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잃은 비정규직들 물류·배송·대리운전 등 단기직으로 몰려 경쟁 치열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19 고용대책은 고용 취약계층의 사각지대를 메우지 못했다. 실직·휴직자와 일감이 끊긴 프리랜서들은 생계를 위해 물류·배송과 대리운전과 같은 단기 일자리를 찾는다. 단기 일자리 시장에 인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일감 잡기 경쟁도 치열해졌다.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노동자는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서울의 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입구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민씨(가명·42)는 경력 3개월의 대리운전 기사다. 전에는 인천 영종도의 한 호텔 하청업체에서 수송일을 했다. 김씨는 지난 3월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방문객 감소로 인건비를 절감해야 한다는 게 사측이 밝힌 해고 사유다. 김씨는 해고 통보를 받은 다음 날부터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실업급여도 지난 5월 16일이 돼서야 신청할 수 있었다. 사측에서 4대 보험 상실신고를 늦게 한 탓이다.
대리운전 손님은 줄고 기사는 늘어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김씨는 본격적으로 대리운전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씨는 매일 오후 5시 30분에 인천 청라 롯데마트 앞으로 출근한다. 마트 앞 거리에서 ‘첫 콜’을 기다린다. 그런데 콜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지난 5월 18일에는 출근 4시간 만에 첫 손님을 받았다. 9시 20분에 잡은 첫 콜의 행선지는 경기 안산 산본. 45㎞ 거리로 1시간가량 운행을 한 뒤 3만원을 받았다. 두 번째 콜은 금정역에서 부천 심곡동, 세 번째 행선지는 부천 역곡지구였다. 콜을 더 잡기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 여의도로 갔지만 실속이 없었다. 인근 영등포로 가는 콜 한 개가 전부였다. 김씨는 영등포에서 새벽 2시까지 콜을 기다리다 결국 심야버스를 타고 부천 상동으로 이동했다. 부천 상동은 새벽에 대리기사들이 모이는 장소다. 대리기사 전용 셔틀버스(승합차)가 각지로 출발한다. 부천 상동에서 대리기사 셔틀버스를 잡아타고 자택이 있는 인천 청라로 복귀한 시각은 새벽 4시. 김씨가 가입한 카카오T대리 이용 수수료와 교통비를 제하고 이날 번 돈은 6만8000원이었다.
김씨의 평균 수입은 하루 6만원 내외다. 코로나19로 이용객이 줄어든 탓이다. 수익은 줄었지만 나가는 비용은 이전과 같다. 운행 한 건당 20%의 수수료 외에도 매달 2만원의 프로서비스 이용료를 카카오에 낸다. 프로서비스 회원은 단독 콜 배정권을 받는데 비회원보다 더 빨리 콜을 잡을 수 있다. 김씨는 “요즘은 콜 뜨면 말 그대로 ‘순삭’이다”라며 “밤을 새우고도 교통비로 하루벌이를 다 날리는 날도 많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시장은 포화상태다. 손님 수는 줄었는데 대리기사는 폭증했다. 김씨처럼 코로나19 영향으로 실직한 이들과 ‘알바’ 자리를 잃은 대학생·청년층이 몰리면서다. 여기에 타다 서비스 종료 이후 타다 드라이버가 대리 시장에 유입되면서 콜 경쟁이 심해졌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전에도 경기가 안 좋으면 대리기사 수가 늘어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증가 폭이 크다”며 “처음에 코로나가 무서워 운전대 안 잡던 사람들도 생활고를 버티기 힘드니까 다시 시장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기사들이 ‘서울이동노동자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향DB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이주미씨(가명·49)는 영어권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 일을 했다. 그러다 관광길이 막히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씨는 지난 3월 20일부터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3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출고 상품 피킹 작업이 주 업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이씨는 “솔직히 일이 너무 힘들고 체력도 안 따라준다”며 “다른 일 찾아봤지만 여기 말고는 사람 뽑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벌써부터 계약이 만료되는 6월 이후 일자리가 걱정이다. 예전에는 쿠팡 재계약이 수월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물류에 구직자가 몰리면서 재계약도 까다로워졌다. 쿠팡 업무는 1분·1시간 단위로 실적이 집계된다. 체력이 달리는 이씨의 실적은 저조했다. 쿠팡 측으로부터 ‘재계약은 어렵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무엇보다 몸 상태가 문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정부·지자체 지원사업에 신청해봤지만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을 받았다. 이씨는 “관광 가이드끼리 ‘우리는 지원받을 수 없는 직종’이라고 말한다”며 “정부가 프리랜서를 돌본다고 하지만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공공일자리 얻어도 8월 이후가 걱정
공공일자리를 얻은 박희진씨(가명·28)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박씨 역시 프리랜서 관광가이드로 일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다행히 지난 3월 서울시에서 만든 코로나 대응 긴급 일자리에 지원해 5개월여 동안 ‘움직이는 관광 안내소’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이동식 관광 안내소는 그간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운영해온 무급 일자리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서울시가 관광 안내서비스를 공공일자리로 전환했다. 근무시간은 평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로 지하철 역사와 역에 연결된 지하상가를 돌면서 안내를 한다. 박씨의 한 달 급여는 90만원 정도다.
당초 공공일자리는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사업이다. 코로나19 피해가 확산되자 서울시는 올해 2월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공공일자리 사업’부터 공공일자리 참여 요건을 ‘만 18세 이상의 근로 능력이 있는 서울 시민’으로 확대했다. 특히 관광과 문화예술, 소상공인 등 코로나19 피해업종 종사자를 별도로 선발했다.
서울 관내 코로나19 피해업종 종사자 가운데 박씨처럼 공공일자리를 얻은 이들은 390여 명이다. 공공일자리 덕분에 숨통은 트였지만 박씨는 8월 이후가 걱정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프리랜서·특고 노동자 대상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은 6월 1일부터 신청을 받는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 시기와 공공근로 기간이 겹치기 때문에 박씨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박씨는 “관광 가이드일은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고 채용시장은 여전히 닫혀 있다”며 “공공일자리가 끝난 뒤에는 어떻게 생계를 꾸려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용안전망 사각지대를 메울 전향적인 추가 대책을 주문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고용위기 여파는 후행 변수이기 때문에 코로나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다 해도 위기는 지속된다”며 “정부가 고용지원을 위한 땜질 처방은 했지만 이제까지 나온 대책은 현행 틀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에 불과하다. 대대적인 2차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