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 농성장 잠입 취재기… 창문 다 막아 햇빛 못봐
지난 9월 30일 밤 10시, 경북 김천의 한국도로공사 본사 로비가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야? 누가 다쳤어?” “다쳤대. 다쳤대.”
자리에 누워 있던 40~50대 여성들이 ‘응차’ ‘아이고’ 등의 소리를 내며 일어나 로비 출입문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자리’라고 해도 차가운 건물 바닥에 얇은 스티로폼 깔개와 돗자리를 포개놓은 게 전부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해고자 200여명은 지난 9월 9일부터 공사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8월 29일 이들을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공사가 해고자 1500명 중 승소한 노동자 등 499명만 직접고용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서다. 노동자들은 원래의 수납업무 해고자 1500명 모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외부인 접근 금지 언론 취재 막아
출입문에서는 경찰과 노동자들이 서로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게 재미있어요? 매일 이렇게 하면 재미있어?” 민주노총 일반연맹의 남정수 교선실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농성장에서 몇 안 되는 남성이다. 한 여성 노동자가 “경찰이 무시할 때가 많아요. 아줌마들이라고”라고 말했다. 합의된 것보다 많은 병력이 입구에 배치된 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경찰 몇 명이 추가로 배치되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일까 싶지만, 경찰과 같이 생활하는 이들에게는 큰 문제다. 농성장을 나갈 수는 있어도 들어갈 수는 없는 ‘반 감금’ 상태에서 그나마의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날 경찰병력은 출입구를 중심으로 건물 앞쪽 전체에 일렬로 배치돼 있었다. 지난 20여일을 싸워서 그나마 수가 줄어든 것이라 했다.
기자는 이날 오후 농성장에 잠입했다. 경찰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탔다. 공사는 “기자뿐 아니라 외부인 자체의 진입을 관리하고 있다”며 언론사 취재를 막고 있었다. 점거농성이 20일을 훌쩍 넘었지만 농성장 내부 사정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다. 농성장에 들어가니 로비 곳곳에 배치돼 있는 경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자가 배정받은 자리에서 2m 정도 떨어진 곳에는 6명의 경찰이 일렬로 앉아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쫓겨나는 게 아닐까. 설마 연행되는 건 아니겠지.’ 계속 땀이 났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경찰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기자에게 김소현씨(56)가 “처음에는 우리도 엄청 무서웠어요”라며 “갑자기 다 끌어낼까봐. 너무 걱정하지 마요”라고 말했다.
농성장의 하루는 오전 8시 조회, 오전 10시 아침식사, 오후 2시 집회, 오후 5시 저녁식사, 오후 6시 문화제, 그리고 종례로 구성된다. 그 외 시간은 자유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몸이 좋지 않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운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사실 건물 안에서 빠르게 걷는 게 전부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밥, 반찬, 국이 외부에서 들어왔다. 노조에서 외부에 주문해 반입하는 것이다. 김지숙씨(45)는 “밥이 오면 빨리 가서 가져와야 돼요. 나중에 가면 반찬이 없어”라며 기자를 재촉했다. 입맛이 없다고 하자 그는 “지금 안 먹으면 내일 아침 10시까지 밥 못먹어요. 여기 입맛 있어서 먹는 사람 없어요. 그냥 먹어야 되니까 먹는 거지”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은 김치, 도라지무침, 어묵볶음에 된장국이 나왔다.
저녁식사가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농성장에 음식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여유를 찾고 주변을 둘러보니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 창이 있던 곳이나 트인 곳은 방화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경찰은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사방이 다 가려져 있고 환기장치도 안 돌아가서 공기가 탁해요”라며 “누구 하나 감기에 걸리면 금세 퍼져버려”라고 말했다. 벌써 한 차례 감기가 돌았단다.
화장실 세면대에 물 받아 씻어
창이 막혀 있으니 햇빛 역시 볼 수 없다. 구경숙씨(50)는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할 때는 그래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햇빛도 못보니까 갇혀 있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숨이 막힌다고 해야 하나? 그게 제일 싫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박모씨(50) 역시 “아니 감옥도 낮에 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데, 창을 다 가려버리는 거는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여기에 있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라요”라고 말을 보탰다.
하루의 마지막 일정인 종례까지 끝나자 사람들이 샴푸와 수건 등을 들고 움직였다. 어디서 샤워를 하느냐고 묻자 ‘화장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농성장이 있는 2층은 화장실로만 이용되고 3층과 4층은 화장실 겸 샤워실이다. 바가지로 세면대 물을 받아서 씻거나 세면대 아래 수도꼭지에 호수를 연결해서 씻는다. 게다가 도로공사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
기자도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입구에서 들으니 누군가 샤워를 하고 있는지 안쪽 화장실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화장실을 나왔다. 밤 10시가 넘으면 샤워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밤 11시가 가까워졌을 때 4층 화장실을 찾아 찬물로 바가지 샤워를 했다.
겨우 하루 일정이 끝났나 했더니 잠 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경찰들은 등은 돌렸지만 여전히 코 앞에 있었고 밤새도록 농성장에 불이 꺼지지 않았다. 기자 옆에 자리한 이선주씨(52)는 얇은 담요로 얼굴을 덮었다. 이씨 외에도 박스나 우산 등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많았다. 빛을 가리고 얼굴만이라도 경찰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에 노동자들은 모두 비슷한 대답을 했다. 이전처럼은 살 수 없다. 이들은 톨게이트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을 일했지만 해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렸고 딱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인천영업소 톨게이트에서 16년을 근무한 김수진씨(49)는 “출근조회 때마다 하는 말이 ‘감원 지시가 내려왔다’ ‘너희 아니어도 일할 사람 널렸다’였어요. 되게 모욕적이죠. 아 정말 징글징글해요”라고 말했다.
사측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 해마다 감원 지시가 내려왔고 지원자는 많았다. 감원 대상은 영업소 사장 마음대로였다.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인천영업소에서는 수납 노동자들끼리 “도저히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월급을 쪼개서 일자리를 나누자”고 약속했다. 최저임금 월급에서 10만원, 20만원이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하루 일정 끝나고 잠들기 쉽지 않아
“사장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죠. 10명이 일하는 것보다 11명이 일하는 게 성과가 좋으니까요. 돈 한푼 안 들이고 좋은 성과를 내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가끔 정년이 안 됐는데도 그만둔다는 사람이 생기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사실 언니들도 일하고 싶은데 다른 동료들도 너무 힘든 걸 아니까 그만두는 거거든요.”
몇 달 전만 해도 이들은 자신이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10m 높이의 캐노피(옥상구조물)에 올라가고, 본사 건물을 점거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면 ‘뭘 저렇게까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이들의 농성을 두고도 온라인에는 ‘적당히 해라’ ‘민주노총은 사회악이다’ 등의 댓글이 달린다. 김씨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죠. 노조가 필요 없는 사람들이니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한 번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구경숙씨는 “지금까지는 먹고사는 데에만 급급했는데 나이 오십 먹고 직접고용 판결받은 게 통괘하기도 하고, 또 내가 비정규직 문제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거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우리가 정규직이 돼도 얼마나 일하겠어요. 쉽게 자를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라 우리 뒤에 들어올 사람들도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죠”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으로 바뀐 수납업무 원래대로 정규직화해야”
“도로공사 공채가 얼마나 어려운데 거저 먹으려 하네.” “5년 안에 없어질 직종인데, 그때 가서는 뭘 하려고 정규직 타령이냐?”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들은 지난 9월 9일부터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순향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부지부장(44)은 이에 대해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다”며 농성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9월 30일 박 부지부장을 만났다.
-온라인에서 댓글을 보면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 뺏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우리가 도로공사 정규직 공채 일자리를 달라는 게 아니다. 원래 정규직이었다가 비정규직으로 바뀐 수납업무를 원래대로 정규직화하라는 거다. 1·2심, 대법원 모두 공사가 우리를 직접고용하라고 했다. 직접고용을 했으면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
-공사가 제시한 환경정비 업무에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
“환경정비 업무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각 톨게이트 영업소는 지원금 등을 이유로 수납업무에 장애인을 많이 고용했다. 수납업무는 대부분 앉아서 하는 거니까.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계단을 내려갈 수 없는 정도의 장애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청소, 시설경비, 조경 업무를 하라는 게 말이 되나? 수납업무로 직접고용을 못하겠다면 어떤 업무를 할지 논의를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었다.”
-공사는 현재 수납업무는 자회사로 이전되어서 수납과 관련된 직접고용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에게 환경정비 업무를 맡겨서도 안 된다. 환경정비 업무를 하는 자회사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환경정비 업무는 직접고용과 자회사로 나눠서 해도 되고, 수납업무는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근거를 알고 싶다. 그리고 수납업무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 수납이 돈만 받는 게 아니라 영상인식, 과적단속, 민원상담 등을 다 포함한다.”
-공사는 지난해 9월 5일에 노사가 합의했다고 하는데….
“당시 정부에서 파견한 전문위원이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사는 자회사를 가는 조건으로 임금 30% 인상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국민부담 최소화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을 앞둔 사람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것, 또 하나가 장애인에게 어떤 일을 줄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노총 대표인 저와 정부에서 파견된 전문가 위원은 서명을 하지 않았다. 이걸 합의라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가 생각하는 건 임금이 아니다. 고용안정이다. 10년, 20년 일하면서도 해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그래서 소송을 했고 이겼다. 그런데 이제 자회사에 가라고 한다. 이강래 사장과 정치권 일부에서는 자회사를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이건 대안이 아니다. 기타 공공기관은 매해 새롭게 지정된다. 올해 지정된다고 해도 몇 년 뒤에는 지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때는 그냥 주식회사가 되는 거다. 수납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다. 기타 공공기관 지정 추진이라는 말은 꼼수에 불과하다. 직접고용 외에는 답이 없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