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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병원에 가두면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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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입원은 인권침해 요소… 폐쇄병동 기간도 최대한 줄여야

지난해 12월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외래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환자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정신질환자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일각에서는 “폐쇄병동 강제입원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에 이 같은 범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종전에는 강제입원을 시키기 위해서 보호의무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판단만 있으면 됐는데 개정 이후에는 보호의무자 2명과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전문의 2명의 판단이 필요하도록 했다.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식이 1월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엄수됐다./연합뉴스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식이 1월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엄수됐다./연합뉴스

강제입원 요건 완화가 해결책 못돼

실제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증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2012년 5298건에서 2016년 8287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범죄율을 따져보면 정신질환자(0.08%)가 일반인(1.2%)에 비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법 개정 이전으로 돌아가 강제입원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보호자 동의에 의한 강제입원을 규정한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과 2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정신질환 당사자와 의료진도 이전의 강제입원 방식이나 강제입원 요건 완화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환자들은 강제입원이 갖는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김진수씨(가명·61)는 “20년 전 강제입원의 기억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13년 전 강제입원을 당한 강은일씨(33)도 “강제입원은 힘으로 눌린다는 기억, 그리고 가족들이 내 의사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권리를 빼앗겼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의료진들은 다른 이유에서 강제입원 요건 완화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개정된 내용이 크게 어려운 게 아닐뿐더러 ▲세계적인 추세에 부합하고 ▲무엇보다 실제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법 개정 이후에도 입원환자 수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근거다. 법 개정 효과가 컸다면 입원환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승홍 녹색병원 정신건강전문의는 “정신과 의사 중에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이정국 성모마음정신과 전문의도 “강제입원을 쉽게 하는 시스템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입원을 까다롭게 하되 그 과정에 여러 국가와 전문가가 개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해외의 ‘사법입원제도’는 참고할 만한 제도로 평가받는다. 각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사법부 관계자, 응급구조단, 의사, 인권단체 등으로 꾸려진 ‘방문기관’이 보호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환자를 찾아가 상태를 확인하고 진료를 보게 하거나 입원시키는 게 골자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제도가 구축된다면 지금보다 초기에 빠른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 현재는 보호자가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거나 혹은 환자가 사고를 일으켜 경찰서를 거쳐야만 진료가 가능하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는 조기 치료가 중요한데 지금은 환자가 병원에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미 악화된 상태에서 온다”고 말했다.

이런 제도는 가족들만 져야 하는 책임을 덜어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승홍 전문의는 “급성, 중증의 정신질환자는 물론이고 만성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이 의무와 책임을 모두 환자 가족에게만 지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진국 중 이런 나라는 한국뿐일 것”이라며 “공공기관, 국가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고 말했다.

폐쇄병동에 대해서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급성환자에게는 필요하지만, 장기간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폐쇄병동에서는 이동·통신의 자유가 없고, 조금만 갈등이 생기면 묶어 놓는다”며 “예전에는 의료진에게 맞기도 했다. 이런 시스템에서 치유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폐쇄병동에 안 갔으면 치유가 더 빨랐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퇴원 환자 위한 다양한 정책 필요

이정국 전문의는 환자들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신과 폐쇄병동의 치료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신과 질환은 다른 질환과 차이가 분명한데도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의 수, 의료수가 등이 거의 차이가 없어 치료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를 가장 쉽게 ‘관리’할 수 있는 건 ‘독한 약물’이다. 여기에 돌봄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이승홍 전문의도 “폐쇄병동은 치료를 더 잘하기 위해 존재하는 병동이 아니다. 급성환자에게 약물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 한두 달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동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병동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성도 아닌 환자들을 폐쇄병원에 ‘살게’ 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는 10년째 병원에 있는 환자도 수두룩하다”고 비판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폐쇄병동 입원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있는 추세다. 과보호적이고 통제적인 치료환경 때문이다. 오랜 입원기간은 환자를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고 그 결과 환자들은 오히려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1950년대에 시작된 논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견도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현재 국내에는 퇴원한 정신질환자가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먼저 각 지역에 정신보건센터가 있지만 인력이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 정신보건센터 복지사는 “복지사 1명이 100명이 넘는 환자를 맡고 있다. 돌봄은커녕 관리도 안 된다”고 말했다.

외래치료명령도 마찬가지다. 외래치료명령은 시·군·구청장이 내리도록 되어 있는데, 문제는 명령을 내려도 강제하거나 유도할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이해국 교수는 “일본은 1960년대 이후 정신과 통원치료비를 전면 지원하고 있다. 이 비용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의 안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갈 곳 없는 퇴원환자들이 머물 수 있는 주거지원, 낮에만 병원에서 지내는 ‘낮 병원’, 같은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과의 만남과 상담을 통한 ‘동료지원’ 등이 필요한 제도로 꼽힌다. 이승홍 전문의는 “이런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강제입원과 폐쇄병동의 단점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도 현실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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