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음식 조합은 건강에 나빠” 주장은 근래에 만들어진 속설
“전형적인 가짜뉴스죠.” 정재훈 약사의 말이다.
TV·라디오 등 방송 출연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정 약사는 <정재훈의 식탐>,
<생각하는 식탁> 등 ‘푸드라이터’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가짜뉴스라고 지칭한 대상은 바로 상극음식이다. 그리고 이 ‘가짜뉴스’ 유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곳은 “아침방송들”이라고 덧붙였다. “방송이나 매체에서 음식을 약처럼 다루다 보니까 무슨 효과가 있고, 또 무슨 성분이 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말미에 덧붙이는 것이 부작용이나 다른 음식과의 상호작용이에요. 약은 실제 그런 상호작용이 있어요. 하지만 음식은 엄청나게 많이 먹지 않는 한 그런 부작용은 없습니다.”
상극음식. 인터넷을 뒤져보면 출처 불명의 여러 리스트가 나온다. 일부 인터넷 매체, 카드뉴스 등도 상식처럼 거론하고 있다. 감과 게가 상극음식이라 것은 대표적인 이야기다. 실제 조선시대 경종이 복통과 설사를 앓은 뒤 사망했는데,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로 알려져 있다. 경종 사망 후 당시 소론계열에서 게장을 먹지 않게 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게장과 생감 이야기는 19세기 초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규합총서>의 ‘주사의(酒食議)’ 편에도 언급되어 있다. 실학자 서유본에게 시집을 간 빙허각 이씨는 명망 있는 소론 가문 출신 여성이다.
근거 없는 속설에 불과한 상극음식
그러나 기자가 접촉한 음식 전문가들 대부분은 상극음식, 더 나아가 음식궁합이라는 말 자체가 “여름철 선풍기를 틀고 자서 저체온증 또는 산소 부족으로 죽었다”는 이른바 ‘선풍기 괴담’처럼 언급할 가치가 없는, 근거 없는 속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왜일까.
“예전에는 지금보다 먹다 죽을 확률이 1000배는 높았을 것이다. 원인을 찾다보니 먹은 것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온갖 추측을 했을 것이고, 거기에 그럴듯한 논리가 덧붙여진 것이다. 감 이야기도 그렇다. 먹을 게 부족하다보니 지금처럼 단감만 먹는 것이 아니라 채 익지도 않는 떫은 감도 먹었다. 타닌 성분이 많으면 독이다. 실제 떫은 감을 먹으면 확 오그라드는 것이 있지 않나. 예전엔 급사도 많았고, 부패한 음식을 먹거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뭐를 같이 잘못 먹고 죽었다’는 식의 상극이야기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최낙언 좋은식품정보 대표의 말이다.
실제 인터넷의 상극음식 ‘정보’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하는 설명이 많다. 찬찬히 뜯어보면 엉성한 논리로 포장돼 있다. 앞서 예를 든 감과 게의 경우 한 블로그에 올라온 상극음식 정보에 따르면 “감의 타닌 성분이 수렴작용을 하기 때문에 식중독균 번식이 쉬운 꽃게와 감을 함께 먹으면 식중독이나 소화불량 장애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식중독균으로 오염된 꽃게라면 굳이 감과 함께 먹지 않더라도 탈이 난다. 게다가 상극음식이라고 주장되는 음식들의 범위는 근래에 더 확대됐다.
한 블로그 게시물에 따르면 ‘삼겹살에 소주’도 상극음식이다. 이유는 “소주가 체온을 높이면서 지방합성을 촉진하기 때문에 완전 상극인 조합”이라는 것이다. 치맥(치킨과 맥주)도 상극이다. “둘을 함께 먹으면 ‘푸린’이라는 성분 때문에 통풍과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한 언론사의 명절 카드뉴스는 주장하고 있다. 시금치와 두부가 상극음식인 이유는 “시금치의 옥살산 성분과 두부의 칼슘이 만나 결석이 만들어지기 쉽기 때문인데, 이로 인한 담석증이나 신석증이 걸리기 쉽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과 도토리묵도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같이 먹어선 안 된다. 도토리묵의 주성분인 녹말과 감의 타닌 성분이 빈혈이나 심한 변비를 유발하고, 소화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도토리묵에 들어 있는 녹말은 전분인데, 저 논리가 성립하려면 전분이 들어 있는 쌀·보리·밀·옥수수 다 먹지 말아야 한다”며 “마찬가지로 옥살산은 시금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주장대로라고 하면 칼슘과 옥살산 음식조합은 다 기피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식의 성분은 간단치 않고 복합적”이라며 “굳이 참고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고지혈증약 먹을 때 자몽을 먹으면 안 된다’와 같은 식약처 지침 정도”라고 덧붙였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역시 “개인에 따라 특정 음식에 대한 음식 알레르기 반응을 초래할 수 있지만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조합이 있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상극주장 논리도 엉성한 게 많아
이쯤 되면 “만두를 허겁지겁 많이 먹어 뱃속에서 부풀어 죽었다”는 식의 음식괴담 정도에 불과한 ‘음식상극설’이 어떻게 상식처럼 유통됐는지 궁금하다. 음식문헌 연구가 고영 작가에 따르면 그 기원은 일제강점기다.
‘飮食相克(음식상극)에 主意(주의)!’
1933년 6월 8일자 <동아일보>에 ‘가정의학’ 표제를 단 기사 제목이다. 내용을 보면 흥미롭다. 상극음식을 ‘미신전설’에 근거한 것과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미신전설로 황당무계하야 가히 취신치 못할 것”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은 “鹿肉(녹육)과 시금취의 혼식은 癩病(나병)이 된다거나, 鷄足(계족)을 먹으면 유산한다던가, 개고리와 배암을 한데 먹으면 죽는다는 따위”라고 기사는 언급하고 있다. 녹육은 사슴고기, 계족은 닭발이다. 개고리와 배암은 개구리와 뱀을 말하는 것이다.
이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의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들이다. “복사와 비웃알은 복통을 일으키고, 청매에 점복은 死(사)오, 자도에 참새고기는 생명이 위험하며, 뽕과 돈육은 죽는다는 등. 또 장어에 매는 死(사), 八目鰻(팔목만)에 醋(초)나물은 下痢(하리)…”와 같이 상극작용을 기사는 언급하고 있다. 음식문헌 연구가 고영 작가에 따르면 복사는 복숭아이고 비웃알은 청어알이다. 청매는 매실을 말하며 점복은 전복이다. 팔복만은 칠성장어이며 하리는 복통이다. 앞서 개구리와 뱀도 그렇지만, 요즘엔 대중적으로 먹지 않는 조합이다. 기사의 주장은 사실일까.
고 작가는 “가정의학이라는 표제가 있지만, 실제 의학이라기보다 일종의 야담으로 봐야 한다”라며 “과거 왕실에서 누가 뭘 잘못 먹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그런 이야기가 커지려면 대중매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매체가 등장한 시기가 일제강점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실제 일제강점기 신문을 보면 상대적으로 초콜릿이나 커피, 우롱차 등에 대한 정보는 공들여 써서 비교적 정확한 데 비해 저런 항간에 떠도는 속설이나 조선음식에 대한 기사를 보면 주술호응도 안 맞고 문장도 안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서양음식에 대한 정보에 비해 조선음식에 대한 천대가 문헌적으로도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음식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상극음식’에 대한 근거 부족한 설이 사실처럼 돌아다니게 된 데에는 1970년대 신문이나 방송매체 등을 통한 국적 불명의 한의학 지식이 원인일 것으로 봤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대학원 교수는 상극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푸드폴리틱스(food politics)’, 즉 음식정치학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했다. 주 교수의 말이다. “국가가 의료가 책임지지 못하니 일종의 민간요법으로 <동의보감>의 ‘단방문’이나 ‘탕액’ 편에 나오는 것들에 대한 단편적 지식으로 한 가지 약재로 여러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인식이 민간에 확산되었다.” 단편적인 한방 지식이 민간전승처럼 이어져 내려오다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일부 영양학자들이 문헌적 근거 없이 영양학 지식에 전승된 민간요법을 첨부시켜 만들어낸 ‘가짜뉴스’라는 설명이다. 실제 기자는 앞서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상극음식 주장의 원류를 국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들 학자가 펴낸 대중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음식궁합을 다루고 있는 저서에서 상극음식에 대한 주장은 그리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간단히 말해 상극이라는 말은 레퍼런스 오류에 해당합니다.” 한의사 한동하 한의원 원장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상극이라는 말은 서로 반대되는 기미와 효능이 있어 같이 썼을 경우 기미와 효능을 떨어뜨린다는 말인데, A라는 약과 B라는 약을 함께 쓰지 말라는 말은 있어도 음식에까지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이냉채의 경우 식초나 미역은 한의학에서 냉성이 있어 성질이 서늘하다고 하는데 시중에 가면 거기다 청양고추를 넣는 경우가 있어요. 나름 고추가 온성이니까 배탈이 안 나게 하겠다는 고안인데 그걸 두고 같이 써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의미 없는 것과 같죠.”
그에 따르면 <방약합편>과 같은 중국의 한의학서의 ‘복약식기’를 보면 ‘금기음식’이라는 항목으로 어떤 음식을 약과 함께 먹지 말라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상극과 함께 본격적으로 다루는 고한의서는 없다. 한 원장은 “내가 알기로는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따로 언급하는 것이 없고,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개별항목으로 언급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한약과 무를 먹으면 머리가 하얘진다”는 것도 잘못 유포된 속설이라고 덧붙인다. “문헌을 보면 숙지황이라는 약을 쓸 때는 상반되는 약인 나복자를 쓰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나복자라는 것이 무씨거든요. 그래서 숙지황을 먹을 때는 무도 먹지 말라고 복약지도를 하는 겁니다. 숙지황의 효능이 콩팥 기능을 강화하고 항노화와 함께 머리카락을 검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 약효가 떨어지니 나복자를 같이 먹지 말라는 것인데, 그것을 반대로 해석해 머리가 하얘진다고 한 겁니다. 한의사 입장에서 약의 효과가 떨어질 수는 있지만, 흰머리가 생기지 않는다 정도로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상극음식, 음식의 정치학
앞서 정재훈 약사는 이 상극음식이 한·중·일 동북아 3국에서만 발견되는 속설이라고 언급했다. 찾아보니 특히 중국에는 관련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관련한 단행본도 여럿 나와 있고, 대중 보급용인 상극음식표(사진)도 그럴듯하게 돈다. 바이두 등 중국포털의 질문답변 코너에 언급되어 있는 중국 쪽 상황을 보면 중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 정도 상극음식 신드롬이 일어나 정부 기관에서 공식검증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걸로 중국 측 자료에는 적혀 있다.
정재훈 약사는 “상극음식에 대한 가짜뉴스는 주기적으로 유행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일종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조회수 마케팅입니다. 상극이야기가 잘 팔리거든요. 음식에 대한 가짜뉴스는 계절에 맞춰서 계속 나옵니다. 조금 있으면 장어가 보양식이라면서 사실처럼 장어와 상극인 식품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봄나물 철이 되면 시금치 채소이야기가 언급되겠죠. 또 봄철 게가 잡힐 때쯤엔 또 상극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 엉터리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불이익을 안 받는다는 겁니다. 지적하는 사람도 없고….”
과학저술가 마틴 가드너는 ‘먹거리가 건강과 병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해 불신 내지는 효능을 과신하는 것’을 두고 ‘푸드 패디즘(food faddism)’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훗날,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이 상극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선풍기 괴담’처럼 동북아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던 기묘한 푸드 패디즘의 대표 사례로 예시될 것으로 보인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