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 어디로 떠날 수는 없지만, 숲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적 드문 나무 사이를 타박타박 걸으면 바람이 살랑살랑불어와 “괜찮아”라며 위로를 건넬 것만 같다.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힐링이 된다.
강원 고성 화진포 금강소나무숲 강의 하구와 바다가 맞닿는 곳에 생긴 석호. 그 둘레가 동해안 최대인 16㎞에 달하는 화진포는 주변으로 거대한 송림이 둘러싸고 있다.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하는 곳이라 화진포(花津浦)다. 글자의 의미대로 보자면 꽃이 피는 나루터, 꽃나루다.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쭉 뻗은 ‘해파랑길’은 마지막 구간이 화진포와 이어진다. 부산에서부터 시작해 경북 영덕, 강원도 삼척·강릉을 거쳐 고성까지 올라오는 770㎞의 길고 긴 길이 이곳에서 마무리되는 셈이다. 고요한 호수와 그 둘레에 쭉쭉 뻗어 자라는 금강소나무숲은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숲은 화진포해수욕장과 화진포호수 사이로 드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소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자라는 금강소나무다. 그것도 1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노송이 대부분이다. 숲 안쪽으로는 야자매트로 산책길을 만들어 두었다. 야자매트길은 흙길을 밟으며 걷는 듯한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다. 두꺼운 매트를 깔았지만 땅의 굴곡이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진다.
숲의 앞쪽에는 동해, 뒤로는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끊임없이 파도를 몰아치는 바다와 잔잔한 호수는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발길을 붙잡는다. 숲길을 걷다가도 자꾸만 벤치에 앉아 눈앞으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게 만든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걷기만을 원하는 사람에게도, 이 숲은 훌륭한 선택지다. 산책로를 따라 응봉에서 거진항까지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전북 고창 운곡람사르습지 1981년 영광의 한빛원자력발전소를 만들면서 고창의 8개 마을을 비우고 냉각수용 저수지를 조성했다. 오랜 시간 삶의 터전이었던 이 계곡은 삽시간에 비워지고 그 자리에 물이 들어차게 됐는데, 저수지 인근으로 습지가 만들어졌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 습지는 2011년 한국에서 16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 람사르습지로 인정받았다는 건 그 정도로 많은 생명이 습지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864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을 뿐 아니라, 매년 새로운 종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 습지는 자연이 얼마나 놀라운 회복력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사람이 살던 자리에 철조망을 치고 사람의 발길을 막았을 뿐인데, 논으로 쓰다 버려둔 자리며 집이 있던 자리는 물이 가득한 습지가 됐다. 자연 그대로의 천이(遷移) 과정을 거친 것.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많은 습기가 다 어디에 있었던 건지 의아할 만큼 짧은 시간에 완벽한 습지의 모습을 갖췄다. 습지의 해설사에 따르면 이토록 짧은 시간에 천이 과정을 거쳐 습지가 형성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곳은 습지 트레킹 코스를 따라 이동하게 되어 있다. 트레킹의 절정은 습지 안쪽을 그대로 관통하는 덱 구간이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인 폭 80㎝의 덱을 따라서 이동하며 생태를 관찰하는 식이다. 습지 안쪽으로 사람이 살던 흔적이 완연하다.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경남 함양 상림공원 치수는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일이었고,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1100년 전 신라 진성여왕 시절 함양은 치수로 골머리를 앓는 지역이었다. 위천이라는 하천이 함양의 한가운데를 관통해서 흐르는데 수시로 홍수가 나서 그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었다. 이를 해결한 인물이 고운 최치원이다. 그는 함양태수로 부임해서 물줄기를 돌려놓고 둑 위에 숲을 조성해 넘치는 물을 막았다. 이때 만들어진 숲이 지금의 상림이다.
상림이라고 하면 뽕나무숲을 연상하는 이가 많겠지만, 함양의 상림은 ‘윗 상(上)’을 쓴다. 당연히 위천의 하류에 하림도 있는데, 위용이 예전만 못하다. 최치원은 이 숲에 ‘대관림’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언젠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홍수가 발생해 둑의 중간이 무너지면서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지게 됐다. 이중 상림은 함양을 대표하는 숲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총 1.6㎞에 걸쳐 21㏊(약 6만3000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반면 하림은 인간이 살기 위한 공간으로 개발되면서 몇그루의 나무만 남아 있다.
상림은 사계절 언제나 매력적이다. 봄에는 봄꽃으로, 여름에는 짙은 녹음으로, 가을이면 단풍이 사람의 발길을 이끈다. 심지어 지리산이 가까워 겨울에는 눈도 제법 내리니 하얀 설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상사화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고창의 선운사, 영광의 불갑사가 유명하지만, 사실 함양의 상림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꽃무릇 잔치가 벌어지는 곳이다. 숲 안쪽의 바닥이 온통 빨간 꽃무릇으로 가득하다.
상림에는 120여종의 나무 2만그루가 자란다. 온갖 꽃나무와 과실수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어 사철 언제 가든 서로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kiza080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