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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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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여성 얼굴로 제작” 광고 논란… 리얼돌 자체에 대한 문제도 도마에

리얼돌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8월 5일, 서울의 한 ‘리얼돌 숍’을 찾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성의 신체를 본뜬 리얼돌과 교체할 수 있는 인형의 머리, 가발, 옷, 안경 등이 보였다. 만져봐도 되느냐는 질문에 주인 이모씨(35)는 “얼마든지 만지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리얼돌을 소재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공기인형’의 한 장면.

리얼돌을 소재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공기인형’의 한 장면.

리얼돌은 인간의 신체를 본뜬 특수고무 인형이다. 남성보다 여성의 신체를 본뜬 인형이 훨씬 많아 여성의 성상품화 논란이 일고 있다. 리얼돌은 실리콘과 TPE(우레탄고무)로 주로 만들어지는데 이날 가게에 있는 리얼돌은 모두 TPE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실리콘이 TPE보다 더 정교하지만 그만큼 더 비싸다.

만져봤더니 지나치게 부드러워 사람의 피부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손끝에는 매니큐어가 발린 인조손톱이 붙어 있었다. 다른 부위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온라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홍보용 사진과 달리 피부색 역시 혈색이 없어 흰색에 가까웠다. 무섭다는 기자의 말에 이씨는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며 “대신 화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게시판 반대 청원에 26만명

지난 6월 대법원은 한 성인용품업체가 제기한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현행 관세법 제234조와 제237조는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대해 수출·수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세관의 처분이 ‘개인의 성적 결정권 행사에 간섭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된 건 대법원 판결 직후 일부 업체에서 주문자가 원하는 여성의 얼굴로 리얼돌 제작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으면서부터다. 7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이 리얼돌로 만들어지면 그 정신적 충격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은 26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실제로 가능할까. 리얼돌 판매자들은 현 단계에서 ‘커스터마이징(주문제작)’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특정인의 얼굴과 똑같이 만들려면 일단 석고틀부터 만들어야 한다. 틀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실리콘이나 TPE를 부어서 인형을 만든다”며 “똑같이 만들기 위해서는 모델이 있어야 하고, 업체도 모델과 합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도 특정인의 얼굴과 비슷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있었다. 이씨는 “특정인의 얼굴로 해달라는 주문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도한 적은 없다. 우리가 가진 얼굴은 20~30개 정도”라고 말했다. 온라인 성인용품 숍을 운영하는 김모씨(33) 역시 “얼굴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라 똑같이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예 리얼돌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여성을 거래대상으로 보고 비인격화시키고 폭력과 혐오에 둔감해지게 하는 조치가 이뤄졌을 때 성폭력이 증가할 수 있다”며 “리얼돌의 존재 자체, 혹은 합법적인 유통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동·청소년 모형 리얼돌도 논란

또 다른 논란은 아동·청소년 모형 리얼돌이다. 한 리얼돌 업체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홍보게시물에는 신장이 136㎝인 리얼돌도 있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의 평균신장이 146㎝라며 거센 비난이 일었다. 성인용품 시장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145㎝ 이하 리얼돌을 ‘캔디돌’이라고 부르며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리얼돌이 합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 국가에서도 아동·청소년 모형은 금지하고 있다. 영국 검찰청은 지난 3월 아동 리얼돌을 유통하거나 구매할 경우 최대 12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2017년 전직 초등학교 운영위원인 70대 남성이 약 100㎝ 크기의 아동 리얼돌을 소지한 사건이 계기가 돼 아동·청소년 모형은 ‘음란물’로 분류된다. 호주 역시 지난 2월 아동 리얼돌 수입·구매를 금지하는 ‘아동착취 방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아동 리얼돌과 아동 성범죄의 연관관계가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사용함으로써 아동이 성적 대상화되고 범죄 위험에 놓일 잠재적인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올해 10월부터 이를 규제하는 법이 시행된다.

리얼돌 판매자들 역시 아동·청소년 리얼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씨는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인형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논란이 된 136㎝ 인형에 대해서는 “아동을 형상화한 게 아니라 경량화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키가 작을 뿐 얼굴이나 몸은 성인 여성이다. 가슴이 작다거나 얼굴을 아이처럼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코미디언 휘트니 커밍스는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자신을 모방한 리얼돌을 가지고 나왔다. / 넷플릭스 화면 캡처

미국의 코미디언 휘트니 커밍스는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자신을 모방한 리얼돌을 가지고 나왔다. / 넷플릭스 화면 캡처

서승희 부대표는 이에 대해 “소아 리얼돌은 인권침해이고 성인 여성을 재현한 리얼돌은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지점에 대해 왜 그런 구분이 생기는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며 “과도하게 성적 이미지가 투영되고 폭력과 혐오를 용인하는 방식의 모든 리얼돌의 유통이나 수입 금지가 인권을 위해 합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리얼돌을 찾는 사람은 존재한다. 해외 제품이 세관에서 통과되지 않았을 뿐이지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은 유통·판매돼왔다. 리얼돌을 구매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씨는 “50대에서 70대 남성이 주고객층”이라며 “50대 부부가 같이 매장을 방문하거나 50대 아들이 70대 아버지와 함께 매장을 방문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숍을 운영하는 김씨도 “인터넷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하는 20~30대 남성들이 리얼돌을 긍정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장애인 남성의 가족과 혼자 사는 중·장년층 남성의 문의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비용이 비싼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교한 리얼돌은 300만원이 넘고 해외에는 1000만원에 가까운 리얼돌도 있다.

이씨는 “어떤 사람에게는 여성과 관계 맺는 게 어렵지 않지만 매장을 운영하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부 손님이 리얼돌의 손을 잡고 난 다음 얼굴이 붉어지거나, 사람들 몰래 리얼돌에게 입을 맞추는 모습 등을 봤다. 리얼돌이 성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 관련 대책회의 열어

해외에서는 리얼돌이 성매매를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인공지능(AI) 전문가인 데이비드 레비는 저서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에서 “성매매 그 자체는 나쁜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섹스로봇은 이런 견해를 극복하면서 성병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성적 욕구와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밝힌다.

성 전문가인 미국 컬럼비아대 마리나 아드셰이드 교수는 저서 <로봇 성: 사회윤리적 의미>에서 “가정의 전자화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이 일하는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결혼생활의 질을 향상시켰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부부 사이의 성관계에 대한 압박이 로봇 덕분에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휘트니 커밍스 역시 마리나 교수와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쇼에 자신을 모방한 리얼돌을 가지고 나왔다. 직접 리얼돌 공장에 가서 틀을 떠서 만든 제품이다. 그는 리얼돌에 대해 “더 이상 남편과의 성관계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며 “그리고 섹스로봇 설계에 여성이 참여하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영국 드몽포르대의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로봇윤리 및 문화학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성매매는 평범한 활동이 아니며 사람을 사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며 “섹스로봇(리얼돌) 역시 사람을 도구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리처드슨 교수는 리얼돌이 성매매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리얼돌 산업이 발달하고 있지만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많은 여성들이 사이버 공간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성매매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며 “섹스로봇의 상용화는 성매매 시장을 감소시키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리얼돌이 합법적으로 수출입되는 나라들에서도 관련 논쟁이 끊이지 않는 점을 볼 때, 한국에서도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여성가족부는 지난 8월 6일 대책회의를 열어 ▲청소년이 리얼돌을 구매하는 등 접근성 문제 ▲특정인의 얼굴로 리얼돌 얼굴을 제작해 초상권을 침해하는 등 인권침해 문제 ▲아동·청소년 모형의 리얼돌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범죄 가능성은 사전에 차단하는 게 좋지만 이미 리얼돌이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예 금지하는 건 현실에 맞지 않다”며 “초상권이나 아동 관련해서는 관련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반대 의견에도 공감한다”며 “하지만 실제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제대로 공론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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