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가 무엇인지는 알기 위해서, 혹은 장래의 사업가들이 불필요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고교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의 교육이수는 필요하다.

일러스트 김상민
‘집에서 피 한 방울만 뽑으면 수백 가지 건강검사를 할 수 있다’는 테라노스사의 사기행각을 밝힌 책 <배드 블러드>가 출간됐다. 알려진대로 그러한 진단 소프트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첨단 의료기술 스타트업 테라노스는 2003년 명문 스탠퍼드대학 중퇴생이자 젊고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홈즈가 창업했다. 의학산업, 카리스마 강한 한 명의 천재, 독보적인 기술과 국가적 차원의 열광, 그리고 폭로와 비어 있는 기술금고…. 이쯤되면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홈즈는 항상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아이폰 직원들을 스카우트했으며, 자신의 의도대로 ‘여성 스티브 잡스’로 불렸다,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으로 판명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1년 잡스가 사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고, 많은 기술자들이 ‘제2의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을 입고 싶어한다. 우상화가 불러들이는 위험성이 늘 그러하듯이, 잡스의 사망 당시 국내 언론들에 인용된 그의 일화들은 필자에게 다소 위험하게 느껴졌으며 일부 언론사들의 의도적인 소개로 판단됐다.
스티브 잡스의 전성기, 애플사는 경영조직론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로 꼽혔다. 외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카멜레온 같은 색깔 변화는 기본이고 규모까지 자유자재로 변화해야 하는데, 애플사는 공장 없이도 많은 물건을 전세계에 만들어 팔았다. 그러나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올리브나무와 렉서스>의 세계화를 기초로 한 조직의 유연화는 고용의 유연화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노동자들에게는 과히 유쾌하지 않은 개념이다. 층을 달리해 심각했던 것은 잡스 한 사람에게 직원의 평가와 해고의 절차가 집중된 비합리성과 전제성(專制性)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직원에게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는데 답변이 부실하면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는 등의 일화들은 그의 사망을 애도하는 거의 모든 신문에 실렸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노동법적인 시각에서보다는 천재라면 능히 할 수 있는 기행으로 쉽게 다뤄졌다.
대한민국 헌법은 최저임금제를 지키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했다. 이에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이 제정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하도록 했고,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또 30일 전에 해고예고를 하지 않으면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최근 자문을 해오는 자영업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단시간 근로자(일명 알바생)가 하루이틀 출근하고선 갑자기 개인 사정을 이유로 출근하지 않아 해고했더니 30일치 해고예고수당을 요구한다는 내용들이 많다. 특히 임금, 근로시간 등을 명시한 근로계약서 등을 교부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경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의 해고는 미국법적 고찰은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에 대한 무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를 소개하는 언론의 의도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근로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가 무엇인지는 알기 위해서, 혹은 장래의 사업가들이 불필요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고교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교육 이수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안다솔 다솔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