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한국의 교육 형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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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보고서… 부모 사회·경제적 능력 따라 학업 성취도 격차 커져

“성적 올려준다는 말은 아예 안 해요.” 경기 남양주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이모씨(44)는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는 방식을 바꿨다. 이전까지 학원을 운영했던 서울 동작구를 떠나 지금의 지역으로 옮기면서 학생 특성이 달라진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학원을 하던 지역 학생들은 어느 정도 중산층이라고 불릴 만한 집안에서 자라며 매우 뛰어나지는 않아도 일정 수준의 성적을 내던 공통점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 자리를 잡은 동네의 중·고교생들은 성적도 공부하는 환경도 저마다 천차만별이다. 이씨는 “어느 학부모는 성적보다는 학생이 PC방 가서 놀지 않게 생활지도만 해줘도 좋다는 식이고, 또 어느 부모는 성적은 어떻게 되든 재수 없이 취업률 높은 과에만 붙을 수 있다면 된다는 식으로 요구사항이 다르니 맞춰주는 전략도 완전히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OECD 회원국 중 악화 정도 2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한 학생이 가방을 메고 학원 건물로 향하고 있다./김기남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한 학생이 가방을 메고 학원 건물로 향하고 있다./김기남 기자

이씨는 주변의 학원 운영자들과 지역 특성이 비슷한 곳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지인들을 통해 곳곳의 사교육 현장 분위기를 파악해 봤다. 학부모들의 경제·사회적 계층과 학생의 성적에 따라 사교육에 기대하는 지점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학원가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이씨는 학원을 찾을 정도로 자녀 공부에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막상 학원비로 내려는 금액은 학부모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상담하면서 넌지시 학원비로 얼마를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본 뒤 대략 그 수준에서 맞춰줘요. 어차피 받는 액수도 제각각이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것도 제각각이니까 (학원비를) 적게 받으면 그 수준에서 수업이랑 생활지도·상담을 해주면 되거든요.” 이씨는 사교육에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돼 있는 학부모들은 대체로 자녀에 대한 성적 향상 기대도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비싼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상 최소한 현상유지만 해도 불만이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교육 현장이 아닌 공교육 현장에서는 어떨까. 같은 남양주시의 한 공립고에 근무하는 40대 교사 박모씨는 아예 사교육은커녕 학교 수업료를 내기에도 빠듯해 어려움을 겪는 가정의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1년에 130만원 남짓한 수업료조차 버거운 학부모들은 일 때문에 바빠 만날 일도 거의 없다. 그래도 학생의 평소 생활을 보면 대충 집안 형편을 짐작할 수는 있다. 열심히 공부해 성적이 좋은 학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지만 박씨는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서 공통점이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겉으로 내색은 잘 안 하지만 공부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은 괜찮은 인강만 들을 수 있어도 더 성적이 오를 텐데 하면서 좌절하고, 이미 공부는 반쯤 놓은 학생들도 내가 이런 환경에서는 뭘 해도 안될 거야 하면서 체념하는 모습이 드문드문 드러나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국내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는 점차 커져 10년 전에 비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 형평성의 악화가 단지 학업 성취도에서의 차이와 이후의 진로 격차만으로 나타나는 것을 넘어 교육 자체에 대한 불신과 냉소적 태도로 이어지는 데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식 또한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기보다는 현재의 계층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제도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 불신과 냉소적 태도로 이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0월 23일 발표한 ‘교육 형평성: 사회적 이동성 제고(Equity in Education: Breaking Down Barriers to Social Mobility)’ 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 한국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의 학력 차이가 2006년 조사 결과에 비해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의 지표를 비교할 때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교육형평성 악화 정도가 심한 나라였다. 분석 결과 한국의 2015년 지표는 0.79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위 25%에 해당하는 학생 집단보다 하위 25% 학생 집단에서 기초학력 이상의 학업 성취도를 나타낸 학생의 비율이 약 21% 적었다. 쉽게 말해 못사는 집 학생들일수록 기초학력 수준에 못미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을수록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나쁜 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2006년에 비해 한국의 교육형평성이 크게 악화됐다는 점에 있다. 2006년의 같은 조사에서 이 지표의 값은 0.89였다. 기초학력 수준 이상의 하위 25% 학생들 비율이 상위 25% 학생들보다 약 11% 적었지만 2015년보다는 10%포인트가량 낮았던 것이다. 가정형편에 따른 학업성적 격차가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크게 벌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른바 ‘흙수저’ 학생 중 기초학력 수준에 못미치는 학생의 비율이 늘어난 반면,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의 비중은 같은 기간 동안 크게 줄었다. 하위 25% 학생 집단 중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3등급 이상 상위권에 든 학생 비율이 2006년 52.7%에 비해 2015년 36.7%로 16%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두 지표를 종합해 보면 취약계층 학생들이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학업 성취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OECD 역시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교육의 양극화 현상의 원인이 사교육이라고 지목했다. OECD는 “더 유리한 환경의 학생들이 학업 성취도 격차를 더욱 벌리며 앞서 나가는 현상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학교 교육의 질을 개선하거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영향이 적게 미치도록 교육형평성을 개선하는 조치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목적이 뚜렷한 추가 학업이나 학교활동을 확충하면 학교가 더 포용력 있고 공정한 사회를 이끌 수 있다”고 지적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드러난 교육 양극화와 형평성의 악화가 사교육의 영향 때문이라는 점에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교육부가 올해 3월 발표한 2017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소득별 사교육 격차는 여전히 컸다.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는 사교육비를 매달 9만3000원 쓴 반면, 700만원 이상인 가구는 45만5000원으로 4.9배 많았다. 사교육 참여율에서도 월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는 83.6%, 200만원 미만 가구는 43.1%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다만 계층에 따른 교육격차는 단지 사교육 지출액의 차이를 넘어 보다 복합적으로 대물림되는 것이라는 설명도 뛰따른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는 ‘사회이동성과 교육해법’ 세미나에서 분석한 연구자료를 제시하며 “세대 간 교육 대물림이 최근 들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계층 간 교육격차를 야기하는 주범이 사교육 투자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부모의 계층에 따라 학생인 자녀의 교육과 성적에 어느 정도 관여하고 어떤 모습의 양육 분위기를 만드는지를 포함한 전반적인 문화 차이가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서울 관악구에 설립된 학업중단학생지원센터 ‘친구랑’에서 한 청소년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연합뉴스

서울 관악구에 설립된 학업중단학생지원센터 ‘친구랑’에서 한 청소년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연합뉴스

사교육·학교교육 종합대책 필요

김 교수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교육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모습이 세대를 걸쳐서 나타나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69세의 남성을 기준으로 교육수준의 세대 간 상관계수를 분석한 결과, ‘할아버지-아버지’는 0.656, ‘아버지-본인’ 0.165, ‘본인-아들’ 0.398로 나타났다. 교육 기회 자체가 적었던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제도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강하게 대물림되었지만 아버지 세대에 이르면 이런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자녀 세대로 갈수록 다시 이 격차는 커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단지 사교육 시장을 통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학교 교육 현장 등 정책 적용이 가능한 모든 영역을 통틀어 종합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학업 성취도의 격차가 커지는 것에만 주목하기보다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가정환경의 차이 때문에 학생의 자발적인 학교활동 및 학습 분위기를 저해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학생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특성에 맞춰 교육과정을 개별화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성공경로 역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위기 청소년에 대해서는 이들을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게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교육이 사회적 이동, 즉 부모세대보다 더 개선된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게 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학자들도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는’ 계층 사다리를 복원할 필요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아직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들어 교육의 계층 사다리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면서 “교육개혁을 통해 교육의 계층 사다리 역할을 복원시키고, 학교 현장에서 열악한 가정 배경의 학생들 학력에 주의를 기울이게 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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