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기업·단체가 특정 해변 해양쓰레기 수거 등 관리 활동
2018년 8월 수족관에서 자라던 3년생 붉은바다거북이 제주도에 방류됐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바다거북의 등갑에 인공위성 추적장치가 달았다. 자연개체수 회복과 이동경로 연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바다거북은 바다로 간 지 11일 만에 부산 바닷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사체로 돌아온 거북의 뱃속은 폐어구와 라면 수프 봉지, 비닐 등으로 차 있었다. 수족관에서 자란 거북이 해양쓰레기에 노출될 일이 없었다. 11일 동안 제주 바다와 남해안에서 먹은 쓰레기는 225개에 달했다. 해양생물자원관은 2017년부터 해안에서 발견된 바다거북 사체를 부검하고 있다. 사체 장기에서는 대부분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pixabay/텍사스주의 해변입양 홈페이지(사진 왼쪽하단)
2015년 미국 해양학자들이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발견한 바다거북의 코에서 빨대를 뽑아내는 영상이 충격을 줬다. 해양생물자원관의 바다거북 부검 결과는 해양쓰레기 문제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경고를 던졌다. 지난해 5월 정부는 ‘해양 플라스틱 저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18년 11만8000톤이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추진과제는 크게 4가지다. 발생원별 저감 대책, 해양 플라스틱 수거·운반체계 개선, 해양 플라스틱 처리·재활용 촉진, 관리기반 강화 및 국민 인식 제고 등이다. 이 가운데 ‘관리기반 강화 및 국민 인식 제고’의 방안이 흥미롭다. 아이를 양육하듯 개인이나 단체, 기업이 특정 해변을 자발적으로 입양해 책임감을 갖고 해양쓰레기 수거, 경관 개선 등의 활동을 하는 ‘해변입양’이 방안 가운데 포함됐다.
해변을 입양하세요
국내에서는 기업체와 연안을 연계해 주기적으로 정화활동을 하는 ‘1사 1연안제도’ 등이 있었지만 단순 정화활동에서 벗어난 해변 관리 프로그램은 드물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일부 해수욕장에서 ‘시민참여관리제도’를 시도했지만 미미한 실정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올 하반기부터 제주도 해변을 대상으로 해변입양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내년부터는 전국에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해나갈 예정이다. 해변에 대한 일상적인 문화를 정착시켜나간다는 것이 해수부의 계획이다. 다만 해변입양 사업의 명칭은 달라진다. 해수부는 명칭과 운영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8월 21일까지 공모하고 있다.

지난 7월 5일 강원 경포해수욕장 백사장에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널려 있다./연합뉴스
해변입양은 1986년 미국 텍사스에서 시작됐다. 한 해 전 텍사스에서 시작된 ‘고속도로 입양’을 확장한 것이다. 텍사스주 정부 측이 운영하는 해변입양 홈페이지를 보면 현재까지 54만명의 자원봉사자가 텍사스 해변에서 9700톤의 쓰레기를 수거했다고 밝히고 있다. 텍사스의 해변을 한번 입양하면 2년간 한 해에 세 번씩 반드시 정화활동을 해야 한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도에서 누가 어느 해변을 입양했는지도 볼 수 있다. 걸스카우트, 회사, 공무원, 학교 등 다양하다. ‘OO가족’이라는 이름도 눈에 띈다. 해변의 한 구간을 한 팀이 입양하도록 돼 있지만, 당사자들끼리 합의한다면 여러 팀이 한 구간을 돌보기도 한다. 붐비는 관광지라면 청소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해변입양으로 일정 수준의 홍보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텍사스에선 입양구역 청소 외에도 매년 2차례 전역을 대상으로 대규모 정화활동을 진행한다. 주정부는 쓰레기봉투와 라텍스 장갑을 제공한다. 봉사자들은 편안한 신발만 신으면 된다. 이들은 쓰레기를 주우면서 ‘데이터 카드’에 쓰레기의 유형과 출처를 기록한다. 홈페이지는 “이 자료는 국제조약과 해양쓰레기의 양을 줄이기 위한 법률 통과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해변입양은 시민의 인식을 높이고 쓰레기의 원인에 대해 교육하고, 국가와 국제사회의 해양정화 활동에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낸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각지에서 해변입양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프로그램 운영 주체나 방식은 각기 다르게 설계됐다. 9년 전 제5차 국제 해양쓰레기 콘퍼런스에서는 해양쓰레기의 예방과 관리를 위한 ‘호놀룰루 전략’이 채택됐다. 이 전략에서 해변입양은 ‘해양쓰레기 영향 및 제거에 대한 교육 및 홍보 실시’ 항목 가운데 한가지 예로 언급되기도 했다.
정부는 해변이 있는 지자체와 민간이 연결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제주도 시범사업 결과를 다른 지자체와 공유하며 관심 있는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어느 해변에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할 건지는 지자체와 민간의 자율적인 협의에 맡긴다. 해수부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반짝 흥행은 하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며 “정부는 플랫폼처럼 서로 연결해주고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해변에서 수거한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모아 놓았다./그린피스
더 주목할 문제는
2018년 해양환경공단의 ‘국가해양쓰레기 일제모니터링 결과보고서’를 보면 전국 40개 해안에서 6회에 걸쳐 수거한 해안쓰레기는 총 3만1930개, 4589㎏이었다. 이중 플라스틱 쓰레기가 83%나 됐다. 발생 원인은 어업이 33.5% 가장 높았고 일상생활(22.7%), 해변여가(13.3%), 낚시(9.5%) 순으로 나타났다. 외국에서 온 쓰레기는 4.9%였다.
환경활동가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아예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해양쓰레기에 대한 인식 증진이나 수거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용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환경운동연합에서도 해양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는데 이를 통해 수거하는 쓰레기양은 (전체 발생량에 비해) 미미하다”며 “플라스틱의 사용 후 단계를 이야기하기보다 초기 생산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충남 홍성의 남당리에서 정화활동을 했다. 어업이 이뤄지는 곳이라 어류 채취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가 많았다. 김미선 활동가는 “해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햇빛에 조금만 노출되면 염도가 있어서 순식간에 부서진다. 쓰레기를 봉투에 넣는 순간에도 부서진다. 그런 쓰레기들을 꽃게들이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민들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해수부는 어업인들이 폐어구·폐부표를 자발적으로 회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공병 보증금과 유사한 어구·부표 보증금 제도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해양보호를 위해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미경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해양캠페인 팀장은 “(해변입양이) 해양보호를 위한 활동이라면 우리 연안에 있는 바다뿐 아니라 공해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에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