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서류 보려면 행정소송 통해야… 가·피해자 모두 사실 확인 못 해
박형철군(가명·17)은 2019년 6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에서 1호, 2호, 5호, 8호 처분과 함께 특별교육 30시간 처분을 받았다. 8호처분은 강제전학에 해당한다. 형철군은 그해 5월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의 머리카락을 삭발하고, 피해학생의 엄마가 준 이발비 5000원을 받아 함께 햄버거를 사 먹었다. 또 민머리가 된 친구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명백한 학교폭력이었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JTBC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 JTBC홈페이지
피해를 입은 학생의 부모는 이 사실을 학교에 알렸고, 곧이어 공동학폭위가 열렸다. 형철군의 학교와 피해학생의 학교, 함께 있었던 친구들의 학교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이었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학교가 다를 경우 그동안은 공동학폭위에서 사안을 결정해왔다. 공동학폭위에서 형철군은 가장 무거운 8호처분 등을 받았다. 나머지 친구들도 출석정지(최대 30일)·서면사과 등의 처분을 받았다.
잘못된 기록도 알지 못한 채 처벌 받아
머리를 직접 깎은 가해자는 형철군이었지만 이발을 지시한 친구는 따로 있었다. 그러나 별도의 처분은 내릴 수 없었다. 이미 자퇴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형철군의 부모는 “우리 아이의 잘못도 크지만 모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친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고려해달라”며 재심 청구를 했지만 기각됐다.
학교의 입장은 단호했다. 단 한 번의 ‘이발 해프닝’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학교폭력이 이발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해당하고, 피해의 정도가 중하기 때문에 강제전학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학교는 신청인(형철군) 답변서에 “OOO라는 학생이 주도적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만으로 신청인이 OOO 학생과 공모해 피해학생에게 한 학교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형철군은 어쩔 수 없이 학교폭력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OOO와 공모해 특수감금, 특수공갈, 특수폭행,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의 범죄를 저지른 공동정범”이라고 적었다. 또 강제전학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교육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형철군의 부모는 그러나 재심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이와 관련한 어떠한 학교 측 자료도 받아볼 수 없었다. 가해학생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볼 수 있는 자료는 학폭위 회의록이 전부였다. 사안조사 보고서는 정보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형철군에게 유리한 증거는 무엇인지, 불리한 증거는 무엇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잘못을 모두 인정했고, 피해학생이 진술한 피해는 이발사건이 전부인데다 형철군의 학교와 피해학생의 학교는 걸어서 2시간 거리에 있어 전학의 실효성이 없는데도 8호처분이 내려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형철군의 부모는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나서야 학교가 작성한 사안조사 보고서 등의 각종 문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통상 학폭위, 재심,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절차를 밟을 때 제출되는 서류는 ‘학교폭력 사안조사 보고서’, ‘관련학생 및 목격학생 확인서’, ‘보호자 확인서’, ‘전문가 및 상담교사 소견서’ 등이다. 문제는 이 서류들이 행정소송 절차를 밟기 전까지 가·피해학생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 기재된 사안조사 내용이 있어도 가해학생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처분을 받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형철군의 부모 역시 재판이 진행되고 나서야 기록 열람·등사를 통해 학교가 작성한 사안조사 보고서에서 잘못 기재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학생이 이발사건 이전에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형철군이 사진으로 찍어 단체 채팅창에 올렸다는 내용 등이었다. 그러나 단체 채팅창에 올라온 ‘아파하는 얼굴’의 당사자는 피해학생이 아닌 함께 징계를 받은 다른 가해학생이었다. 아이들은 평소 자퇴한 학생 주도로 레슬링 연습을 했었다고 진술했다. 그때 찍은 사진이었다. 학교는 그러나 이 사진이 피해학생이 지속적인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또 형철군의 부모가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 받아온 피해학생 부모의 탄원서 역시 강압에 의해 작성해준 것일 뿐 진정성이 없다는 내용의 상담교사 확인서도 뒤늦게 법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법원은 조정을 통해 지난 1월 형철군에 대한 학교의 전학처분을 취소했다. 형철군이 피해학생을 지속적으로 폭행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고, 그 외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봤다. 전학의 실효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학교는 전학처분을 취소하고, 6호(출석정지), 5호(특별교육 이수), 4호(사회봉사)처분을 내렸다.
개인정보 삭제한 회의록 공개만 가능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시행령 개정으로 학폭위는 사라졌지만 가해학생이 행정소송을 하지 않는 이상 자신과 관련된 서류를 확인할 수 없는 맹점은 여전히 남아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앞으로는 학교장 자체해결로 화해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에 한해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가 학교폭력 사안을 판단하고, 가·피해 학생이 처분에 불복할 경우 행정심판, 나아가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를 떠난 학폭위가 학생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학폭위는 적어도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학생의 평소 행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관계 등을 두루 고려해 판단할 수 있는 반면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는 일종의 ‘서류작업’을 통해 기계적인 판단을 내려놓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학폭위도 학교장의 성향, 학부모 위원과 가·피해학생의 관계, 학생의 학교 내 영향력 등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나왔다. 반면 심의위는 학생의 평소 모습은 배제된 채 학교가 작성한 진상조사 보고서 위주로 판단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면담일지, 진상조사 보고서는 여전히 정보공개 대상이 아니다. 심의위 회의 역시 비공개로 진행된다. 다만 가·피해학생 측이 정보공개를 요구할 경우 개인정보를 삭제한 회의록 공개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가 제출한 진상조사 보고서에 오류가 있더라도 가해학생 측이 이를 정정하고 심의위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기회가 없다. 이는 피해학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가 축소돼 기재될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 이정엽 학교폭력사건 전문 행정사는 “가·피해학생이 회의록을 제외한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보려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무모한 소송을 막기 위해서라도 판단의 근거가 되는 모든 자료는 양측 학생 모두에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학교폭력전문’ 변호사들이 정보의 폐쇄성을 근거로 소송을 유도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소송으로 가면 학교의 절차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소송을 유도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절차적 하자를 발견해 판결을 통해 원처분을 취소하더라도 학교는 절차적 하자를 없앤 뒤 동일한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열릴 심의위에서도 이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정엽 행정사는 “법원은 처분의 감경을 결정하는 곳이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