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소득수준에 따라 빈곤가구 아이들이 결식률 높아
저녁이 있는 삶은 다가오지만 아침이 없는 삶은 여전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수면시간은 짧아지고 아침을 거르는 비율은 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한국 사회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찾는 첫발을 떼고 있음에도 아직도 ‘공부와 삶의 균형’은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가정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상대적으로 높을수록 청소년 자녀들의 식사와 교육에 들이는 노력은 더 많아지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방치가 나타나는 탓에 어린 시절부터 불평등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수면도 아침 거르는 이유
일반계 고등학생 장현수군(17·가명)의 집은 서울 송파구에 있다. 장군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저녁을 먹은 뒤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을 마치고 개인 과외교습까지 받는 날도 있다. 장군이 받는 사교육에는 수학과 영어 같은 개별과목 교습 외에도 수행평가 대비 특별과외나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대비 독서지도나 보고서 작성법 등도 포함된다. 여기에 인터넷 강의까지 들으면 졸면서 하루가 넘어간다.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누우면서 부모님 몰래 태블릿PC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앱을 열 때도 있지만 졸려서 켠 채로 잠들기 일쑤다. 새로운 하루는 오전 7시 어머니가 깨우며 시작된다. 더 자고 싶지만 아침을 같이 먹어야 아버지의 차를 타고 등교할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 한술을 뜬다. 그러지 않으면 지각이라 웬만해선 아침 식탁에 앉는다.
같은 서울이지만 강서구에 사는 김재영군(16·가명)의 아침은 다르다. 김군은 아침을 거른 채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선다. 김군도 자정을 넘겨 잠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교 후 학원 한 군데를 가긴 하지만 부모님 퇴근이 늦으면 친구들과 게임을 즐길 때도 적지 않다. 다른 점이란 김군은 나이 때문에 ‘셧다운제’에 걸려 자정 전에 컴퓨터 앞에서 일어난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모바일 게임에 접속한다. 늦게 자고 등교시간 전에 겨우 일어나니 아침은 거른다. 배도 고프고 잠도 부족해 학교에 가서도 오전 시간 내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른다.
교육부의 2017년도 학생건강검사 결과를 보면 하루 6시간도 못 잔다고 응답한 비율은 초등학생 2.7%, 중학생 12.4%, 고등학생 44.3%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커졌다. 잠이 부족한 현실이 이어지는 결과는 아침식사를 거르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초등학생 4.7%, 중학생 13.4%, 고등학생 18.1%가 아침을 거른다고 답했다. 수면시간이 짧아지고 아침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아지는 현상은 최근 들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고교생만 놓고 봤을 때 2015년에는 6시간 이하 수면율이 42.3%, 아침식사 결식률은 15.1%였던 데 비해 점차 오르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이 짧고 아침을 거르는 비율이 높다는 점은 성인들과의 비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중 가장 최신 자료인 2016년을 기준으로 보면 19세 이상 전체 연령대에서 수면시간이 6시간에 못 미친다고 응답한 비율은 14.7%로 고교생들보다 훨씬 적었다. 아침식사 결식률도 청소년기인 12~18세의 결식률은 34.6%에 달해 성인의 26.3%가 아침을 굶은 데 비하면 훨씬 높다. 이에 비해 아침을 가족과 함께 먹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아침식사 가족동반 식사율은 2011년 53.1%에서 2016년 42.3%까지 떨어졌다. 아침을 거르지 않고 먹더라도 밖에서 혼자 사 먹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통계만으로 보면 청소년기에 유독 짧은 수면시간은 아침식사 결식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단순히 생각해 학교를 벗어나도 오랜 시간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늦어지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자연히 늦어져 아침을 거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시간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점은 다른 통계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잘사는 집 학생들의 공부시간이 더 긴 반면 아침을 챙겨먹는 비율도 높다. 어딘가 빠진 고리가 있는 것이다.
12~18세 아침 결식률 34.6%에 달해
가정환경이 풍족할수록 공부에 쏟는 시간이 긴 것은 한국에선 당연해 보이지만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그 반대다. 못사는 집 학생들이 더 오래 공부한다. 사회·경제적 위치가 열악한 상황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일수록 성적이 낮은 것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경쟁에 불리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뒤처지는 것을 막으려 더 오래 공부를 시킨다. 반대로 한국은 잘사는 집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으며 더 오래 공부한 덕에 줄곧 앞서나간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빼고 방과후 공부시간만을 비교하면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으로 3년마다 시행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15’ 결과 보고서를 보면, 한국에서는 사회·경제적 수준이 상위 25% 안에 드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하위 25% 학교 학생보다 주당 9.8시간을 더 공부했다. 이 격차는 평가에 참여한 72개국(OECD 회원국 35개국, 비회원국 37개국) 가운데 가장 크다. 반면 OECD 평균으로는 최하위층 학생이 최상위층 학생보다 주당 1.3시간 더 공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들이 장시간의 학업에 시달리는 문제가 잠을 줄이고 식사까지 거르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은 아니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국 학생들의 평균 방과후 공부시간은 주당 20.2시간으로 비교대상 55개국 가운데 16위였다. 순위가 높은 편이기는 해도 1위인 UAE(29.7시간) 등의 나라보다는 OECD 평균 17.1시간에 훨씬 가깝다. 오히려 최하위층 학생의 방과후 공부시간만 따지면 주당 15.8시간으로 OECD 평균 17.9시간보다 짧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교육의 양극화 현상은 사교육이 원인이다. “더 유리한 환경의 학생들이 학업성취도 격차를 더욱 벌리며 앞서 나가게 하는 학습시간의 격차가 커지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고 “만연해 있는 사교육의 결과로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들의 지적이다.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 자는 시간이 줄고 아침을 거르게 된다면 오히려 사회·경제적 배경이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 공부시간이 짧은 학생일수록 아침식사를 챙겨먹는 비율은 높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보건복지부의 아동청소년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빈곤가구 청소년의 아침 결식률은 26.8%로 그렇지 않은 가구 청소년의 결식률 10.1%보다 크게 높았다. 아침을 거르는 이유로는 빈곤가구와 일반가구 청소년 모두에서 ‘늦게 일어나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지만 차이도 보였다. 빈곤가구 청소년들은 늦은 기상 때문에 아침을 거른다고 응답한 비율이 50.9%였지만 일반가구에서는 이 비율이 64.9%였다. 반면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거나 먹을 양식이 없어서 아침을 거른다는 청소년은 빈곤가구에서 6.2%를 차지했다. 일반가구의 1.1%와 대조를 보이는 지점이다.
아침을 거르면 힘이 빠진다. 그런데 속이 비어서 오는 이 무기력증은 오전에만 그치지 않고 점심을 먹은 오후까지도 이어진다. “아침을 못 먹고 나오면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어서 수업에 집중이 안 되고 잠만 와요. 그런데 아무래도 배고파서 점심을 과하게 먹고 나면 오후에도 나른하게 늘어져서 졸린 건 똑같아요.” 부모님이 모두 계시지만 맞벌이를 하고 있고 경제적 사정이 좋다고는 보기 어려운 고등학생 김재영군의 말은 아침 결식이 학업능률 저하로 이어지는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학업성취도에도 부정적 영향
학계의 연구결과로도 이와 같은 경향은 확인된다. 청소년들이 아침을 결식할수록 학업성취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적지 않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강재헌 교수는 “가계소득이 낮을수록 아침 결식의 위험도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외국의 연구결과를 보면 아침 결식은 인지기능을 저하시키고 학업성취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대책 마련을 위해 가정환경에 따라 청소년들이 아침 결식을 하지 않도록 ‘학교 아침밥 지원사업’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도 뒤따랐다.
청소년기 가정의 소득에 따라 학업성취도뿐만 아니라 건강에서도 불평등한 면이 보이는 것은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다. 아침 결식이 학업성취도 저하는 물론 비만과 과체중 비율까지 높이는 요인의 하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거른 만큼의 모자란 영양 섭취량은 다른 식사에서 보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보충되는 정도가 영양섭취 권장량을 넘어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식습관을 강화시킬 때도 많아 비만으로 이어질 소지가 생기는 것이다. 주세영 건국대 교수(식품영양학)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아침 결식률이 높아지면서 식생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맞벌이 등의 영향으로 외식 횟수가 늘어나는 추세는 되돌리기 힘들더라도 건강에 이로운 외식 메뉴를 선택하도록 영양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