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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최초’ 시도, 뇌병변장애인 희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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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처음으로 중증중복장애인을 위한 5개년 계획 총 604억원 투입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다가 나중에 시행하면서 붙게 되는 ‘최초’라는 수식어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위한 5개년 마스터플랜을 내놓은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제공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위한 5개년 마스터플랜을 내놓은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국 최초, 대한민국 최초로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위한 5개년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2019년부터 박 시장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2023년까지다. 예상되는 비용은 총 604억원이다. 박 시장은 이 예산을 순차적으로 들여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마련하기로 했다.

비장애인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복지정책은 지금껏 계속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에 ‘최초’라는 단어가 붙게 된 것일까.

“지금껏 장애인에 대한 각종 복지정책이 있었지만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비어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다.

서울시 전체 장애인 중 10.8%

중증중복뇌병변장애란 쉽게 말해 여러 장애가 복합적으로 중복된 장애를 가진 것을 말한다. 장애가 하나만 있어도 힘들다. 그런데 중증중복장애인들은 여러 장애를 한꺼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뇌병변장애인은 뇌성마비나 외상성 뇌손상, 뇌졸중 등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일상생활 및 동작에 심한 제약을 받는 중추신경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언어나 지적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를 비롯해 손발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든 장애가 수반된다. 한마디로 장애인 중에서도 삶을 온전히 누리기가 가장 어려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만을 위한 정책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들거나 시행된 적이 없다.

“장애아 부모들끼리 이런 이야기도 해요. 중복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가장 생활하기 편한 장애인시설을 만들어놓으면, 다른 장애아이들은 얼마나 더 편하게 시설을 이용하겠냐고요. 우리 아이들을 기준으로 장애인시설을 만들면 모든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죠. 우리 아이들이 가장 최악의 장애를 갖고 있으니까요.”(뇌병변 1급 장애인 ㄱ씨의 엄마 ㄴ씨)

그러나 중증중복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은 매번 장애인 정책 수립이나 법률 제정 과정에서 소외돼 왔다.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의 수가 여타 장애인의 수보다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돈을 들여 정책을 만들어도 수혜자가 적으니 소위 말하는 ‘돈 들인 티’가 날 리가 없다. 법은 넓은 범위를 포섭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제외해왔다.

<주간경향>이 단독으로 입수한 ‘서울시 뇌병변장애인 중장기 지원계획 수립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서울시 전체 장애인 수는 39만1753명으로, 이 가운데 뇌병변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10.8%인 4만2287명에 불과하다. 고령에 따른 뇌병변장애인(65세 이상)을 모두 포함한 숫자다.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뇌병변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장애인의 숫자는 고령으로 인한 뇌병변장애인을 제외하면 더 적어진다. 2017년 말 기준 0세부터 19세 사이 서울시 거주 뇌병변장애인은 2041명, 20세부터 49세까지 뇌병변장애인은 5526명이 전부다. 이 보고서는 서울시복지재단이 서울시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11월 최종 보고한 273쪽 분량의 연구자료다.

보고서는 이들이 소외된 이유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정부는 각종 법적·제도적 정비와 장애인 복지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장애인의 생활안정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왔으나, 뇌병변장애인은 장애인 정책에서 이중적 소외를 받아왔다. 뇌병변장애의 세부 장애 유형에 해당하는 뇌성마비장애인의 경우 지적장애를 동반하거나, 통상적인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014년 5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발달장애 범주를 지적·자폐성 장애로 한정하면서 관련 제도 및 서비스의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604억원이라는 예산(5년간 순차적으로 배정)을 들여 뇌병변장애인 지원 마스터플랜을 지난 9월 발표했다. 그동안 장애인 정책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로 밀려 있던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가장 먼저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들만을 위한 돌봄센터(종합복지관)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그나마 학교에 다닐 때는 낮시간에 갈 곳이 있었지만 졸업과 동시에 갈 곳이 사라지는 것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 10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최중증·중복장애인 인권침해 및 장애차별 집단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부모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 10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최중증·중복장애인 인권침해 및 장애차별 집단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부모연대

뇌병변장애인 전용 복지관 8곳 설립

성인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장애인복지관은 서울시 내에서 단 두 곳밖에 없다. 2018년 1월 말 기준 서울시에는 48개의 장애인복지관이 있지만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은 노원구의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과 강서구의 강서뇌성마비복지관이 전부다. 모든 종류의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종합장애인복지관이 서울시 내 30곳이 있지만 뇌병변장애인들은 사실상 이곳을 이용할 수 없다. 가래흡인(석션) 등의 의료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섭식지원 인력도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복지관은 이에 대처할 인력이 없다. 또 대형 휠체어가 회전하고,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하고, 간간이 누워 있을 침대가 있어야 하는 등 여타 장애인에 비해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 수용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장애인복지관은 처음부터 중증뇌병변장애인의 입소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소 격한 행동을 하는 장애인들과 한곳에 머물 경우 예기치 못한 사고 등이 발생할 수 있어 뇌병변장애인들 스스로 종합복지관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서울시 전체 뇌병변장애인 4만2287명 가운데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9641명(22.8%)에 불과하다. 나머지 3만2646명(78.2%)은 복지관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낮시간 동안 돌봄을 하는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역시 서울 시내에 121개 소가 있지만 뇌병변장애인을 위한 주간보호시설은 단 6곳뿐이고 이용자는 74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뇌병변장애인의 주간보호시설 이용률은 4.8%에 그친다. 결국 장애인복지시설 및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는 소수의 뇌병변장애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 안에 머무는 가족들을 위해 2023년까지 서울 시내 8곳에 114억원(예상)을 들여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을 위한 종합복지관 ‘비전센터(가칭)’를 건립할 계획이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갈 곳 없는 성인 중증중복장애인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영역을 일부나마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강병호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아직까지 명확한 복지관 형태나 위치, 중증뇌병변장애인 1인당 간호사 수 등 세부적인 계획은 뇌병변장애인 가족을 비롯한 전문가들과 계속 논의하고 있다”면서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은 화장실의 크기나 휠체어가 공간 안에서 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등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많아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설계해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재 각종 TF회의를 중증뇌병변장애인 부모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 또는 가족들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세부적인 내용을 가족들에게 직접 물어 정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나온 정책이 ‘기저귀 구입비 지원 대상 연령 확대’다. 그동안 만 5세부터 만 34세까지만 지원해왔던 대·소변흡수용품(기저귀) 구입비 지원을 2023년까지 64세로 순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중증뇌병변장애인들은 평생 기저귀를 차고 용변을 해결한다. 구입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중증중복장애인 가정은 통상 한 달에 적게는 5만~10만원, 많게는 20만원 이상을 기저귀 구입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또 성장기에 있는 중증뇌병변장애 아동과 청소년들의 보조기기 교체비용도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중증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더라도 모든 아동·청소년들은 키와 몸무게가 여타 비장애인들처럼 늘어난다. 그런데 이들의 신체를 지지하는 보조기기는 아동·청소년의 성장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많은 중증뇌병변장애 가족들이 적절한 시기에 보조기기를 교체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각 가정당 보조기기 연평균 지출비용은 1314만원으로, 장애인 보조기구를 제때 교체하지 못하는 가정의 74.7%가 ‘교체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보조기구를 맞춰주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 보조기기는 임대사업을 통해 많은 장애인이 임대로 이용하고 있지만 수요가 높은 특정 보조기기는 대기기간만 평균 2개월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18세 이하 뇌병변장애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보조기기 구입비 지원을 늘려, 더 많은 뇌병변장애 아동·청소년이 보조기구를 쉽게 임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2023년까지 만 18세 미만 장애인 300명을 대상으로 휠체어, 자세보조용구 등 맞춤형 보조기기 제작 및 수리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전국으로 확대 가능할 것인가

물론 이 모든 계획을 모두 해나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의 의지만으로 불가능한 영역도 존재한다. 재화는 한정돼 있고, 그 재화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시민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한 해 예산은 약 35조원이다. 중증뇌병변장애인 지원계획에 5년간 소요되는 예산 총액은 604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977만6000여 서울시민의 0.4%밖에 되지 않는 중증뇌병변장애인만을 위해 이 같은 예산을 지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각종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시행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일부 보건복지위 소속 상임위원과 서울시 의원 중 일부가 뇌병변장애인들을 위한 서울시 정책예산에 대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의 민원처리를 위해 또다시 중증뇌병변장애인 정책을 ‘나중으로’ 돌리려 한다는 이야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러나 “기존에 계획한 목표는 그대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시의회 의원 및 보건복지위 상임위원 모두 장애인 영역에 대한 예산배정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고, 서울시 역시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기 때문에 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7일 서울시 홈페이지 게시판에 한 중증뇌병변장애인 부모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현재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뇌병변장애아의 부모라고 밝힌 그는 A4용지 3장 분량의 편지에서 “(서울시의 중증뇌병변장애인 계획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딸이 혼자서 밥을 못 먹는다 해서 외면받지 않고, 혼자서 못 걷는다 해서 홀로 방에 갇혀 있지 않고, 건강하지 못하다 해서 거부당하지 않는, 당당한 존재로 함께할 수 있는 서울시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적었다.

다음은 전국으로의 확대다. 아직까지 서울시와 같은 형태의 중증뇌병변장애인 지원책을 내놓는 시·도는 없다. 서울시의 지원책도 2023년까지 모두 추진된다고 해도 일부 지역 중증뇌병변장애인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이다(서울 시내 8개 구에만 비전센터 설치). 때문에 2023년 이후도 중요하다. 아무리 소수라도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나중에…’라며 밀리면 곤란하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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