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 ‘삭센다’ 품절 사태… 체질량지수 관계없이 판매 부작용 우려
서울 강남구의 한 피부과 의원은 일대의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곳이다. 비만 치료제인 ‘삭센다(Saxenda)’ 물량이 넉넉하다고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비만환자가 자가주사 형태로 된 이 약을 주사하면 식욕을 억제해 감량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은 적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승인을 받은 뒤 일선 병·의원에서 적극적인 마케팅까지 나서면서 빠른 속도로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인 약이다. 높은 인기 때문에 곳곳의 병원에서 품절사태까지 일어날 정도로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된 이 약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 환자들이 이 의원으로 몰린 것이다.

병·의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삭센다 광고|인터넷 화면 캡처
기자도 진료를 핑계로 이 의원에 들러 삭센다를 살 수 있는지 물어봤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이 불법적으로 삭센다를 판매·광고한 병·의원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여서 의료진의 의심을 피해야 했다. 피부 가려움증 치료를 위해서라고 진료 목적을 밝힌 뒤 의사와의 상담이 끝날 무렵에 삭센다 구입이 가능한지 넌지시 물었다. “나가서 키랑 몸무게 재보고 체질량지수(BMI) 27 이상이면 가능해요.” 의사의 말은 처방 원칙에 위배되는 내용이 없었지만 진료실을 나서서 만난 직원의 말은 달랐다. “의사선생님이 BMI 27이면 삭센다 사갈 수 있다고 하시던데요”라고 직원에게 말하자 바로 “네, 몇 개 사시려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체질량지수 측정을 요구하는 말은 없었다.
병원 수익과 직결 적극 홍보까지
삭센다 처방이 쉽다고 소문난 또 다른 성형외과 의원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이곳을 방문한 40대 여성 오모씨는 쉽게 처방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여기 몇 번 와봐서 (삭센다를) 사러 왔다고 하면 그냥 돈 받고 내주는데, 처음 왔을 때도 의사 상담만 짧게 하고 검사 같은 걸 하지는 않았다”며 “소개해준 친구 이름 대면 약간 DC(할인)도 해준다”고 말했다. 다른 내원객인 20대 여성 김모씨도 “원하면 인바디 검사(체성분 검사) 받고 나서 검사 결과 보면서 약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주지만 비만 기준 안 넘겼다고 약을 못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삭센다는 BMI 30 이상의 성인환자, 또는 고혈압·제2형 당뇨병·당뇨병 전단계·이상지질혈증 등 체중 관련 동반질환을 최소한 하나 이상 보유한 BMI 27 이상의 성인환자를 대상으로 처방할 수 있다. BMI가 27을 넘으려면 키 160㎝ 기준으로 몸무게가 대략 69㎏을 넘겨야 한다. 여기에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심혈관계나 대사 관련 질환이 있는지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 BMI 30 이상이려면 키 160㎝ 기준 77㎏ 이상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 기준보다 체중이 낮아 비만으로 분류되지도 않는 내원객들도 원하기만 하면 면밀한 검사 없이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해당 기준 이상 비만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나타났고 부작용이 심각하지 않았다고 해서 정상 체중 투약자들에게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약을 만든 제조사인 노보 노디스크사와 일선 병·의원의 홍보만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만 환자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친 뒤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약사 측은 “정상 체중이나 소아와 관련한 임상 데이터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처방 없이 판매한 곳 등 39곳 적발
삭센다의 성분인 리라글루티드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1) 유사체로는 세계 최초로 시판된 비만 치료제다. 음식물 섭취 후 분비되는 인체 호르몬인 GLP-1은 뇌의 시상하부에 전달돼 배고픔을 줄이고 포만감을 늘려 식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제약사 측에 따르면 GLP-1 유사체인 약 성분이 해당 호르몬과 동일한 기전으로 작용해 식욕과 음식 섭취를 억제해 체중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해당 치료제는 체지방 합성을 유도하는 인슐린 분비를 특정 조건에서만 촉진해 당뇨병 등의 대사질환 위험은 감소시키면서 체중감량 효과는 나타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반면 메스꺼움과 구토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갑상선암이나 췌장염 유발 가능성에 대한 경고사항도 투약 환자들에게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의료업계는 삭센다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병원의 처방이 필요해도 약을 구매할 때는 약국을 거쳐야 하는 다른 형태의 치료제와는 달리 삭센다는 주사 형태여서 병원에서 직접 판매하게 돼 있다. 약을 판 만큼의 수익이 병원으로 직결되므로 쉽게 처방을 내주면서 별다른 의료행위도 필요하지 않은 이 약이 병원 수익 상승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주사제를 산 투약자가 자신의 몸에 직접 바늘을 꽂아 약물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줄 수도 있지만 효과만 좋다면 각종 다이어트 및 비만 치료에 관심을 보이는 소비층에게 효능을 광고하면서 거부감 자체를 희석시키는 모양새다.
현재로서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민사단)이 조사해 적발한 병원이 서울시내 39곳에 그치고 있다. 의사 처방 없이 판매한 5곳을 비롯해 전문의약품 광고 금지규정을 위반해 불법광고한 19곳 등이 의료법과 약사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터넷·신문·방송 등을 통한 광고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홈페이지에 버젓이 삭센다를 광고한 곳들과 품귀현상이라는 이유로 세트로 한꺼번에 살 것을 권유하거나 세트 구매시 덤으로 추가분을 준 사례 등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약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까지의 적발건수에 비해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양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애초에 병·의원이 아닌 개인이 사고팔 수 없는 전문의약품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나 SNS 등을 통해 직접 거래한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에 처벌 가능성을 감안하고서도 불법적인 유통을 통한 수익을 노리는 움직임도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 관계당국의 엄격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품절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인기를 끄는 약품이어서 제약업계의 그릇된 위법 관행 중 하나인 ‘오시우리(제약 영업사원에 대한 재고 강매)’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현재까지는 개인들이 불법유통에 가담했다면 출시 예고 중인 복제약이 나오는 이후로는 유통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불법물량을 내보낼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