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악성댓글)’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가수 설리가 세상을 떠나면서다. 그를 괴롭히던 악성댓글은 자취를 감췄다. 이미 위헌판결이 난 ‘인터넷 실명제’ 논의가 되풀이된다. 정치권은 댓글 작성자 아이디와 IP를 공개하는 ‘설리법’ 발의를 준비한다. 이 해묵은 문제를 개선하자고 12년 전부터 목소리 낸 사람이 있다. 1980년대 <민병철 생활영어>로 영어회화 붐을 일으킨 민병철 선플재단 이사장이다. 그가 재단 홈페이지에 만든 설리 추모게시판에는 “악플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길 바란다”는 댓글이 수백 건 올라와 있다.
![[주목! 이 사람]민병철 선플재단 이사장 “악플, 이번엔 뿌리 뽑읍시다”](https://img.khan.co.kr/newsmaker/1350/1350_42.jpg)
“평상시에는 악플 없애자고 열심히 외쳐도 반응이 없다가 이제 다시 주목받는 건 너무 슬픈 일이죠. 악플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모두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자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졌습니다. 또 잊어버리고 후회하게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바꿔봐야지요.”
2007년 가수 유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악플이 주원인으로 거론됐다. 당시 대학에서 영어를 강의하던 민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다. 악플에 고통받는 유명인 10명에게 ‘선플(착한 댓글)’을 다는 것이었다. 온라인 수강생까지 포함해 570명이 일주일 만에 선플 5700개를 달았다. 선플 달기 운동의 시작이었다.
무조건 칭찬하는 댓글을 달자는 것이 아니다. 근거 없는 비난과 허위사실, 욕설을 내뱉지 않고 악플로 상처받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댓글을 쓰는 것까지 선플이라고 말한다. 재단은 악플과 혐오표현 추방 교육·캠페인을 진행해왔다. 학교와 단체 7000여곳에서 봉사자 70만명이 인터넷 상에 올린 선플이 767만개에 이른다. 해외에 선플운동을 알리는가 하면 매년 국회 회의록을 분석해 바른 말을 쓴 의원들에게 ‘선플상’도 주고 있다. 하지만 12년의 노력에도 악플은 여전하다. 그가 제시하는 한 가지 해법은 ‘선플 인성교육 의무화’다.
“악플을 달아본 초등학생 가운데 절반가량이 장난삼아서 했다는 조사결과가 있어요. 누군가는 영어, 수학 공부하기도 벅찬데 무슨 인성교육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1년에 한 시간만이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쓰레기를 주워본 아이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듯 좋은 댓글을 써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실명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실효성이 떨어지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대신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현재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형량은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닙니다. 문제는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친다는 겁니다. 재범이거나 수법이 집요할 경우 양형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 기업들도 노력해야 합니다. 악플을 쓰면 ‘당신이 쓰는 댓글이 상대방의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세요’라고 경고문이 나오게 하면 어떨까요.”
악플러들에게도 전할 말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할 때 자신의 손을 보세요. 상대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하나지만, 세 개의 손가락은 항상 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악플은 범죄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는 늪입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