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돌봄, 관계회복이 중요”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서랍 안에는 막내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엔 마지막까지 딸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두 딸의 이름이 여러 번 되풀이해 적혀 있었다. 올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한 해 동안 가장 주목받은 만화를 선정, 시상하는 ‘2020 부천만화대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웹툰 <우두커니> 마지막화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작품을 만든 작가 본인의 기억이기도 하다.
![[주목! 이 사람]부천국제만화축제 대상작 <우두커니> 심흥아·우영민 부부 작가](https://img.khan.co.kr/newsmaker/1395/1395_38.jpg)
심흥아·우영민 작가는 부부이자 ‘심우도’라는 팀명으로 활동하는 동료 작가다. 딸인 심 작가와 사위인 우 작가는 치매로 고통받는 늙은 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가족의 현실적인 애환, 그리고 지난 시간 행복했던 순간들을 반추하는 모습도 함께 담아 <우두커니>를 그렸다. 연재 중에는 특히 가족이 투병하고 있다는 독자들의 댓글이 많이 달려 아픔을 공유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던 작품이다.
“저희는 그렇게 잘하지 못했는데, 미리 가족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응어리가 있으면 풀어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품을 쓴 심 작가는 가족이 치매를 앓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무엇부터 준비하면 좋을지를 묻자 ‘관계회복’이란 답을 먼저 꺼냈다. 치매 돌봄에서 가족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가 다정했던 가족이 한순간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떼를 쓰거나 폭언을 하는 등 알아볼 수 없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 작가 역시 “미리 많은 대화를 나눠야 치매의 징후가 되는 변화를 포착하기도 쉽고, 초기에 알아차리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더 많아진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딸의 임신 소식을 듣자 환한 웃음을 보인다. 안타깝게도 손주가 태어나고 이 만화로 대상까지 받는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아버지는 가족과 작별한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다 상을 치르고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 모두 연재 중에 있었던 일이다. 게다가 따로 작업실을 차리지도 않은 상황이라 부부에 아기까지 세 가족이 한 집에서 작업과 육아, 일상생활 전부를 이어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부부 작가는 서로에 대한 신뢰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심 작가는 “24시간을 붙어 있었지만 남편이 배우는 입장으로 맞춰줬고, 서로 감정도 쌓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풀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대부분의 장면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렸어도 만화로 그리지 못할 정도로 힘겹고 민감한 현실도 없지 않았다. 심 작가는 “나 자신에게 실망할 정도로 힘들었던 장면들은 최대한 절제해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 작가의 간결한 그림이 이렇듯 담담하게 진행하는 이야기와 잘 어울려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두 작가의 이런 차분한 성격은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시상식이 열리는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가 비대면 행사로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드러난다. 심 작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떠들썩하게 축하받는 것도 좋지만 역시 우리 성격에는 이렇게 조용한 시상식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상금은 전셋집 이사하는 데도 보태고, 조금이나마 아기 이름으로 좋은 일하는 데도 쓸까 합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