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반·자연조건·배후조건 등 갖춰… 2030년까지 1GW급 발전단지 조성
풍력은 중요한 신재생에너지 자원이지만, 국내 풍력발전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육지 산등성이에 설치하는 풍력발전기는 주변 마을 주민들이 소음 민원을 제기하면서 사업에 차질을 빚기 일쑤이고, 발전량도 많지 않아 그저 ‘관광용’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연안에 말뚝 박듯이 만든 해상풍력발전기도 어민들의 어로에 지장을 초래하면서 사업이 축소되거나 아예 실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유식 해상풍력단지의 전력 변전소 및 케이블 보호관으로 재활용할 것을 검토 중인 한국석유공사 동해가스전. / 한국석유공사 제공
효율적인 풍력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부유식(물에 뜨는) 해상풍력발전’이다. 충분한 풍력자원만 있으면 민원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최대 발전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착안해 울산시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내 최초로 대규모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에 나섰다. 이 사업은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 때 내건 공약사업이기도 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할 기술개발·실증시스템·풍력단지 조성(약 3460억원)을 비롯해 국내외 민간자본이 풍력단지에 세울 발전기 설치비(약 6조원) 등 모두 6조3460억원이 투입되는 거대한 사업이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동쪽 60여㎞ 해상에 추진된다. 울산시는 2030년까지 발전용량 1GW(1000㎿)급 풍력발전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1GW급 발전용량은 웬만한 원자력발전소 1기와 맞먹는다. 영구폐쇄된 고리1호기의 발전용량은 587㎿급이었고, 신고리3·4호기는 1400㎿급이다.
풍력발전산업 수출기지로 육성 목표
정부는 2017년 말 ‘신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30년까지 국내 총 에너지소비량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30년까지 풍력발전량을 16.5GW로 설정했고, 이 가운데 해상풍력발전량을 12GW로 잡고 있다. 울산시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도 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울산시는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을 통해 ‘해상풍력발전 기술의 국산화’와 ‘신성장동력 마련을 통한 지역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겨냥하고 있다. 울산시는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산업 수출 전진기지를 만들어 기술개발 단계부터 발전기 제작·생산, 운영지원, 인력양성 등 해상풍력발전의 모든 주기를 아우르는 ‘클러스터’를 조성해 세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울산 앞바다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예정지 위치도. / 울산시 제공
울산이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산업에 뛰어든 것은 산업기반·자연 및 배후조건 등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울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체와 전문 종사자들이 있다. 또 울산 앞바다는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에 적합한 수심 40m 이상으로 깊고, 연중 1초당 8m 이상의 바람이 부는 자연조건도 충분하다.
여기에 주변에 고리·신고리 원전과 화력발전소(한국동서발전) 등 발전소, 송전·배전 선로가 구축돼 있어 해상풍력발전단지와 계통연계가 쉽고, 대규모 국가산단이 위치해 전력소비처도 마련돼 있다.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개발은 국가·지자체가 공동으로 벌이는 기술의 국산화 및 풍력단지 조성과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풍력발전 단지 내 발전기 설치 및 전력 생산 등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정부와 울산시는 우선 기술의 국산화를 위해 울산대·마스텍중공업㈜·유니슨㈜ 등이 참여한 가운데 160억원을 들여 2016년부터 내년 4월까지 750㎾급 중형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과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한국해양대 등이 참여하는 5㎿급 대형 시스템 개발도 52억원을 들여 지난해 6월 착수해 내년 5월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울산테크노파크와 한국동서발전 등은 40억원을 들여 200㎿급 해상풍력 실증단지 설계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정부는 또 내년부터 2026년까지 총 5900억원을 들여 반잠수식(수심 50m 이내의 풍력발전)과 스파식(심해의 막대형 풍력발전)·혁신형(하이브리드형) 등 부유식 해상풍력 4기의 실증 프로젝트를 벌인다. 이 사업은 올해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에 선정됐다.
‘동해가스전’ 변전소로 활용 계획 눈길
국내외 유수기업이 민간자본으로 참여하는 해상풍력발전기는 약 10㎢로 추산되는 풍력발전단지 안에 세운다. 이 단지는 1GW급의 전력생산 용량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생산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10㎿급 발전기를 기준으로 100개가 들어서는 것이다. 아직 생산용량과 발전기 수량은 정해지지 않았다. 1㎿급 부유식 해상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데 약 60억원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모두 6조원이 풍력단지 조성에 투입되는 셈이다.

스코틀랜드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전문업체(PPI)가 개발해 실증 중인 반잠수식 발전기. / 울산시 제공
심민령 울산시 에너지산업과장은 “국내외 투자사들은 이를 매우 투자가치가 있는 사업으로 여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네덜란드와 한국 합작사를 비롯해 한국·덴마크 합작사, 한·미 합작사, 스코틀랜드 투자사 등 5곳이 투자의향을 나타냈다. 이들은 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부유식 해상풍력단지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변전소 기능을 위해 한국석유공사가 보유한 천연가스 개발설비인 ‘동해가스전’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동해가스전 해상플랫폼은 바다 밑바닥에 고정된 200m 높이의 구조물이고, 헬기장과 종사자 생활편의시설·크레인 등이 잘 갖춰져 있다. 이 해상플랫폼의 사용기한(20년)은 2021년 만료된다.
이에 따라 울산시와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10월 업무협약을 맺고 동해가스전 해상플랫폼을 해상변전소로, 해저 배관을 전력케이블 보호관 등으로 각각 재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정식 해상풍력발전만큼은 아니지만 부유식의 경우도 어로에 지장을 준다는 어민들의 반발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채낚기·자망·기선저인망 등 부산·경남·경북·강원지역 어민들은 “동해가스전 주변은 가자미·오징어·문어·대구 같은 생선의 어획량이 많은 황금어장”이라며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인근에 해군 작전구역이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풍력발전 투자사들은 향후 2년 동안 풍황계측을 위한 ‘라이다’ 설비를 갖춘다는 계획이지만, 해당 해역이 울산~포항 수계의 해군 작전구역으로 가는 통로여서 국방부의 동의 없이 사업 강행은 불가능하다. 해저 앵커 등 풍력발전기를 고정하는 해저구조물이 잠수함 등의 운항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보승 울산시 에너지총괄계 주무관은 “어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업 초기부터 사업정보를 모두 공유하면서 설득하고 있고, 국방부와도 적극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백승목 전국사회부 기자 smbae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