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보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교육개혁’이다. 과잉에 가까운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열기와 부족했던 국가재정 때문에 우리 교육은 사립학교 위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점차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이 강조되면서 국가예산이 투입됐다. 예산을 지원받는 사립학교에 투명성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립학교 상당수는 여전히 ‘개인 재산’처럼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교육은 단순히 학교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 이어지고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경제문제와 직결돼 있다. 교육개혁을 무 자르듯 할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유아교육, 의무교육에 편입돼야”](https://img.khan.co.kr/newsmaker/1327/1327_42.jpg)
최근 문제가 됐던 유아교육 문제, 즉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사태가 상징적 사건이다. 과거 가정에서 머물던 유아교육이 국가 책임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비용의 투명성을 놓고 벌어진 충돌이라 할 수 있다. 한유총 사태는 법인을 해산하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교육개혁의 책임을 진 사람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63)이다. 지난 5월 2일 서울시교육청 집무실에서 조 교육감을 만났다.
한유총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
-한유총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한 지 열흘이 넘었다. 한유총은 법원에 취소 중지 가처분신청을 했고, 결국 행정소송까지 갈 것이다. 이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고 있나.
“우리가 한유총 설립을 취소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아이들의 교육권을 볼모로 자신들의 비리를 숨기고 집단행동한 것에 대해 분노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이후 국민의 의식이 달라졌다. 촛불혁명은 세 가지, 더 높은 투명성, 더 높은 공공성, 더 높은 관계 평등성을 요구하고 있다. 한유총 사태는 더 높은 투명성과 공공성을 요구한 것이다. 법원의 가처분 결과와 무관하게 우리는 본안소송으로 끝까지 간다. 국민들이 끝까지 같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아교육 문제는 결국 국·공립유치원 증설이 유일한 해법인가.
“그동안 사립유치원이 많은 공헌을 했고, 지금도 상당 부분을 사립에 의존하고 있다. 2018년 4월 기준 전국 9000여개 유치원 중 국·공립은 53%이지만, 서울은 전체 870개 중 74%인 650개가 사립이다. 정부 국정과제는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40%로 늘리는 것이다. 물론 국·공립 증설만 해법이라고 보지 않으나 우선 수요에 비해 부족한 국·공립유치원을 양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유아교육이 의무교육 학제에 편입되는 것이 좋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교실이 크게 남아돈다. 이를 국·공립유치원으로 전환하면 적은 예산으로 가능하지 않은가.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남는 교실은 돌봄교실, 학부모 공간, 교직원 휴게시설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학교는 관리문제로 유치원 전환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학생 감소가 큰 지역은 당연히 유치원 수요도 적다. 그래도 서울시교육청은 잉여교실을 활용해 2022년까지 병설유치원 145개, 423개 학급을 신·증설할 계획이다.”
-서울시교육감을 연임하면서 가장 역점을 뒀던 분야는 무엇인가.
“최근 기분 좋은 조사결과가 보고됐다. 교육부가 매년 중3과 고2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 평가와 행복도 조사를 하는데 행복도가 높아졌다는 결과다. 나는 학생 주도적 학습과 학생자치 등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 정책을 5년간 지속적으로 펼쳤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는 것 같다. 나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한다’이다. 교육 격차 완화를 위해 ‘정의로운 차등’ 정책을 계속할 것이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는 당연한 말이다. 흔히 교육의 3대 요소라고 하면 학생·교사·교실(재단)을 꼽는다. 이 중 학생과 교실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요즘 초·중학생만 해도 신체적 성숙은 물론 다양한 방면에서 정보를 얻는다. 연간 71조원에 이르는 교육예산 덕택에 조개탄 난로를 피우는 교실은 사라졌다. 그러나 ‘교사가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번 한유총 사태는 바로 이 교육의 3대 요소 중 학생을 무시한 교사·재단(원장)이 개혁의 무풍지대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교사에 대한 개혁은 2003년 이해찬 교육부 장관(현 민주당 대표) 시절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줄인 것이 기억될 뿐이다. 이로 인해 이 장관은 교사로부터 ‘공적 1호’로 꼽혔다. 세계적으로 교육자치를 하는 나라에서 교사가 국가공무원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 우리는 전체 국가공무원 60만8000명 중 절반 이상인 31만4000명이 교육공무원이다. 이번 한유총 사태에서 보듯이 교육당국은 문제의 실상을 뻔히 알면서 대충 묵인해 왔다. 교육개혁은 그래서 더 어렵다.
‘고교 공교육 정상화’가 교육개혁 핵심
조 교육감은 “시대적 변화 및 학생의 변화와 비교해 교사의 변화에 지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교사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승진 때 연수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의 지방공무원화에 대해서는 “소방도 국가직화하는 분위기”라고 ‘사실상 반대’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교육개혁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조 교육감의 교육개혁에서 핵심은 ‘고교 공교육 정상화’다. 물론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과 맥을 같이한다. 외고·자사고·특목고 폐지, 수능 절대평가화, 고교 학점제 등이 그것이다. 그는 “지난해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2021년 수능(현 고1 대상)부터 대입제도 개편방안이 발표됐다”면서 “정시(수능 위주 전형) 비율 확대와 수능 최저학력 기준의 대학 자율 활용, 절대평가 과목 확대(영어·한국사에 제2외국어·한문 추가) 등이 주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 교육감은 “교육부의 개편방안에는 여전히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 유발 요소가 있어 절대평가 과목 확대를 포함한 개선방안을 계속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 공교육이 망가진 이유는 단지 교사와 학교(재단)의 문제뿐만은 아닐 것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안정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는 ‘좋은 신분’이 되는 경제·사회구조가 더 문제다. 그도 “교육문제는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가 ‘수직서열화’ ‘치열한 경쟁’ ‘차등적 보상’ 세 가지를 추구하는 사회가 돼버린 탓”이라며 “승자에게 압도적 보상을 몰아주다 보니 노동시장 진입 첫 관문인 대학입시에서 압축·폭발적으로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요즘 기업은 과거처럼 암기를 통해 시험만 잘본 학생을 선호하지 않는다. 좋은 학벌만 따지지도 않는다. 요즘 기업은 여럿이 협업하면서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호한다. 조 교육감은 “앞으로 인재는 정답을 찾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찾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키우기 위해 중학교에 ‘협력종합예술활동’을 도입했다. 한 학기 동안 연극·뮤지컬·영화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는 “인공지능시대에는 문화·예술적 감수성, 인간적 능력이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로 확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조 교육감은 1956년 전북 정읍 출신이다. 부친은 지방공무원으로 그는 1972년 서울로 올라와 중앙고에 진학했다. 그는 학교와 교회밖에 모르는 ‘샌님’으로 통했다. 교수가 꿈이던 그는 1975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암울한 유신시대였지만 앞장서 학생운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8년 유인물을 뿌리고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제적되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전투적 학생운동도 안 하고 2선에 머무르던 나까지 감옥에 간 것은 비판적 지식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라고 술회했다.
유인물 뿌리다 구속, 가장 큰 변곡점
그는 1979년 8월 15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1980년 대학을 졸업했다. ‘별’을 단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81년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92년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90년 성공회대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투옥된 경력의 연구자를 교수로 채용한 성공회대에서 신영복 선생과 이재정 총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회대에서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통합대학원 원장 등을 지내며 진보정책을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1993년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를 만나 참여연대를 만들어 정책위원장, 협동사무처장, 집행위원장 등을 맡았다. 그는 “참여연대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창조적 사업에 동참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4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것 역시 인생의 변곡점 아닐까.
“당시 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으로 교육감 후보를 찾을 책임이 주어졌다. 전직 총장과 장관 등 10여명에게 의사를 타진했는데, 모두 당선 가능성이 없다며 고사했다. 할 수 없이 그냥 내가 나왔다. 선거의 복잡성을 알았다면 못나왔을 것이다.”(그는 진보 시민·교육단체로 구성된 ‘2014 좋은 서울교육감 시민추진위원회’의 단일화 경선에서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결정돼 득표율 39.08%로 교육감에 당선됐다.)
-2017년 9월 강서특수학교 설립 공청회에서 주민의 반대에 장애인 학부모가 무릎 꿇은 모습이 공개된 이후 장애인 교육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때 강서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한 김성태 의원과 손잡는 모습이 나와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날이 9월 5일이다. 무릎 꿇은 장애인 학부모 사진이 장애인 교육에 대한 사회적 전환점이 됐다. 이후 장애인 학교를 담대하게 설립할 수 있었다. 지금 강서특수학교 외에 강남과 중랑구에서도 특수학교를 만들고 있다. 17년간 하나도 만들지 못했던 서울의 특수학교가 3개나 동시 진행되고 있다. 김성태 의원과 악수한 것은… 민주주의는 투쟁의 정치와 협치의 정치가 있다. 민주주의는 투쟁을 통해 발전하지만 공존하고 협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투트랙 민주주의’다.”
-한국의 현대정치를 분석한 저서 <투트랙 민주주의>가 바로 그런 내용 아닌가.
“교육감이 되기 이전에 쓴 책이지만, 민주주의는 여의도라는 제도권 국회 정치와 광화문이라는 비제도권 정치의 2개 트랙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은 광화문 정치의 동력·압력에 의해 여의도 정치가 변화돼야 한다. 적대적 갈등을 비적대적 갈등으로 계속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보수 정치주체들의 지체·비타협성 때문이고, 진보 정치주체도 협치에 대한 적극적 자세가 부족하다. 교육영역에서는 나를 비판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
조 교육감은 “이상적 교육은 학생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라며 “학생 역량에 맞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트랙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공동체 소멸의 위기를 가져오는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교육개혁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이 공동체 소멸을 막는 첩경이라고 믿고 있었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