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스러운 것은 이 사회의 다수 법률가들의 인식 즉 “김씨처럼 성인 여성이고, 사회적인 지위를 갖추고,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불일치하는 진술과 행동을 한다는 점은 피해자다운 태도가 아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시스템이 운영하는 형사사법절차의 핵심 중 하나는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의 범죄사실을 입증하고 그에 적합한 처벌과 함께 피해 회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피해를 스스로 구제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공동체의 혼란을 방지하려는 것 외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범죄를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무기의 평등’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런데 살인 등 범죄에는 이 원칙의 적용에 사회적 불만이 비교적 적은 반면, 폭력이 본질이거나 핵심적으로 수반된 범죄의 경우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노정돼 왔다. 특히 사회불평등지수가 높고, 성인지지수가 낮은 국가들에서 두드러진다.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8월 14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이준헌 기자
안희정의 가해자다움 수사에 소홀
특정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둘 혹은 그 이상의 관련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포함해 사건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사건 발생 전후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의 ‘시선의 이동 혹은 전환’ 같은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폭력범죄가 발생하면 폭력관계를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관계에 섞이기 싫어서 방관하다가 그 중 약한 자를 공략하는 방식을 택한다. 성범죄는 ‘정조범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폭력범죄다. 이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사실조차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성범죄에는 (사회적·맥락적) 권력관계가 투영된다. 지나가는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성추행 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 자체로 무슨 권력관계냐고 하겠지만, 그 사건이 국가에 의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 권력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가해자는 “피해여성의 옷이 너무 야해서 그랬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등 범죄행위와는 무관한 발언을 늘어놓는다. 피해자는 자신이 당시 야한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어떤 옷을 입어야 성폭력 피해를 당하지 않고, 피해 발생 후에는 어떤 행동을 해야 피해자답다는 정의가 자리잡혀 있다. 이것은 권력관계다.
회사 사장이 갓 입사한 여직원에게 성적 욕구를 느껴서 접근한 경우 사장은 여러 수단을 통해 여직원을 회유한다. 월급, 보너스, 편한 보직 등등. 그러다가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자리 즉 회식 자리 혹은 1박2일 야유회 자리 등에서 성관계를 맺은 경우, 사장은 여직원이 더 많은 월급이나 편한 보직을 노리고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사장이 여직원에 대해 성적 욕구를 느껴서 실행한 것이 핵심이며, 그 실행의 수단으로 본인이 가진 권력이라는 힘을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통 이런 사건은 일종의 ‘기브앤드테이크’로 처리되어 사장은 성적 만족을 가졌고 여직원은 사장이 던져준 권력의 일부를 누렸기에 범죄로 처리되지 않는다. 여성이 강간당한 다음날 그 여성은 피해자다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24시간 울어야 하는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자해를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판사들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강간 피해자들을 봐왔는지 의문이다. 또한 성범죄의 ‘암수범죄(편집자 주: 범죄가 실제 발생했으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어도 용의자 신원 미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적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지수’는 10%인 점을 감안하면 진짜 강간당하고 유린을 당한 여성의 상당수는 애초에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피해자다움의 일반성 운운하는 말들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다.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함을 공격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는 1차 사건 다음날 안희정을 위해 식사를 주문했다. 예를 들면 안희정 밥에 침을 뱉어야 피해자다움인가. 식사를 주문한 행동은 결국 김씨가 강간을 당했지만 그것을 빌미로 무엇인가 얻어내려고 했기에 결과적으로 그 강간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귀결이 된다. 재판부는 피해자 비공개 심문에서 ‘정조’를 언급했다. 그 얘기의 내면에는 그 ‘정조’를 얼마에 팔았느냐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사회의 다수 법률가들도 이런 인식 즉 “김씨처럼 성인 여성이고, 사회적인 지위를 갖추고, 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이 불일치하는 진술과 행동을 한다는 점은 피해자다운 태도가 아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국가에서 폭력범죄가 국가에 의해 처리되는 방식은 매우 권력적이어서 사회의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관련된 사람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유리함을 스스로 입증할 때,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변명보다는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못함을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
안희정 성범죄사건 재판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국가는 안희정의 가해자다움을 입증하지 않고 김지은의 피해자답지 않음을 입증하려 했을까? 법원의 논리는 단순한 것 같다. 안희정과 김지은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 안희정의 거짓말을 입증하기 힘들기에 김지은의 거짓말을 입증하면 판단은 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법원이 성범죄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즉 성범죄사건의 특수성, 즉 다른 물적 증거가 의미가 없고 오로지 당사자의 진술과 행동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거나 구체적인지를 기준으로 신빙성 판단을 한다고 한다. 거기에 이번 사건 재판부는 피해자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여러 차례 혹은 일부 하고 있는 것이 2차 피해로 인한 충격인지도 고민했으며, 혹여 피고인이 성적 길들이기를 한 것은 아닌지, 피해사실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현실에 순응하게 되는 심리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지도 역시 살펴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이 형사법정으로 온 이상 헌법적·형사법적 원칙에 기초”해 사안을 심리해야 하기에 이 사건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핵심적인 전제가 이상하다. 법원이 핵심근거로 삼아야 하는 헌법적·형사법적 원칙은 우선 피해자가 제기한 공소사실에 대한 가해자의 주장에 대해 가해자를 먼저 수사해 그가 하는 진술이 객관적인 물적 증거와 부합하는지에 대해 판단을 했어야 했다. 만약 그런 판단이 어려울 경우 차선의 방법으로 즉 가해자의 거짓을 입증하기 어려울 경우 피해자의 거짓을 입증하여 역으로 가해자의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을 택했어야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물론이고 검찰에서도 (일부이기는 하지만) 안희정의 범죄혐의 여부에 대해서 직접적인 수사를 게을리한 점이 보인다. 우선 안희정 스스로 성관계는 인정했고, 다만 그 성관계가 강압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성관계를 할 당시 안희정이 김지은에 대해 가졌던 감정을 안희정에게 입증하도록 했어야 하지 않을까. 즉 안희정이 돈을 줄 테니 성관계를 하자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니 당시 김지은을 이성으로 느꼈다는 점을 안희정 스스로 입증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가해자를 수사하는 방식이다. 사법부에 다시 묻고 싶다. 당신들이 판단해야 할 것은 안희정의 ‘가해자다움’인가, 김지은의 ‘피해자다움’인가.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프로파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