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난의 무게에 짓눌린 처절한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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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곳곳 빈곤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사람들

저는 한때 좋은 중·고등학교를 나와 좋은 대학을 다닌 소위 학벌이 좋은 사람은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일 테니까요. 그러나 한 소년가장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소년은 “하루 종일 공부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현실은 먹고살기 위해 어린아이에게도 노동을 강요합니다. 공부가 욕심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의 명문대에 갈 수 있었지만 집이 가난해서, 챙겨야 할 부모와 동생들이 있어서 집 근처 지방 국립대에 입학해야 했던 사람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물론 명문대에 간 사람이 집에서 뒷받침을 잘해줘서 운 좋게 들어갔다고 폄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능성까지 미리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만 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이번 기회에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차비가 없어 집에 못가는 여중생

가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저는 사고 싶은 브랜드의 옷을 사지 못하는 제가,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살지 못하는 제가 가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이것도 가난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제가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마주친 가난은 이런 투정 섞인 불평으로 끝나지 않더군요. 처절한 비명과 외침 그 자체였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도로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새벽 2시였습니다. 출동해보니 정말 교복을 입은 중학생 여자아이가 육교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있더군요. “무슨 일이 있냐, 가출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정말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버스비가 없어서 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오늘은 노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앉아 있었다”는 대답을요. 순찰차에 아이를 태우고 아이가 알려주는 곳으로 갔습니다. 자동차로는 들어갈 수도 없는 산, 가로등 하나 없는 그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겨우 보이는 낡디 낡은 집 한 채. 아이와 함께 산길을 걸어가면서 맡았던 새벽의 그 가난했던 공기를 저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돌아가셨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습니다. 집안에서 코피를 흘린 채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할아버지 옆에서 멍한 표정으로 바닥만 응시하던 할머니는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황망한 얼굴로 햇빛을 받지 못한 화분마냥 축 늘어진 어미의 어깨를 흔들던 자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난은 중증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지 못하게 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너네 아부지 이상하다. 이틀 내내 잠만 잔다. 많이 피곤한가 보다”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 고약한 장면은 도대체 누가 기획한 풍경일까요. 나는 고개를 젓고 말았습니다. 가난의 지독함에 몸서리치면서 말입니다.

한 번은 파출소 입구에서 서성거리던 왜소한 학생을 봤습니다. 들어올까 말까, 밖에서 수없이 망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학생은 우리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종이에는 ‘더 이상 내 몸에 손을 대지 말게 해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십수 년간 성적 학대를 받아온 아이는 이 공손한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과 고민으로 지새웠을까요. 잠시 후 연락을 받고 온 의붓아빠는 학생이 쓴 종이를 보자마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피식 웃었습니다. 이깟 종이 하나로 자신이 처벌받거나 이 현실이 바뀌는 상황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자의 비열한 웃음이었죠. 학생이 집을 떠나지 못한 이유도 딱 하나, 가난이었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돈도, 직장도 없는 미성년자가 갈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요. 경찰관의 입회하에 의붓아빠가 종이에 적힌 요구사항을 읽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인을 하자, 기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제 발로 그 지옥에 돌아가게 만든 것도 결국 가난이었습니다.

폐지와 고물을 수거한 리어카를 끌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넝마주이를 꽤 많이 봅니다. 노년을 덮친 가난만큼 무서운 재난도 없습니다. 차와 부딪히면서 리어카의 바퀴가 빠져버려 도로 한가운데 널브러진 리어카를 어찌할 바 몰라, 사방에서 빵빵거리는 자동차들 앞에서 리어카만 감싸고 앉아 있던 노인의 얼굴엔 짙은 가난의 역사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리어카가 아무리 무겁기로서니 가난한 생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까요. 함께 리어카를 옮겨주면서 나는 이미 때가 들어 비누로 문질러도 씻기지 않을 노인의 손을 봅니다. 그건 기름때가 아니라 가난의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어카를 끄는 폐지 줍는 노인들

서울은 참 멋진 도시입니다. 낮에는 수많은 도로 위를 사람과 각종 탈것들이 숨 쉴 틈 없이 지나다니고, 밤에는 하늘의 별 대신 빌딩의 불들이 세상을 밝혀줍니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일수록 빌딩의 불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터를 잡습니다. 하지만 그런 서울에도 하루 1만원짜리 방이 많답니다. 그 방에 누우면 마치 관에 들어간 것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그런 크기의 방 말입니다. 그 방은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데, 가끔 주인의 눈을 피해 두 명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1만원이라는 돈도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다 주인에게 발각되면 여지없이 길거리로 쫓겨나고 맙니다. 한 달이면 30만원, 방 크기에 비해 너무도 비싼 방세를 자랑하는 그곳은 당장 몇백만 원의 보증금을 모을 여력이 되지 않는 노숙자,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고객입니다. 서울의 비싼 아파트보다 고시원의 평당 가격이 더 비싸다고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같네요.

가난은 마치 다단계와도 같아서 한 번 걸려들면 더 큰 것을 계속 잃어가게 만듭니다. 치과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이를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도록 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하다 새벽녘에 스러지게 하죠. 하루 1만원짜리 방이 비싸다는 걸 그분들이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가난한 그들에게도 당장의 비바람, 각종 범죄, 벌레들로부터 막아줄 벽이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걸요. 가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앞이나 옆을 볼 시각을 뺏어갑니다. 그 무엇도 볼 수 없고 미련한 목숨을 이어가는 것에만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에게 서울은 즐거운데 삭막하고, 멋진데 너무나도 슬픈 그런 도시입니다. 비단 서울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나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500원 차이의 두 도시락을 한참 고민하다 결국 더 싼 것을 집게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학 나온 죄로 학자금대출을 갚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발에 상처가 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창이 있는 공간을 얻기 위해 마른 수건 짜듯 바싹 마른 지갑을 더 닫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모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의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더라도 그들의 숨은 지상에 단단히 자리잡아가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원도(필명·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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