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사람] 소아당뇨 의료기기 개조해 범법자로 몰린 김미영씨 “꿈쩍 않던 식약처가 드디어 변화”](https://img.khan.co.kr/newsmaker/1281/20180618_08.jpg)
올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와 싸움을 벌이는 한 엄마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자식을 위해 해외 의료기기를 들여와 쓰기 편하게 개조했다가 범법자로 내몰린 김미영씨(41)에 대한 얘기였다. 김씨의 사연은 파급력이 컸다. 보건당국의 부당한 행태를 질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환자를 외면하는 해외 의료기기 수입제도의 허점도 널리 알려졌다. 결국 식약처는 지난 4월, 해외 의료기기를 들여와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자가사용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엄마들의 승리이자 김씨가 일궈낸 값진 변화였다. 김씨는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그동안 꿈쩍 않던 식약처가 지금은 소통을 하고 있다. 이런 변화도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국 1형 당뇨병 환우회 대표이자 모토로라와 삼성에서 15년 동안 일한 공학도 출신 엔지니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김씨의 경력이다. 똑소리 나는 당찬 사람처럼 보이는 경력이지만 사실 김씨는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꺼리는 성품을 지녔다. 식약처와의 싸움은 김씨가 살면서 벌인 첫 다툼이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결석 한 번을 하지 않을 정도로 정해진 규율은 무조건 지켜왔어요. 다툴 일은 아예 만들지 않았고 만에 하나 생기면 피해왔어요. 그런데 자식이 아프니까, 너무 절실하고 간절해지니까 정부와도 싸우게 되더라고요.”
김씨는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회사에서는 휴대폰과 스마트폰 어플을 개발하는 일을 했다. 삼성에 있을 때는 프로젝트 리더까지 맡았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엔지니어지만 김씨는 대학 입학 전까지 컴퓨터 전원도 켜본 적 없는 ‘컴맹’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컴퓨터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전공은 취업이 잘된다는 얘기를 듣고 정했다. 대학도 장학금을 주는 곳을 택했다. “생존을 위해서 공부했어요. 아예 관련 지식이 없어서 수업 따라가기도 버거웠어요. 해야 하니 했던 것뿐인데, 그렇게 익힌 IT기술이 지금은 아픈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귀한 자산이 됐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싸움은 그 자체로도 외롭고 힘들다. 특히 무심코 오가는 말들에 상처를 받는다. ‘아픈 아이를 앞세워 동정표를 받으려고 한다’는 글을 보면 눈물이 쏟아진다. 김씨는 “저 역시 아이의 부모일 뿐이고, 어쩌다가 환우회 대표를 맡았을 뿐”이라며 “싸움이 계속되다보니 1년 만에 반백발이 될 정도로 흰머리가 늘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얻은 것도 있다. 사람이다. 김씨는 사건을 진행하면서 무료 변론을 비롯해 시민단체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세상에 약자를 생각하고 지지해주는 단체가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지금은 다른 분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의료사고는 물론 안타까운 얘길 들으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저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연락을 해오세요. 어느 날은 아이가 ‘왜 우리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오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도 도와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원치 않은 싸움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치있는 삶을 살게 해준 귀한 경험이기도 해요.”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