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산하 공공기관 지원 심포지엄서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 정부 기조와 다른 발표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교류재단)이 지원하는 한·일관계 심포지엄에서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국민 정서는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 기조와 어긋나는 발언이 지속적으로 나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교류재단이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지난 9월 21일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한·일관계 심포지엄’에서 일본 청중들을 대상으로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두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지난 2015년에는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결실을 맺어 12월 28일에는 위안부 합의라는 성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옛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에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소녀상’에 대해서도 거론
이어 진 소장은 ‘부산 소녀상’도 거론했다. 진 소장은 “그럼에도 한·일관계에는 아직도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특히 부산의 소녀상 설치로 한·일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냉각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한국이 한·일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이에 무관심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진 소장은 앞서 8월 24일 삿포로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도 거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발언을 했다. 일련의 행사는 교류재단과 세종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으로 교류재단은 비용 지원을, 세종연구소는 심포지엄 구성을 맡았다.
진 소장의 이 같은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어긋난다. 실제 해당 발언이 나온 삿포로 심포지엄 사흘 전인 8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국 국민은 정서적으로 그 합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그 시기에 할머니들과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는지 의아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충분히 협의해 동의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며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외교부의 TF가 활동 중인데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을 때에도, 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위안부 협상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며 무효를 선언했다.
문제는 해당 발언이 나온 행사를 외교부 산하의 공공기관이 전액 지원했다는 점이다. 해당 행사와 관련해 교류재단의 예산집행 내용을 보면 지난 9월 21일 시즈오카 심포지엄에만 2849만원이 지원됐다. 앞서 2016년에는 총 4차례 심포지엄에 1억4053만원이 지원됐다. 올해 3월 24일 히로시마 심포지엄과 8월 24일 삿포로 심포지엄도 비슷한 규모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진 소장은 <주간경향>에 “팩트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2015년에 위안부 합의가 있었고 성과를 냈으니까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식으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 소장은 위안부 합의가 ‘굴욕적’이라는 지적이 많다는 점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 때는 성과 아니었나. 성과였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합의로 인해 성과를 봤다”고 말했다.
진 소장 “팩트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것”
실제 진 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11월부터 위안부 합의를 성과로 칭했다. 그는 2016년 11월 25일 나고야와 2017년 3월 24일 히로시마에서 일본 청중들을 대상으로 열린 교류재단 지원의 심포지엄에서도 “위안부 합의라는 성과가 있었다” “부산의 소녀상 설치로 한·일관계는 냉각되고 있다” “한국 또한 이에 무관심하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어 진 소장은 “한국이 무관심하다”는 발언의 의미에 대해서는 “소녀상 문제가 걸림돌이 돼 한·일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다. 팩트 아니냐. 그런데 한국이 소녀상을 이전하거나 철거해줄 수 없는 거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무관심하다고 말한 것”이라며 “공공외교는 싸움하러 가는 게 아니다. 일본 사람의 마음을 사서 한·일관계를 잘해 보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진 소장은 해당 발언이 문재인 정부 기조와 어긋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는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연구소의 소장이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 성과나 소녀상 문제는 학자의 양심을 걸고 팩트를 이야기한 것”이라며 “정부 지원을 받는 심포지엄에서 내가 ‘문재인 정부는 문제가 많습니다’, ‘앞으로 한·일관계는 파탄이 납니다’라고 했으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나는 팩트를 말했다”고 강조했다.
진 소장은 1994년 도쿄대학대학원에서 국제관계론을 전공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서 1990년부터 1993년까지는 일본 문부성 국비장학생이었으며 2001∼2002년에는 도쿄대학에서 객원연구원과 초빙학자로 활동했다. 세종연구소에서는 199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2015년 6월 소장에 취임했다. 위안부 합의의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 이사도 맡고 있다.
심포지엄을 전액 지원한 교류재단은 진 소장과는 다소 다른 입장을 밝혔다. 교류재단 관계자는 “(진 소장에게) 정부 정책기조와 맞지 않는 부분들은 자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구두경고를 했다”며 “그분이 개인적으로 발언하신 건 좋으나 저희는 국가 정책에 맞춰야 한다.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는 위안부 합의가 그렇게 인식되어 있었고, 또 올해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TF가 만들어졌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며 “전 정권과는 기조가 맞는데 앞으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다. 한·일관계가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진 소장이 몸 담고 있는 세종연구소는 1986년 재단법인 일해재단 산하 평화안보연구소로 문을 연 뒤 몇 차례 개편을 거쳤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외교·안보·통일분야의 민간 연구기관이지만 정부 부처의 연구용역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내정 당시 박준우 현재 이사장 임명과 관련해서는 외교부 개입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박 현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