성부부의 아이를 가질 권리, 그렇다면 나아가 대리모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비혼여성 시술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성의 ‘낳을 권리’와 관련해 “혼인관계에서는 이 권리가 너무 당연하게 주어져 있었다. 권리라는 것을 혼인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나눠서 제한할 수 있을까”라며 “여성의 선택지를 넓혀가는 게 금지의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나영정 연구위원은 “다만 비혼출산 선택 이후, ‘싱글여성이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족하다”며 “어떤 형태의 임신·출산을 통해 태어났고, 어떤 형태의 가족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아이가 충분한 지원을 받고 차별없이 키워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지금의 가족정책으로는 현실을 담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중엽 원장도 “대부분의 질환은 의사 개인이 판단해서 치료를 하면 된다. 하지만 비혼여성 시술 문제는 의사 개인에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논의·합의가 필요하다”며 “학회의 기본적인 입장은 임신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것을 환영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12월 중 간담회를 열어 논의할 예정이다. 한정애 의장은 “의료기술이 발달했지만 법 제도적으로 검토할 부분이 많은 상황”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임신·출산할 권리, 가족을 구성할 권리 등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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