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지명 ‘파격 인사’… 선배 및 동기들 향후 행보 주목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9·연수원 23기)의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은 파격(破格)에 가깝다. 검사동일체의 원칙과 철저한 기수문화가 자리잡혀 있는 검찰 조직문화에서 고검장도 거치지 않은 검찰총장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윤 지검장은 차차기 유력 총장 정도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문재인 정권에서 언젠가는 검찰총장을 할 것이고, 굳이 이번이 아니라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윗 기수에도 쟁쟁한 총장후보가 자리잡고 있던 것도 한몫을 했다.
“문무일 총장 바로 아래인 19기부터 넓게 보자면 21기까지도 차기 검찰총장으로 갈 만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검찰 내 기획통으로 손꼽히는 봉욱 전 대검 차장(19기)이나 이낙연 국무총리와 동향인 전남 영광 출신의 김오수 차관(20기), 충북 증평·고려대 법대라는 이점이 있는 이금로 수원고검장(20기)까지 문 정권과 코드가 비슷한 인물들이 한 번 검찰총장을 하고, 대통령 임기가 1년 정도 남은 시점에 윤석열 지검장을 이 정권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지명하면 계산이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꽤 돌았다. 거기다 윤 지검장은 고검장을 거치지 않았다. 여태껏 고검장을 거치지 않은 검찰총장은 없었다. 이번 총장은 19~21기 사이에서 내고, 윤 지검장은 고검장이나 대검 차장 한 번 하고 총장으로 가면 꽤 괜찮은 시나리오겠거니 했다.”(검사장 출신 A변호사)
5기수나 뛰어넘어 줄사퇴 전망도
그러나 법조계의 예상은 빗나갔다. ‘혹시나…’는 했어도 유력 후보군 안에는 들지 못한 인사가 차기 검찰총장에 지명됐기 때문이다. 검찰 인사는 엑셀파일로 돌려도 거의 맞춘다는 말이 있다. 기수대로 줄서서 가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변수만 없다면 인사대상자 스스로 자신의 임지를 1·2순위 안에서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검찰총장 역시 1~2기수 아래에서 차기 총장이 정해져 왔기 때문에 현 검찰총장(18기)보다 5기수나 아래인 윤 지검장을 예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검찰총장이 지명되면 해당 기수와 그 윗 기수는 ‘용퇴’라는 명목으로 옷을 벗는 관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 검찰총장과 후임 검찰총장의 기수가 너무 벌어질 경우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선배·동기 기수의 집단사퇴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고려에서다.
“용퇴(勇退)라 쓰고 강퇴(强退)라고 읽는다지요.”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6월 26일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딱히 변호사일을 잘할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로펌에서 불러줄 만큼 이 정권에서 커리어도 제대로 쌓지 못했는데 동기가 갑자기 윗선이 됐다 하면 그만두기 싫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그만두는 문화가 검찰은 유독 강하게 있다. 막 호기롭게 사표 내고 마지막으로 기자들이랑 악수하면서 ‘다음에 또 봅시다’ 하고 퇴장해도, 속이 쓰린 건 쓰린 거다. ‘나는 그냥 후배 모시면서 검찰생활 더 하겠습니다’라는 문화가 검찰에는 없었다.”
가까운 예로 오는 7월 24일 임기만료로 퇴임을 앞둔 문무일 검찰총장(18기)이 2017년 7월 24일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도 윗선과 동기들의 줄사퇴는 이어졌었다. 청와대가 문무일 당시 부산고검장을 지명한 지 사흘 만에 바로 윗 기수(17기)인 박성재 서울고검장과 김희관 법무연수원장이 사의를 표명했고, 문 총장의 동기(18기)였던 오세인 광주고검장, 이명재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김해수 대검 공판송무부장, 박민표 대검 강력부장, 장인종 법무부 감찰관 등이 사퇴했다.
상명하복의 근간 ‘검사동일체의 원칙’
여기에는 유독 검찰 조직의 특성처럼 여겨지는 철저한 ‘기수문화’와 상명하복 체계의 근간이 됐던 ‘검사동일체의 원칙’(법상 해당 조항은 현재는 개정되고 없다)이 자리잡고 있다.
검찰청법 제7조(검사동일체의 원칙)
①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
②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과 지청장은 소속검사로 하여금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의 일부를 처리하게 할 수 있다.
③검찰총장과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구법. 2004년 1월 20일 시행 전)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찰의 근간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틀이다.
2004년 1월 20일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찰총장, 고등검사장, 검사장, 검사’로 구분돼 있던 검사의 직급을 ‘검찰총장과 검사’로 단순화했지만 ‘검찰총장을 머리로 우리는 한몸이다’라는 서열 중심의 계층구조는 여전히 검찰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검사-수석검사-부부장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고등검사장-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서열구조는 (이미 사라진 법률조항임에도 불구하고) 검사동일체의 원칙과 결합하면서 폐쇄적인 관료집단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검찰청법 제7조는 2003년 법 개정작업 이후 현재는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 조항으로 변경됐으며, 제7조의 2항이 신설돼 평검사의 이의제기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이다.
과거로 잠시 돌아가보자. 19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이 일어났다. 중앙정보부는 한일회담 반대시위인 6·3사태의 배후에 북한의 간첩지령을 받아 조직된 인민혁명당이 있다고 발표했다. 또 관련자 47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수사를 진행해도 기소할 만한 물증을 찾을 수 없었다. 공안부 이용훈 부장검사와 김병리·장원찬 검사는 “도저히 기소할 가치가 없다”며 기소를 거부했다. 중앙정보부가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에 압력을 가했지만 공안부 검사들은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면 검사장님이나 차장검사님이 직접 기소하시죠”라고 버텼다. 그러자 검찰 수뇌부는 그날 밤 당직을 서던 정명래 검사에게 공소장에 서명하도록 했다. 정 검사는 담당검사가 아니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검사동일체의 원칙 덕분이었다. 검찰청법 제7조 3항 ‘검찰총장과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이용훈 부장검사와 김병리·장원찬 검사는 사표를 던졌고(이후 김·장 검사는 사표를 철회했다), 정명래 검사는 다음 인사 때 중앙정보부 부국장으로 승진했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칼럼 ‘고검장과 검찰총장을 맞바꾸다’ 등 참고.)
이 같은 잘못된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그러나 군사정권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2012년 12월 임은정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검사는 북한에 동조한 혐의로 1961년 혁명재판소에서 15년형을 선고받은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무죄구형을 했다가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상부의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에서다(이후 행정소송을 통해 처분이 취소됐다). 재심사건에서 백지구형이란 속된 표현으로 ‘검사는 도저히 무죄구형을 못하겠으니 법원이 알아서 하라’는 일종의 반발성 절차다.
기수문화 파괴 핵심 키워드 ‘윤석열’
검찰은 또 2014년 7월 임은정 검사의 무죄구형을 지지하는 글을 올린 박병규 검사를 그해 말 ‘검사 적격심사’에서 탈락시켜 옷을 벗게 했다(박 검사는 이후 행정소송을 거쳐 검사직에 복귀했다). 박 검사는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사로부터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조직에 해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다.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 여기에 기수 서열은 필수적인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검찰 조직 내에서는 후배검사가 선배검사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에 따라 후배가 검찰총장 및 검사장으로 승진했을 때 선배 및 동기들이 무조건 옷을 벗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서 ‘윤석열’이라는 인물은 두 차례(서울중앙지검장 및 검찰총장) 발탁인사로 절대 깰 수 없을 것 같았던 기수문화를 깨는 핵심 키워드가 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지 열흘이 지나도록(6월 27일 기준) 사퇴의사를 표명하거나 사퇴한 검사가 단 3명(봉욱 전 대검 차장(19기)·김호철 대구고검장(20기)·송인택 울산지검장(21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관행대로라면 청와대가 윤 후보자를 지명한 뒤 수일 내로 선배와 동료기수가 사표를 제출했어야 한다. 윤 후보자의 선배 및 동료기수만 30명에 달한다. 또 사퇴했거나 사퇴의사를 표명한 3명의 고등검사장급 인사들도 기수관행에 따른 의무적 사퇴는 아니었다는 말도 나온다. 6월 27일 퇴임식을 가진 봉욱 전 대검 차장검사와 가까운 한 법조인은 “봉 차장이 기수관행 때문에 기계적으로 사표를 던진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이 이 자리(대검 차장)에서 검찰 조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는 생각에 사표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의 순기능 작용 기대
“경제문제가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무너트리는데 시베리아 살얼음판 같은 변호사 업계가 그깟 검찰 상명하복을 못깨겠나.” 지난해 퇴임한 한 전직 고위 법조인은 “검사들이 갈 로펌이 사실상 거의 없다”면서 줄사퇴가 이어지지 않는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로펌이 ‘한창 쓸 만한 전직 판·검사’ 영입을 이미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다했기 때문에 지금 시기에 무턱대고 사표를 썼다가는 소위 ‘빅펌’으로 불리는 로펌에 갈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후보자 역시 동기와 선배들에게 “남아서 함께 일해달라”고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 여전히 사퇴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인사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리지만 실제 사표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파격인사’가 검찰개혁에 순기능을 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지금이야말로 선배검사들이 검찰총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나아가 청와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껏 ‘독립 관청’이자 ‘단독 관청’으로 기능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아닐까.
사법부에도 당연히 기수문화가 있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고법 부장 승진제도가 존재하기 전까지는 인사철마다 “○○기부터 ○○기까지가 승진 대상자다. ○○○(판사 이름)가 고등 부장 첫 스타트를 끊을 것” 등의 이야기를 법원 내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또 고법 부장 승진 기수에서 밀려나거나 스스로 승진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판사들은 이 시기에 맞춰 사표를 내는 ‘관행’도 존재해 왔다.
후배 판사가 대법관에 지명될 경우 윗기수가 ‘용퇴’라는 이름으로 사표를 던지는 ‘관행’도 몇 년 전까지는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같은 문화는 점점 옅어지는 추세다. 평생법관제 혹은 원로법관제가 어느 정도 자리잡고, 여성 판사를 중심으로 한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 발탁인사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이제는 검찰만큼 ‘기수 파괴’에 따른 충격파가 강하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법원장을 했던 사람이 다시 재판업무에 복귀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또 후배가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만두는 게 당연한 문화였다. 그런데 지금은 원장을 하고 돌아온 고등 부장이 꽤 많은 편 아닌가. 예전에는 변호사를 하기 싫어도 후배가 승진(엄밀히 말해 판사 직급에는 ‘승진’이 없다)하면 떼밀리듯이 나갔지만 이젠 ‘나갈 사람은 나가는 것이고, 남을 사람은 남아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이 자리잡혔다.”(A원장급 고등법원 부장판사)
그도 그럴 것이 김명수 당시 춘천지법원장이 대법원장에 임명되는 파격인사가 단행됐을 때 언론은 ‘윗기수들의 대거 용퇴’를 예상했지만 정작 법원 내부의 동요는 적었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대법원장이 낯설 뿐이었다(김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 15기로, 역대 김병로 대법원장, 조진만 대법원장 이후 48년 만에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대법원장이 됐다. 현재 김 대법원장보다 윗기수인 대법관은 6명이다).
법원장을 거친 뒤 1심 재판업무로 복귀하는 원로법관의 수도 점차 늘고 있다. 조용구 전 사법연수원장(63·11기), 조병현 전 서울고등법원장(64·11기)·강영호 전 특허법원장(61·12기)·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62·12기), 최완주 전 서울고등법원장(61·13기)등 60세 이상의 고위직 법관들이 속속 재판업무에 복귀하고 있는 것도 기수에 연연하지 않는 사법부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박보영 전 대법관도 대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고 원로법관에 지원, 지방법원 1심 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전국 법관 평균연령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시니어판사 제도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법관 평균연령은 2003년 38.8세를 기록한 이후 2012년 39.2세, 2013년 39.4세, 2014년 39.9세로 점점 올라가다가 2015년 처음으로 40.4세로 40대로 진입했다. 2016년 41.4세, 2017년 42.6세로 계속 상승 추세다. 보고서는 “아무리 늦어도 2030년이면 법관 평균연령이 50세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판사경력 15~20년 안팎이면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던 문화가 점차 축소되고, 로스쿨 도입 및 법조 일원화 추진 등으로 20대 판사 수가 적어진 것도 평균연령을 늦추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정년을 남기고 퇴직하는 법관 수도 점차 줄고 있다. 2011년 퇴직 법관 수 83명에서 2012년 72명, 2013년 62명, 2014년 65명, 2015년 56명으로 점차 줄어들다 2016년에는 52명이 퇴직했다(제2장 ‘평생법관제 외 시니어판사의 인력활용’편 참고). 과거 공공연히 “내가 법원장까지 했는데 1심에 가서 후배들이 내 판결을 뒤집는 꼴은 볼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던 ‘꼰대 선배 법관’의 모습은 이제는 법원 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셈이다.
정년퇴임을 하는 법관들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로펌들이 과거에 비해 법원장급 판사들에게 거액의 연봉을 보장하지 않는 데다, 원로법관에 대한 처우 등 개선책이 마련될 경우 법원에 남으려는 판사 수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월 30일 정년퇴임을 한 심창섭 서울중앙지법 소액전담 판사(66·9기)는 과거 <주간경향>과의 대화에서 “변호사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조용히 기록을 보며 재판을 하는 게 더 나에게 맞다는 것을 알고 (법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심 판사는 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임관했으나 중도에 변호사 활동을 하다 법원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심 판사와 함께 상반기 정년퇴임한 법관은 총 5명이다. 성기문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66·14기)과 박태동 수원지법 부장판사(66·13기), 김인욱 인천지법원장(66·15기), 안영길 수원지법 부장판사(66·15기) 등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