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관련자 PC 제출 요구… 임종헌 전 차장 수사에 성패 달려 있어
김명수 대법원장(59·사법연수원 15기)이 열어놓은 법원행정처의 문을 검찰은 얼마나 열고 들어갈 수 있을까. 외관상 사법부는 검찰에 빗장까지 빼고 모든 것을 줄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검찰 역시 이에 응하는 모양새다. 강제수사가 아닌 임의제출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젠틀한’ 수사방식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대법원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및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및 심의관들의 PC를 요구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풀지 못한 암호파일부터 임의로 삭제한 문건까지 모두 복구해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사법부의 대응이다.

전국변호사협회 비상시국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6월 1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규탄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대법원장이 수사의뢰를 하거나 고발조치를 하지는 않더라도 이미 고소·고발된 건에 대해서는 검찰의 조사에 최대한 응하겠다고 한 상황에서 이들의 PC 및 하드디스크 제출을 막을 명분은 없다. 그러나 이미 법원행정처 안팎으로 잡음이 들리고 있다. 한 법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알 만한 사람은 알지 않나”라고 운을 띄우는 법원 관계자도 있다. 법무부 및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각종 의견이나 법률안, 공동으로 추진해온 각종 정책에 대한 사법부 내부 대응문건을 검찰이 보지 않고 지나칠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수사에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살펴보겠다고 하지만 그게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검사도, 판사도 없다.” 어찌됐든 닻은 올려졌다. 검찰 역시 큰 부담을 안고 시작된 수사지만 이미 출발선은 지났다.
검찰 수사는 결국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16기)의 입을 얼마나 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임 전 차장은 논란이 된 각종 문건을 직접 작성했거나 지시한 당사자다. 대다수의 문건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임 전 차장의 업무스타일 상 문제가 된 문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성됐는지는 하드디스크 분석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통상 행정처에서 각 국·실장이 소속 심의관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면 심의관들은 페이퍼(종이) 형태의 보고서를 올린다. 때문에 해당 보고서가 작성된 후 실제 보고됐는지 여부는 작성한 심의관의 입을 통해 2차 확인이 필요하다.
임 전차장 PC는 문서의 보고
반면 임 전 차장의 PC는 각종 문건의 보고(寶庫)인것으로 알려졌다. 업무지시 및 보고가 페이퍼 형태와 파일 형태로 병행돼 이뤄졌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은 파일로 보고하는 것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임 전 차장의 업무방식이 반영돼 있다. 임 전 차장은 업무지시를 내릴 때 ‘어떠한 사안을 살펴보고 보고하라’는 방식이 아닌, 자신이 일정한 틀을 미리 세워놓고 사실상 그 안에 빈 칸 채우기 방식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여기서 지시문건(1차 파일)이 발생한다. 여기에 심의관이 임 전 차장에게 제출한 보고문건(2차 파일)이 나온다. 대다수의 문건은 임 전 차장의 손을 거쳐 한 번 더 수정작업이 이뤄졌다(3차 파일). 결국 검찰은 기조실 1·2심의관의 PC와 임 전 차장의 PC 속 문건 대조작업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쟁점은 임 전 차장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를 했는지 여부다. 행정처 관계자는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애초에 임 전 차장의 PC에서 발견된 문건 대다수가 결제라인이 있는 보고서가 아닌 검토문건이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와 박 전 처장 및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작성문건을 직접 보고했는지 여부는 결국 임 전 차장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임 전 차장은 행정처장 보고업무를 할 때 구두보고가 아닌 페이퍼 형식으로 제출을 했다. 박 전 처장이 어느 수준의 문건까지 봤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박 전 처장이 임 전 차장이 벌이는 일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이 밝혀야 할 것은 박 전 처장이 임 전 차장이 작성한 각종 연구회 와해 구상 및 인사상 불이익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비롯해 특정 판결을 정권에 유리한 판결로 분류한 보고서 등을 봤는지 여부다. 각 문건들이 가지는 위험성이나 실제 실행됐을 경우 발생할 파장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법원행정처 차장의 머릿속에서 구상한 수준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박 전 처장의 지시로 이 같은 문건을 작성했는지, 혹은 작성 후 보고 및 승인을 받았는지 여부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현재로서는 해당 보고서가 박 전 처장이 사용한 PC에 파일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의 보고라인인 박 전 처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모 및 지시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임 전 차장의 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풀지 못한 130개의 파일 과제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1월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3차 특별조사단은 2차 조사 당시 풀지못한 382개의 암호파일에 대한 추가조사를 벌였으나 정상파일 205개를 제외한 나머니 177개 유실파일은 복구하지 못했다. 177개의 유실파일 중 31개는 휴지통을 통해 삭제돼 파일로 파일명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후 조사에서 추가암호로 열린 16개를 제외한 나머지 130개 파일은 작성경로나 생성위치, 수정시각 등도 확인할 수 없다. 특조단은 “작성시기가 구 한글버전으로 작성된 것으로 미뤄보아 사법행정권 남용의혹과 관련성이 없을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검찰이 포렌식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임 전 차장은 현재 출국금지된 상태다. 검찰은 언제든 임 전 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수 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이 왜 이 같은 문건 작성을 지시했는지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없다. 특조단의 조사를 받은 일부 심의관들은 “별다른 배경설명을 듣고 보고서를 작성했다기보다는 임 전 차장이 ‘이러이러한 것을 좀 알아보고 이러한 형태로 구상해서 보고서를 올려라’고 해서 그대로 했을 뿐”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제로 시행될 것을 예상했다기보다는 임 전 차장이 원하는 방향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향대로 작성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로서는 임 전 차장의 문건 작성 지시 동기도 파악해봐야 할 부분이다. 정말 양 전 대법원장의 역점과제였던 ‘상고법원’ 추진을 위한 순수한(?) 잡음제거용(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hwp, 현안 관련 말씀 자료(대외비)등)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일까.
피고발인의 소환조사 계획 아직은 없어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법원행정처 외부에서 상고법원을 미끼로 사법부를 흔드는 손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홍일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을 필두로 한 168명의 여야 의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법원행정처로서는 호재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이미 의원들이 제출한 법률 개정안은 2015년 2월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이후 법안심사소위를 넘지 못하고 1년째 공회전만 하고 있었다(2016년 5월 임기만료 폐기). 당시 행정처에 근무한 한 법원 관계자는 “여당(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법원에 볼멘소리가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물론 법원행정처는 의원들의 각종 민원 및 불만사항들을 적절히 처리하거나 넘기는 일을 해야 했지만 대놓고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말했다. 즉 제19대 총선(임기 2012~2016)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야 의원들의 판결 결과를 모아보니 법원이 지나치게 야당(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판결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계자는 “주로 상고법원에 부정적 의견을 내는 의원들이 당시 여당 의원들이었는데 이들 사이에서 ‘여당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면 100만원 이상이 나오고, 야당은 100만원 미만으로 나온다’는 말이 지속적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실제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 다만 당시 정황상 알 수 있는 것은 이 주장이 임 전 차장의 귀에도 들어갔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출신의 한 고위법관은 “의원들은 한 번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면 자꾸만 더 큰 요구를 행정처에 해왔다”면서 “임 전 차장은 그 요구를 자꾸 귀담아 듣고 본인이 가능한 한 해결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에서 상고법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법원 바깥으로 표출된 것도 임 전 차장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으로 봤다.
검찰은 현재까지는 피고발인에 대한 소환조사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으로부터 하드디스크 등을 넘겨받아 조사를 벌이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박병대 전 행정처장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이번 사태에 책임은 없다는 말은 못할 것이다.” 퇴임한 한 고위법관 출신 법조인은 “주도적으로 문건 작성을 하거나 사법거래를 시도한 임 전 차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그가 아무런 지지 없이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양승태-박병대-임종헌으로 이어지는 라인에서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사법부 전체를 자기들 입맛대로 통제하려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사법부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검찰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검찰이 얼마나 철저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사법부가 단순히 이번 수사와 재판을 통해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김명수 코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