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20여 일은 경기 고양의 화장장 서울시립승화원에 간다. 생전 처음 보는 이의 장례를 위해서다. 두 명의 장례를 함께 치를 때가 많다. 매번 같은 형식이다. 하지만 문서로 남은, 장례에 참석한 지인들이 전하는 고인의 삶은 조각으로 흩어져 있다. 슬픔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47)는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돕는 일을 한다. 시신이 별다른 추모의식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무연고·저소득층 장례를 상담·지원한다.
![[주목! 이 사람]무연고·저소득층 장례 지원하는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 “공영장례가 사회안전망 역할”](https://img.khan.co.kr/newsmaker/1359/1359_43.jpg)
국제인권단체에 몸담고 있던 2011년 ‘위안부’ 피해자 장례 지원을 계기로 ‘나눔과나눔’이 출발했다. 무연고자·기초생활수급자로 대상을 넓혔다. 박 이사는 2013년 상근자로 합류했다. 지난해 서울시 공영장례조례 제정을 이끌었다. 이런 제도가 없는 지자체에선 무연고 사망자를 대상으로 ‘직장’(장례식 없이 화장)을 한다. 지난해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는 2500여 명. 대다수는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박 이사는 공영장례에 대해 “죽은 이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남은 이들은 애도를 통해 일상을 회복하고 복귀합니다. 하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시신을 위임하면 제대로 애도하는 과정이 생략돼버려요. 내 가족 장례도 못 치렀다는 자책감이 드는 반면에 ‘그 사람 나한테 잘못했잖아’라는 양가감정이 들기도 하죠. 당장은 사회문제가 되진 않더라도 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로 드러날 거라고 생각해요.”
공영장례의 존재는 죽음을 둘러싼 불안을 낮추기도 한다. 이웃의 쓸쓸한 죽음에 익숙한 쪽방 주민들을 보고 알았다. “활동 초창기에 아는 분의 쪽방에 갔다가 벽에 ‘무연고 담당자’라며 제 연락처를 써놓은 걸 봤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죽어도 사람들이 장례를 잘해주겠구나’ 하고 안도하셨을 것 같아요. 공영장례가 ‘예비 무연고 사망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에게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요.”
최근 스물아홉 살 청년의 장례를 치러줬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각각 열여덟, 스물한 살에 가정을 이뤘다. 어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청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아버지가 시신을 위임했다. 청년의 주민등록은 말소된 상태였다.
현행법상 법적인 부부나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은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나 가까운 친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동거인·친구 등 ‘삶의 동반자’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가족의 개념이 혈연 중심에서 동행의 관계로 전환돼야 하며 법 개정까지 같이 가야 한다. 생전에 자신의 장례방식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사후자기결정권’도 하나의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먼저 가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지원해 무연고 사망자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 아무런 인연이 없다면 시민이 함께 장례를 치러주면 된다. “사회가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보장하고 애도할 권리를 보장한다면 ‘나눔과나눔’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