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회 돌봄시스템 꼭 필요”
정신과 의사는 죽고 싶다는 사람을 매일 만난다. 실제로 자신의 환자를 잃기도 한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의사생활 10년차에 환자를 잃었다. 백 교수는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최진실씨가 세상을 등지고 딱 일주일 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진료실에 찾아오는 분들만 봐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뼈아픈 계기가 됐습니다. 병원 안과 밖이 다 연결돼 있더라고요. 오늘도 환자분들이 박지선씨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2일 희극인 박지선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백 교수가 2010년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다.
해외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과 ‘보고 듣고 말하기’의 가장 큰 차이는 ‘보고’다. 백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90%가 직접적으로 ‘죽음’을 말해요.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과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는 말보다는 행동에서 위험의 신호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기’를 제일 앞에 넣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9년 동안 100만명 이상이 이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지난 2019년 초, 백 교수는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자신을 ‘평생의 동반자’라 부르던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죽음 때문이었다. 고인은 2018년 12월 31일 진료 중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그날 오전까지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고인의 뜻을 사회가 기억하도록 하는 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만큼은 정말 잘 잤는데 불면증이 생겼고 악몽에 시달렸다.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이 안 될 때도 있었다. 위험의 신호라고 생각하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환자들도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니까 같이 슬퍼해주고 힘내라고 해주고….” 임 교수의 환자 일부를 백 교수가 맡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백 교수는 “그 사건이 없었다면 훨씬 좋았겠지요. 하지만 이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우리 사회 흐름에 대해서도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고와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정신건강복지시스템이 지역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는 가족이 책임졌는데 핵가족화, 1인가구 시대가 되면서 아픈 사람들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사회 돌봄 시스템은 이런 현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친구의 사고가 친구 한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지점을 이야기해주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구나.”
센터장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센터장으로서의 활동은 이런 정신건강복지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코로나19는 그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코로나19처럼 검사하고, 병원에 보내고, 또 이후 추적까지 하면 자살은 충분히 줄일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이죠.” 한국은 15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